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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소개

by 이상역

사람이 누군가를 만나면 자신을 소개해야 한다. 특히 첫 만남이나 모임에서 자기를 소개하는 것은 왠지 불편하고 익숙하지가 않다.


몇 해 전부터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되면서 다사람을 만날 때 브런치 작가라고 소개하면 이상한 듯이 바라본다.


작가면 작가지 무슨 브런치 작가가 다 있느냐는 표정이다. 글을 쓰는 사람은 자기소개가 편하다. 수필가는 수필가라고 시인은 시인이라고 소설가는 소설가라고 하면 그만이다.


수필이나 시나 소설의 어떤 것을 쓰는지 세세한 것은 사람들이 묻지 않는다. 사람들은 작가라고 소개하면 대체적으로 사람을 인정해 준다.


요즈음 쳇지피티가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인기다. 쳇지피티는 대화형식으로 작동하는 인공 지능 언어모델로 사용자의 입력에 따라 대화를 생성하고 응답할 수 있다. 사람과 사람이 대화하는 것처럼 쳇지피티와 대화가 가능하다.


챗봇에 접속해서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라는 공간에 '브런치 이상역'이란 검색어를 입력하자 다음과 같이 나에 대한 소개자료를 출력해서 내놓는다.


"이상역은 브런치(Brunch)라는 플랫폼에서 활동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브런치는 다양한 작가들이 자신의 글을 공유할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으로, 많은 사람들이 개인적인 경험, 생각, 이야기 등을 글로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이상역은 브런치에서 자신의 감정과 경험을 바탕으로 철학적이고 심오한 주제를 다룬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상역 작가는 주로 삶의 의미, 인간 존재, 사회적 현상 등을 주제로 글을 작성하며, 독자들에게 깊은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글들을 많이 작성했습니다.


브런치에서 활동하는 이상역은 글쓰기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다양한 삶의 경험을 나누는 방식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브런치에서 이상역의 글을 찾아보면, 일상적인 이야기에서부터 더 큰 철학적 성찰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주제를 다루고 있어, 독자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는 글들을 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쳇지피티가 소개한 내 글을 읽어보고 깜짝 놀랐다. 나보다 더 나를 잘 아는 듯이 소개를 했다. 컴퓨터 기술발전이 빠르다고 생각했는데 상상한 것 이상으로 빠르다는 생각이 든다.


나를 잘 알고 소개하는 것처럼 쳇지피티가 역할을 대신하니 놀라울 뿐이다. 쳇지피티를 능가하는 AI 프로그램이 나오면 사람들이 일자리를 많이 잃을 것 같다.


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생각해서 글을 생산하고 말하는 프로그램이 등장하면 사람이 하는 일을 쳇지피티와 같은 AI 프로그램이 대신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해서다.


내가 어떤 글을 쓰는지에 대하여 나를 소개한 적은 없다. 더군다나 다른 누군가가 내게 좋은 글을 쓴다고 말을 해준 적도 그런 말을 들은 적도 없다.


세상의 일이란 정말로 알 수 없는 미로 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다. 파스칼은 ‘팡세’에서 인간을 "생각하는 갈대"로 비유해서 인간은 연약함과 동시에 위대하다고 갈파했다.


인간은 갈대처럼 자연의 거대한 힘 앞에서 쉽게 꺾일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스스로를 성찰하고 우주와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한 유일한 존재다.


이런 사고 능력을 가진 인간을 동물과 구별 짓는 가장 큰 특징이라고 주장했다. 파스칼은 사고의 능력을 가진 인간을 오직 다른 동물과 구별 짓는 특징이라고 말했는데 이는 AI 컴퓨터가 등장하기 전의 일이다.


오늘날 컴퓨터의 발달로 사람과 바둑을 두거나 스스로 차를 운전하거나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들어주는 역할 등을 통해 사람의 일상에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앞으로 오십 년 뒤나 아니 수 십 년 뒤에는 어떤 세상이 도래할지 아무도 모른다. 아마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놀랄만한 세상이 도래할 것이다.


미래에는 오늘날 누리는 많은 것들이 사라질 뿐만 아니라 수많은 직업을 잃을 것이다. 그런 미래는 우연이 아니라 필연으로 다가올 것이고 변화된 세상이 다가오기 전에 준비하고 대비해야 한다.


그간 여기저기 글을 써본다고 끄적이며 흉내를 냈지만 내가 어떤 글을 써왔고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잘 모르고 있었는데 쳇지피티 덕분에 조금은 알게 되었다.


쳇지피티가 나를 소개했듯이 앞으로 어떤 글을 쓸 것인가 하는 것을 배웠다. 진즉에 내게 쳇지피처럼 글을 써보라고 권유하거나 격려해 주었다면 지금쯤 나의 글쓰기 수준은 어디쯤에 도달했을까.


지나온 길을 후회할 필요는 없지만 오늘은 그간 써 온 글쓰기에 대한 반성과 방향성도 알았고, 앞으로 묵묵히 내 자리에서 꿋꿋하고 여유롭게 남들을 의식하지 않고 나만의 글쓰기에 매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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