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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밋밋 Nov 06. 2023

"나 글쓰기 배우고 싶어"

글을 쓰면 쓸수록 알아가는 것

감정을 잊어가기 시작했다. 세월이 지나갈수록 무뎌지는 감정이 싫었다.

둔해지는 감정과 옅어지는 기억 속에서 추억을 남기고 싶었다.


 나는 크든 작든 많은 일들을 겪으며 살고 있다. 나에게 벌어지는 모든 일들에 감정을 만들고 잊어 간다. 여자친구와 처음 손 잡았던 때의 떨림, 차를 폐차했을 정도로 큰 충돌 사고가 났던 때의 아찔함. 그 당시엔 심장을 마구 뛰게 했던 나의 감정들과 그때의 기억들이 사라지고 있다.  물론 나의 삶을 정리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왜 이렇게 과거를 그리워하고 감정을 잃어가는 것이 아쉬운 걸까.


 나의 여정의 기록에 그때의 감정을 남겨두고 싶었다. 내가 살아오면서 느꼈던 설렘, 분노, 기쁨 등 다양한 감정이 더 옅어지기 전에. 그때가 그리워서, 되돌아가고 싶어서, 이유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때의 감정을 잊고 싶지는 않았다.

게으른 나에게 가장 적합한 것은 펜과 종이만 있으면 되는 ‘글’이었다.


  하지만 나에게 글이라고는 회사에서의 업무 기안뿐이었다. 글쓰기라는 것은 나에게 너무 거창한 일이었다. 이런 생각을 할 때 용기를 준 것은 태국 여행에서 우연히 만났던 한 친구였다. 안부조차 잘 묻지 않던 10년이 지났다. 여행할 당시 작가가 되고 싶어 하던 친구는 어느새 작가가 되어 있었다. 글 쓰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열어보지 않았던 이 친구의 글을 하나씩 보기 시작했다. 10년 전쯤에 나와 함께했던 여행 기록도 있었다. 같은 시간에 있었는데 그 당시 나는 어떤 감정으로 있었는지 어렴풋이 만 기억난다. 하지만 친구는 달랐다. 그 당시의 감정을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다. 너무나도 멋져 보였다. 나도 글쓰기가 하고 싶었다.


  마음을 먹었지만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때 친구가 글쓰기 클래스의 수강생을 모집하고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친구에게 배운다는 부끄러움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할 수 없었다. 지금 이 순간이 지난다면 아마도 하고 싶었던 리스트에만 남겨져 있을 것 같았다. 방 한구석에 있는 칠 수 없는 베이스기타처럼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오랜만에 용기 내어 연락했다.


“나 글쓰기 배우고 싶어”


  첫 수업을 위한 과제가 있었다. ‘나의 하루’에 대한 글을 써야 했고 어려울 것 없어 보였다. 하지만 글을 쓰기 위해 산 아이패드를 열자마자 난관에 빠졌다. 글을 쓰기 위한 형식이 문제가 아니었다. 나를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지금까지 나라는 사람은 친구들이 항상 답답해하며 “너의 이야기를 조금만 해봐”라고 할 정도였다. 고민과 감정을 누구에게 보여준 적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앞으로 나에 대해 기록하기 위해서는 해야만 하는 과제였다. 아이패드에 한 줄씩 끄적거리기 시작했다. 나의 감정은 대부분 생략되었으며 내용도 명확하지 않은 이야기였다.






  이렇게 시작한 글쓰기 클래스가 어느덧 2달이 지났다. 당연히 지금도 글쓰기는 어렵다. 그래도 몇 번의 글쓰기 과정을 통해 나의 감정을 꽤나 많이 꺼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확히 알지 못했던 나의 모습들을 다시 정의하고 있는 중이다.


 최근 과제로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글을 썼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나열하다 보니 끊임이 없었다. 물론 혼자서는 먹지 않을 음식은 있다. 하지만 그런 음식을 먹으러 가는 시도는 좋아했다.  그러다 보니 ‘홍어 삼합’도 지금은 맛있게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맛있는 음식' 또는 '맛볼 수 있는 기회'처럼 나에게 한 부분만이라도 충족된다면 좋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덕분에 살면서 선택장애로 스트레스받았던 부분이 사라졌다. 나는 무엇을 선택하든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반대로 싫어하는 것도 명확해졌다. 글을 쓰며 여전히 꺼내기 어려운 가지 단어는 나의 직업인 '공무원'과 나의 나이 '40대'라는 사실이었다. 아마도 나의 모습 중 가장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부분인 것 같다. 하지만 그 덕분에 내가 '40대' 그리고 '공무원'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인지하게 되었다. 싫어하지만 바꿀 수 없는 나이는 받아들이고 직업은 바꾸고 싶었다. 구청 속 공무원의 세상에 머무는 것이 아닌 내가 만들 세상의 작가로 살고 싶었다.


  처음엔 다른 사람과의 추억과 나의 감정을 기억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글을 쓰면 쓸수록 과거의 내가 아닌 현재의 나 자신에 대해 더 알아가고 있다. 글을 더욱 써야 하는 이유가 생겼다.




P.S

공무원 임기가 끝나기 전에 내가 먼저 그만두는 모습을 그려본다. 그리고 나의 세상으로 떠날 것이다. 외국의 어느 카페에서 석양을 바라보며 내가 느끼는 온전한 감정을 자유롭게 써 내려가는 순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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