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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네청년 Nov 30. 2023

불편하게 사는 법

닶 없이 고민하는 삶

우리말 관용구에는 "노답인생"이라는 말이 있다. 글쓴이가 경험한 쓰임의 실례를 종합하자면, 한 개인을 두고 그의 나이, 성별, 사회내 위치, 가족및 자녀 유무여부를 따져 통상적으로 기대되는 행동을 실천하지 못 하는 사람을 비판하는 말인 것 같다. 예컨대 40대 후반의 가장이 세 번의 사업 실패에도 불구하고 도박하는 버릇을 고치지 못해 부양의 부담을 배우자나 다른 가족원에게 떠안긴다거나, 스스로의 허영심을 이기지 못해 물질적인 형편을 고려하지 않고 생필품 외의 럭셔리 재화에 과한 소비비중을 둔다거나, 아니면 수년간 열심히 구직 또는 많은 알바를 뛴 20대 후반의 모 젊은이가 결혼, 집, 자동차 등을 마련하는데 드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 금전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미래를 단념할 때에도 쓰는 말이다. 다시 정리하면 노답인생은 한국사회 내에서 평균의 삶을 누리고자 하는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진 주관식 문항의 빈칸을 채우지 못하고 오랫동안 쩔쩔 매고 있는 삶이다.


그 주관식 문항은 대충 이렇다. "주어진 단계에 알맞는 고유명사를 괄호 안에 채워놓으시오: (     )대학교 재학/졸업; 주식회사 (     )에서 근무중; 배우자 (     )와 결혼; 본인 명의의 주택 (      )에 거주; 본인 명의의 자동차 (     )로 통근...." 등등 40년 전을 20대, 30대로 살아갔던 전 세대 및 전전 세대가 보아도 전혀 낯설지 않은 기존의 양식 속에서 최소한의 디테일만을 조정할 자유를 가진, 그러나 빈칸을 채워야 할 의무에 속박되어 있는 개인으로서 한국인은 살아가고 있다. 주관식 문항을 일률화시켰기 때문에 타인을 만났을 때 그를 가늠하는 방법 역시 한 가지로 정해져 있다. 처음 만난 사람이 있으면 익숙한 문제를 그에게 내는 것으로 어색한 정적을 깰 수 있다. "무슨 일 하세요?" 또는 "결혼 하셨어요?"


나는 학교 다닐 때부터 시험을 보는 것이 불편했다. 시험지가 주어지고 나서 24문제 정도를 푸는데에 주어진 시간이 45-50분이었고, 수학시험의 문항을 풀 때 각 문항에서 주어진 근본적인 개념을 하나 하나 고민하며 풀어나가면 네다섯 문제 남짓을 풀었을 때 쯤에 45분이 다 지나 있었다. 나는 피부에 와닿는 매일매일의 경험을 추상적인 개념으로 승화시키는 순수수학의 작업과 추상적인 개념의 합으로써의 수학이론이 다시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보편적 방법론으로 연역되는 응용수학의 작업을 신성한 과정이라고 믿어왔다. 오늘날 뒤돌아봤을 때 내가 보는 학교교육과정은 익숙한 문항을 읽고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시간을 최소화하는 기계적 생산 행위였던 것처럼 보인다. 무엇을 생산했을까? 주어진 문항을 익숙하게 읽는 문제풀이기계, 한 순간의 망설임 없이 정답을 제시하는 척척박사를 한해 40만명 씩 양산하였다.


이러한 시험문제를 능숙하게, 주어진 시간 안에 재빨리 풀어내는 사람이 1등을 겨루던 학교 패러다임과 앞서 언급한 주관식 문항의 빈칸을 주어진 시간 안에 얼른 채워넣고자 하는 도시인들의 철학은 사뭇 닮아 있다. 만약 시험문항을 만들 권리가 나에게 있었다면 난 다음과 같은 문제를 내겠다. 만약 빈칸을 모두 채우지 않은 답안지를 제출하면 어떨까? 또는, 옆 사람이 빈 답안지를 제출했을 때 그것을 채점하는 나는 그를 낙제시민으로 분류해야 하는걸까?


나아가 이런 생각도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만약 문제가 결혼을 하고 집을 사고 취직을 해야 하는 문제라면, 그 문제는 결혼을 하고 집을 사고 취직을 해도 해결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결혼을 하고 나면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문제가 되고, 이혼하지 않는 것이 과제가 된다. 때에 따라선 이혼을 하는 것이 과제가 될 수도 있다. 결혼을 했다고 해서 결혼에 관련한 문제가 없어지기는 커녕, 기혼자는 더 많고 더 어려운 결혼 문제들과 겨루게 된다. 일자리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취업을 한다는 것은 직업에 대한 문제를 해소시켜 그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직업에 대한 더 깊은 문제들을 떠안고 고민하는 것의 시작이다. 취직을 하면 회사에 다니는 것이 삶의 문제가 된다. 또 직장생활이 버거운 이들은 퇴사를 하고 이직하고 싶어 하지 않는가? 그들이 퇴사를 하면 취업문제는 다시 시작되고, 이직을 하면 직장생활의 문제를 다시 떠안게 된다. 집이 있거나 많은 사람은 그 집을 두고 장기 여행 또는 출장 가는 것, 재산세, 관리비, 상속, 전월세 등이 다시 문제가 된다.


주목해야 할 점은, 문제에 대한 답을 낸다는 것은 그 문제를 해소시키는 방법이 아니라 그 문제를 심화시키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학교의 시험에서 주어진 문항을 모두 풀면 더 이상 풀 문제가 없던 것과 달리 삶이 내는 결혼, 취업, 내집마련 등의 문제는 풀면 다음 문제가 또 나와 더 이상 문제를 풀지 않아도 되는 시점은 아마 삶이 끝나는 시점과 비슷한 곳에 있을 것이다.


만약 삶이 문제를 풀고 그 다음 문제를 푸는 과정의 연속이라면, 즉 우리가 하는 일이 끊임없이 문제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이 다라면, 어떻게 해야 삶의 문제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지가 아닌 어떤 문제를 풀 것인지에 대한 논의를 해야 한다. 겨루고 있던 문제가 쉽사리 해결되지 않는다면, 답이 없는 불편함을 그대로 떠안고 새로운 문제를 찾아 해매는 것은 어떨까? 문제에 대한 답은 빈칸을 채우고 묻는 것에 예 또는 아니오로 답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문제, 더 큰 문제를 제기하는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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