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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동경하는 것은

by 이상역

동경이란 겪어 보지 못한 대상에 대하여 우러르는 마음으로 그리워하며 간절히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동경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성장기별로 달라진다.


내가 태어난 곳은 병풍처럼 산으로 둘러싸인 궁벽한 시골이고 대부분이 일가친척이었다. 유년시절 동경의 대상은 빙 둘러싼 산너머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아가고 그 세상은 어떻게 걸어서 가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초중고를 다니며 낯선 친구들을 만나게 되면서 유년시절에 동경했던 산너머 낯선 세상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은 줄어들었다.


중학교 시절 홍길동전 만화를 보면서 동경의 대상이 바뀌었다. 나도 만화의 홍길동처럼 신출귀몰한 영웅이 되고 싶었다. 그 시절 어린이 동아신문의 홍길동전은 세상을 구원하고 영웅을 만날 수 있는 상상의 시간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친구들도 신문이 배달되는 시간을 간절하게 기다렸다. 신문이 배달되면 쉬는 시간에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가 친구를 빙 둘러싸고 홍길동전 만화를 보면서 변장술을 부려가며 악을 물리치는 것을 읽으며 홍길동이 살아가는 세상에 가 닿는 꿈을 꾸곤 했다.


그렇게 중학교 시절에 홍길동을 동경하던 마음도 고등학교에 진학하자 사그라들었다. 고등학교에 학하자 동경의 대상이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대학에 합격한 선배들이 모교에 찾아와 후배들에게 대학 진학 비법을 전수하는 것을 보고 나도 저렇게 대학에 진학해서 모교에 찾아와 후배들에게 비법을 전수하는 모습을 동경하게 되었다.


하지만 대학 진학은 꿈속의 일이 되었고 고교를 졸업할 때 대학 진학 실패하고 말았다. 대학 진학에 실패하면서 동경의 대상도 사그라졌다.


고교 졸업 후 시골에서 아버지 농사일을 돕다가 형이 재수해서 대학 진학시험을 보라는 조언을 받아들여 다시 대학 진학에 대한 불을 지폈다.


내 인생에서 학원에 다니며 재수한 것은 가장 잘 선택한 행로였다. 재수하던 시절 친구의 권유로 본 지방직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면서 공무원이 되는 길을 배웠기 때문이다.


고교 시절 교감 선생님이 조회 때마다 교단에서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지방에서 면서기라도 하면 그럭저럭 밥은 먹고 산다'"라며 특별하게 진로를 정하지 않은 사람은 면서기 시험이라도 보라고 자주 말씀하셨다.


비록 학원에 다니면서 대학 진학은 실패했지만 고향에서 읍서기로 생활하면서 비로소 떳떳한 사회인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회인으로 독립은 했지만 동경하던 대학 진학 실패가 가슴에 응어리로 남아 있었다. 그런 가슴을 안고 생활하던 하던 어느 날 친구가 찾아와 대학 예비고사를 함께 보자는 말에 예비고사를 치르고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다.


사람은 가슴에 동경하는 대상이나 꿈을 간직하고 있으면 은연중에 그것을 선택하게 되고 그 길을 가고자 마음에 충동질을 가한다.


대학에 다니다 군대에 갔다 와서 복학하니 취업은 어떤 분야로 할 것인지 문제가 대두했다. 당시 마땅하게 동경하던 직업도 없었고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고 다시 공무원 시험에 도전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총무처에서 실시하는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서 국방부에 근무하게 되었다. 그리고 인사이동으로 국토교통부에 근무하다 정년이 되어 퇴직했다.


요즈음 구민회관에서 진행하는 행복한 수필 쓰기 강좌를 수강하고 있다. 수업을 듣는데 강사가 꿈이 무엇이냐고 물어왔다. 나는 나답게 사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내 나이에 꿈보다는 동경하는 대상이 무엇이냐고 묻는 것이 맞는 것 아닐까. 뒤늦은 나이에 동경하는 대상이 있다면 품위 있는 문학인이 되는 것이다.


글을 잘 쓰던 못 쓰던 수필가나 시인이 되어 문학인의 삶을 사는 것이다. 그리고 먼 훗날 후손에게 난 문학인으로 살았노라며 책 한 권을 내어놓을 수 있는 문학인이 되고 싶다.


나이 들어 행복한 수필 쓰기를 배우는 것도 내가 동경하던 대상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 아닐까. 그 강좌를 통해 글쓰기 바탕이라도 형성하고 꾸준히 연습해서 수필가든 시인이든 동경하던 꿈을 꼭 이루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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