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반응과 북한

두려움이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by 임찬수

공부를 피하면 바보가 된다. 운동을 피하면 몸이 망가진다. 당연한 이야기다. 그런데 우리는 북한 문제 앞에서 늘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리스크가 두렵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화학반응은 에너지 없이 일어나지 않는다. 활성화 에너지가 필요하다. 두려움 때문에 그 에너지를 투입하지 않으면, 반응은 영원히 시작되지 않는다.


조선 후기가 그랬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은 성리학적 통제와 쇄국으로 200년을 버텼다. 외부 충격이 없었으니 겉으로는 안정적이었다. 하지만 내부에선 당파 싸움, 경제 피폐, 민중의 불만이 조용히 쌓였다. 그리고 19세기 서구 열강이 문을 두드렸을 때, 조선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쌓인 결과였다.


북한도 같은 길을 걷고 있다. 다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조선 시대엔 진짜 고립이 가능했다. 21세기엔 불가능하다. USB 하나가 탈북자의 인생을 바꿨다는 증언이 쏟아진다. 중국 국경을 타고 흘러들어오는 K-드라마 한 편이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는 인식을 심는다. 정보는 이미 스며들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그 흐름을 오히려 막고 있다는 것이다. 대북 라디오 방송은 줄었고, 민간단체의 전단·USB 활동은 단속됐다. '평화'라는 이름 아래, 체제를 흔들 가장 조용하고 효과적인 수단을 우리 손으로 걷어냈다.


리스크 없는 변화는 없다. 정보 유입은 북한 정권의 보복을 부를 수 있고, 외교적 마찰을 낳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핵을 손에 쥔 채 주민을 통제하는 체제는 또 수십 년을 버틸 것이다.


화학반응은 용기 있는 자가 에너지를 투입할 때 시작된다. 두려움은 반응을 멈추게 하는 억제제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억제제를 내려놓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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