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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샘추위

by 이상역

추위도 예쁜 것을 보면

셈이 나는가 보다


매화, 개나리, 진달래,....

남녘으로부터 올라오는 봄꽃들 소식에

반가운 마음으로 마중 나갔더니


겨울고개를 넘어가던 꽃샘추위가

뒤돌아서서 으슬으슬 품 안으로 달려든다

봄추위는 품 안으로 든다고 했지

(중 간 생 략)


봄이면 매번 겪는 꽃샘추위

시련을 이겨낸 삶이 더 아름답듯


봄도 이 고비를 넘어서면

더 아름다운 꽃가마 타고 오겠지 (전희종 시인, '꽃샘추위')


봄철에 겪는 꽃샘추위를 시로 표현한 시인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남녘에서 봄이 온다고 꽃 마중을 나갔더니 봄꽃은 만나지 못하고 품 안으로 으슬으슬 파고들며 몽니를 부리는 꽃샘추위를 만났다.


시인은 봄에 매서운 꽃샘추위가 와도 그 고통과 시련을 이겨내면 더 아름다운 봄과 꽃이 찾아오듯이 사람의 삶도 시련과 고비를 넘어서면 더 아름다운 인생이 가마를 타고 찾아올 것이라고 표현했다.


매년마다 찾아오는 꽃샘추위지만 최근에 봄날씨가 너무 널뛰기를 해댄다. 봄날에 비가 오는 것은 봄을 알리는 신호수인데 비가 아닌 폭설이 쏟아지니 계절이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 같다.


아침에 구봉산과 승상산을 올라갔다 내려오면서 주변을 한 바퀴 돌고 오는데 출근하는 사람들의 옷이 겨울처럼 두툼해졌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지구촌 곳곳에서 때 아닌 날씨 변화로 사람들이 고통을 겪는다고 한다.


이른 봄 꽃이 필 무렵에 찾아오는 것이 꽃샘추위다. 꽃샘추위는 꽃이 피는 것을 시샘하는 듯이 춥다고 해서 이름을 붙인 것이다.


'꽃샘’이라는 단어는 꽃을 시샘한다는 의미에서 나온 말이다. 겨우내 자리를 잡고 있던 추위가 피어나는 꽃들을 시샘해서 다시 강해지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어쩌면 꽃샘추위는 자연이 우리에게 보내는 마지막 겨울의 흔적일지도 모른다. 봄이 오기를 간절히 기다리면서도, 이 짧은 추위가 가져오는 계절의 변화를 진실하게 느껴보는 것도 나름의 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꽃샘추위보다 더한 겨울의 추위가 몰려와서 걱정이다. 계절의 질서인 봄이 제 갈 길을 잃어버리면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나무와 식물들이다.


봄은 만물이 태어나고 생동하는 계절이다. 그런 계절에 폭설이 쌓이면 땅에서 자라던 새싹이 죽고 만다. 그 결과 봄에 싹을 틔우고 새싹이 자라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생명의 질서가 늦춰진다.


자연에서 자라는 나무와 식물이 제 갈 길을 잃으면 사람들이 기대어 먹고사는 농작물도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꽃샘추위는 지나가는 과객처럼 잠깐 스쳐가야지 자리를 깔고 앉지는 말아야 한다.


기후 변화가 남극이나 북극의 빙하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생활하는 일상생활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가 노력해서 기후 변화를 늦추거나 중지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사람의 힘으로 다스릴 수 없는 자연의 질서란 생각이 든다.


우리네 몸도 계절의 변화에 따라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변해가야 하는데 봄이란 계절에 맞게 변화를 시도하는 중인데 잠시 겨울의 상태로 되돌려야 할 것 같다. 계절이 세월의 물살을 거슬러 가지 말고 자연스럽게 흘러가기를 바랄 뿐이다.


뉴스를 들어보니 강원도에는 삼십 센티 이상의 눈이 쌓였다고 한다. 눈이 내리면 산불방지나 일시적인 가뭄 해결에 도움은 된다. 하지만 가뭄보다 나무나 식물의 새싹이 자라는 시기를 늦추게 되는 것이 문제다.


시인이 노래한 것처럼 꽃샘추위 고비를 넘어서서 봄날이 아름다운 꽃가마를 타고 오기를 기대해 본다. 더불어 우리도 기후변화 걱정 없이 계절에 순응하고 몸과 마음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그런 계절의 질서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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