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봉산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다 내가 사는 건너편 아파트 단지 후문 출입구 철판에 육생비오톱이란 푯말이 눈에 들어왔다. 단어가 생소하고 생경하다.
잠시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표지판에 적힌 글을 읽어보니 곤충이나 나비, 새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새집, 돌무더기 등을 쌓아 조성한 곳이란다.
주변을 살펴보니 나무 몇 그루가 심어져 있고 나무에 새집 세 개를 매달아 놓고 돌무더기는 두 곳에 높지 않게 대충 쌓여 있었다.
'육생'은 육지에 사는 생물의 준 말이고, '비오톱'은 그리스어로 생명을 뜻하는 비오스(bios)와 땅 또는 영역이란 뜻을 지닌 토포스(topos)를 합친 말이다.
즉 식물과 동물이 하나의 생활공동체로 무리를 이루어 지표상에서 다른 곳과 명확히 가를 수 있는 일종의 서식지를 뜻하는 것이다.
육생비오톱의 뜻은 심오하고 거창한데 아파트 단지 내에 조성한 것을 바라보니 새집에는 새들이 살지 않고 돌무더기는 그냥 돌을 던져 쌓은 것 같다.
그래도 호기심에 곤충이나 나비나 새들이 얼마나 깃들어 사나하고 이리저리 찾아보는데 한 마리도 눈에 보이 지를 않는다.
육생비오톱은 곤충이나 나비나 새들이 깃들어 살아가라고 조성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지나가면서 한번 눈요기나 하라고 나무 몇 그루에 새집과 돌무더기를 조성해 놓은 듯하다.
요즈음 친환경 건축물이 인기다. 아마도 친환경 건축물 평가에서 육생비오톱을 조성하면 일정한 점수가 반영되는 것 같다.
결국 육생비오톱은 곤충이나 나비나 새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건설업자가 평가에 따른 점수를 받기 위해 조성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의 건축이나 토목은 인허가와 준공에 초점을 두고 행위가 이루어진다. 건축이나 토목은 인허가나 준공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준공 이후 건물이나 시설물의 유지관리다.
그런데 법령이나 건설행위 대부분이 인허가와 준공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준공 이후 유지관리는 덜 신경 쓰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친환경 건축물에 대한 평가도 그런 맥락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육생비오톱을 조성해 놓고 그곳에 곤충이나 나비나 새들이 얼마나 서식하는지 등 보다 현실적인 부분을 평가해서 반영해야 한다.
그럼에도 평가가 너무 형식적인 것에 치중하다 보니 현실적인 것은 외면을 받는 것이다.
건축이나 토목에 대한 전문가는 아니지만 건물이나 시설물은 건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건설 이후 유지관리를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
건물이나 시설물은 한번 땅에 건설하면 생명력과 영원성을 띄게 된다. 따라서 설계와 시공과 준공과 유지관리가 하나의 행위로 이루어져야 건물이나 시설물을 뛰어넘어 미적인 대상으로 승화될 수 있다.
따라서 육생비오톱은 단지 몇 평의 공간에 나무와 풀을 심어 놓고 조성할 것이 아니라 곤충이나 나비와 새들이 실제로 찾아와서 깃들어 살아갈 수 있도록 제대로 조성해야 한다.
건설업자가 친환경 건축물 인증을 받기 위한 평가요소 반영 차원에서 육생비오톱을 조성해서는 안 된다. 육생비오톱 본래의 목적과 취지에 맞도록 조성하고 유도해야 한다.
사람이 사는 아파트 단지 내에 육생비오톱을 조성하느니 차라리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나무나 몇 그루 더 심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친환경 건축물은 평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감안하는 것이 먼저다.
육생비오톱이란 푯말을 읽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차들과 학생들이 시끌벅적하게 지나간다. 이렇게 차와 사람들이 지나가는 곳에 곤충과 새들이 찾아와 깃들어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것에 의구심만 든다.
우리나라도 먹고살만한 나라가 되었다. 따라서 육생비오톱뿐만 아니라 형식적인 기준에 잣대를 들이대는 건설문화를 청산하고 진정으로 사람과 곤충이나 새들을 위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문화로 바뀌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