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고 싶어 하지만 쉽지 않음을 그럼에도 평범을 향해 나아가야 하니까
저는 영상쟁이였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예술대 입시 준비를 위한 논술을 연습했고, 내가 사랑하는 팀인 fc서울을 위해 영상을 만들었던 것도 4년 넘게 했습니다. 뭔가를 만들어낸다는 그 전율, 창작의 쾌감이 좋았습니다. 늘 꿈이 있었어요. ‘나중에 영상으로 밥 벌어먹고살겠다’는. 그리고 그 꿈을 실현하려고 종종 무리도 했고.. 아, 저는 휠체어를 타고 다닙니다. 하지지체장애가 있거든요.
카메라를 세팅하는 일이 점점 고통이 되던 날, 슬그머니 컴퓨터 앞에만 앉아서 하는 ‘편집’이 권해졌습니다. “이건 너도 할 수 있잖아.” 하는 말 뒤엔, ‘움직이지 못하니 너는 여기까지’라는 무언의 선이 그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요. 전 편집 별로 안 좋아합니다. 자막 치고 컷 편집하고 프리미어 돌리는 건, 영상의 생명이라기보다 단순반복 노동 같더라고요. 꿈을 유지하려면 '내가 못하는 걸 참고 버텨야 하나'라는 물음표가 점점 커졌습니다.
그러다 문득, 귀에 꽂힌 이어폰 한쪽에서 벅찬 감정이 밀려들었습니다. ‘이 음악을 만든 사람은 누구지?’라는 질문 하나가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작곡가? 아니면 프로듀서? 그러다 알게 된 이름. A&R(Audio & Repertoire). 아티스트와 음악, 그 사이를 연결하며 앨범의 시작과 끝을 기획하고 관리하는 사람들. 세상에, 이런 직무가 있었다니. 말 그대로 꿈과 현실의 접점 같았습니다.
좋은 음악을 알아보는 귀, 서사를 만들어내는 감각, 그리고 무엇보다 "기획"에 대한 욕망. 전 그걸 갖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기획은 손으로 하는 게 아니라 머리와 심장으로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장애도, 휠체어도, 계단도 아무 상관없는 분야. 음악이 흐르는 그 자리에 내 이름 석 자를 남길 수 있다면, 그게 바로 A&R이지 않을까요?
그렇다고 꿈이 예쁘기만 했던 건 아닙니다. 현실은 여전히 계단투성이입니다. 외근이 많은 영상현장은 더 이상 제게 맞지 않고, 서류를 내도 ‘장애인이라 불편하지 않겠느냐’는 소리를 간접적으로 듣곤 합니다. 몇 번을 고쳐 쓰고 고쳐 써도 서류는 돌아오지 않았고, 면접은 단 한 번도 연락이 오지 않았습니다. 마음속에서 "아, 나는 안 되는구나"라는 말이 점점 목구멍까지 올라오더군요.
그런데요, 여기서 주저앉는 건 너무 멋이 없지 않습니까. 장애는 있지만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아이돌이라는 거대한 산업의 기획자 중 하나로 살아보고 싶었습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A&R은 절대 쉽지 않다는 것을. 감각과 인맥, 그리고 수많은 실패를 견뎌야 한다는 것을요. 하지만 저는 믿습니다. 내가 사랑한 음악이 내게도 힘이 되었듯, 내가 만든 음악도 누군가의 새벽을 견디게 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요.
제 꿈은 단순합니다. 멋있는 남성미 터지는 보이그룹과 육각형 능력치를 지닌 걸그룹을 제작하는 것. 소위 말해 ‘능력있는 A&R’이 되고 싶은 거죠. 길을 개척하는 선구자도 좋지만, 이미 난 길 위에 표지판을 잘 꽂아두는 기획자. 새로운 걸 무에서 유로 만드는 건 아직 무섭지만, 좋은 걸 더 빛나게 하는 일이라면 밤새워서라도 해낼 자신이 있습니다.
휠체어를 탄다는 건 늘 계단 앞에 멈춰야 한다는 의미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A&R이라는 문은 경사로처럼 저를 부드럽게 이끌어 줍니다. 언젠가 내가 만든 앨범이 번화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고, 그 음악을 들으며 어떤 학생이 용기를 낼 수 있다면… 그거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이건 단지 한 장애인의 자립을 위한 도전이 아니라, 가능성을 증명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하겠죠. “너 뭐 돼?”라고. 그럴 때마다 저는 웃으며 말할 겁니다. “안 되면 될 때까지 합니다. 저는 A&R이 될 겁니다.”
아직은 날이 춥습니다. 현실도, 미래도요. 하지만 제 손에는 이어폰이 있고, 그 안엔 음악이 흐르고 있으니 다행입니다. 따뜻함을 누릴 자격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저도, 여러분도. 파이팅입니다. 진심으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