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구봉산을 올라가는데 연두와 초록으로 물들어가는 나무와 숲과 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초록으로 물들어가는 나무와 숲과 산은 마치 햇빛과 물과 신선한 공기로 빚어내는 녹색 치마와 같다. 녹색 치마를 생각하니 학창 시절 음악시간에 배운 가곡 '그네'란 가사가 떠오른다.
"세모시 옥색 치마 금박 물린 저 댕기가 창공을 차고 나가 구름 속에 나부낀다 제비도 놀란 양 나래 쉬고 보더라". 이 노래를 부르면서 옥색 치마를 입은 아리따운 여인을 상상하곤 했다.
그러고 보니 나무는 단조로운 색을 좋아하는 젊은 여인이 미니 스커트를 입고 있는 것 같고, 숲은 중년의 여인이 몇 가지 색을 넣어 만든 칠부 치마를 입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계곡 너머 산은 장년의 여인이 젊어 보이기 위해 여러 색을 넣어 발끝까지 가리는 긴치마를 입고 있는 것 같다.
숲길을 걸어가며 나무를 올려다보면 젊은 여인이 입은 미니 스커트는 구멍이 숭숭 뚫리고 군데군데 찢어져서 바늘로 꿰매어할 부분이 많아 보인다. 아직은 젊은 여인이 바깥 나들이할 때 입기에는 한참이나 부족해 보인다.
그 나무 너머로 바라보이는 숲은 중년의 여인이 입는 칠부 녹색 치마가 밖에서도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인다. 수줍은 많은 중년의 여인이 칠부 녹색 치마를 입고 바깥 출입하기에는 이른 듯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몇 가지 색이 어우러져 가릴 것은 가리기 위한 시간이 필요한 듯하다.
아울러 저 멀리 보이는 산자락은 방금 울긋불긋한 치마를 벗은 장년의 여인이 연두와 초록으로 물을 들여 젊게 보이려는 듯 여러 색깔로 녹색 치마를 만들어 간다.
장년의 여인은 자신의 몸 한 곳이라도 노출을 가리려는 듯 발끝까지 초록으로 물들이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지금 내 앞에는 젊은 여인과 중년의 여인과 장년의 여인이 서로 아름다운 녹색 치마를 만들기 위해 경쟁을 벌이는 듯하다. 마치 누구의 치마가 더 어울리고 아름다운지 가려줄 것을 부탁하는 것 같다.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다. 단조로운 녹색의 미니 스커트나 칠부의 치마나 긴치마 모두가 아름다워 보이는데 누구의 것이 더 아름다운지를 판별해 달라니. 더군다나 나는 치마를 입어 본 적도 없는 사람인데 어느 것이 더 입기 편하고 활동하기에 좋은지 알 수가 없다.
연두에서 초록으로 물들어가는 계절에 산을 오르면 언제나 누구의 녹색 치마가 더 좋은지 선택해야 하는 고민이 따른다.
그렇다고 젊은 여인의 미니 스커트가 좋다고 할 수도 없고, 중년 여인의 칠부 치마가 좋다고 할 수도 없다. 게다가 여러 가지 색을 곁들여 만든 긴치마가 좋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오늘은 모처럼 구봉산 능선 길을 싱글벙글 웃으며 걷는다. 세 여성이 나타나 가는 길을 안내하며 자기가 만든 녹색 치마를 보아 달라고 애원하니 웃지 않을 수도 없다.
'그네' 노래의 옥색 치마처럼 금박 물린 저 댕기가 창공을 치고 나가 구름 속에 나부끼듯이 나무와 숲과 산이 만들어 가는 녹색 치마도 푸른 창공을 치고 올라가 구름 속에 나부낄 것처럼 다가온다.
등산이 끝나갈 무렵에 나는 세 여성에게 누구의 치마가 아름다운지는 연두에서 초록으로 어우러질 때까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해 주었다.
지금은 녹색 치마가 완성되지 않아 몸을 어느 정도 가릴 것은 가리게 되었을 때 누구의 치마가 더 아름다운지 말해주겠노라는 말을 남기고 능선 길을 따라 터벅터벅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