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즐겁지 않은데 어떡하지.
여자친구와 수원화성을 구경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차에서 뭔가 이상함을 느껴 멈췄다. 연기가 조금 나고 타는 냄새가 났다. 나의 차는 15년은 넘게 탔고 주행거리도 20만이 넘었다. 그럼에도 나는 새 차를 갖고 싶은 열망은 없었다. 차는 굴러가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동이 걸리지 않는 차는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차를 살 수 있을까?'에서 시작된 고민은 요즘 억지로 감춰 놨던 걱정을 다시 떠오르게 했다.
'나는 왜 이렇게 즐겁지 않지'
돌이켜보면 어렸을 때 상황에 맞는 즐거움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과자를 안 먹었고, 버스를 타는 대신 걸어 다녔다. 한참을 참아냈다. 그렇게 갖고 싶던 게임기를 사며 즐거워했다. 부유한 친구들과 비교해 당장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은 미래의 나에게 미뤄뒀다. 언젠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으며.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미래의 내가 현실이 됐다. 하지만 여전히 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이젠 즐거움을 위해 현재를 감내할 수가 없다. 내 차의 수명이 다 되어 간다는 것을 진작 알고 있었다.
‘ 나는 지금 당장 새 차를 사고 싶다.’
새로운 차를 갖기 위해서는 지출을 진작 멈춰야 했다. 하지만 금액이 얼마 안 된다는 이유로 고민도 없이 갖고 싶은 것을 샀다. 더 큰 무엇을 갖기 위해 견뎌내는 것이 힘들어졌다. 그러면서도 불만을 잔뜩 품은 채 침대에 누워, 화를 뿜어냈다.
‘나는 새 차를 못 사는 사람이야’
나는 월급은 적더라도 걱정 없이 다닐 수 있는 직장이 있다. 다만 나의 월급으로는 즐겁다고 생각한 것들을 챙길 수 없기에 불행하다고 느낀다. 이제 더 이상 미래의 나에게 기대하지 못하게 된 것일까. 그래서 포기한 것일까? 나중에 큰 손해가 있더라도 지금의 작은 즐거움을 뒤로 미루지 않는다. 순간의 만족을 선택할 뿐이다.
이전에도 친구들이 타고 오는 외제차를 부러워했다. 나도 그 차를 갖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슬퍼하지 않았다. '내 차 정도면 충분하지'라고 위안했다. 새 차를 살 금전적인 여유가 없어서 스스로를 세뇌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나도 몇 년 지나면 그런 차가 있겠지’라고 쉽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
자신이 원하는 즐거움을 다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정말 소수일 것이다. 당연히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며, 외제차는커녕 새 소나타도 사지 못하는 형편이다. 같은 직장, 비슷한 처지의 동료 중에는 BMW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나와 달리 그 차를 갖기 위해 일찍부터 삶의 한 부분을 희생했을 것이다.
늦은 나는 현재 생활의 많은 부분을 포기해야 몇 년이 지난 뒤 겨우 BMW를 가지게 될 것이다. 과연 지금도 즐겁지 않은데, 참아낼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이 의미가 있을까?
어떻게 즐거움을 찾고 있는지 다른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