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는 흐른다

막는 자는 누구인가

by 임찬수

북한 당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핵폭탄이 아니다. 드라마 한 편, 노래 한 곡, USB 하나다.


2020년 제정된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은 그 두려움의 민낯을 보여준다. 남한 드라마를 시청하거나 유포하면 최대 사형. 2023년에는 ‘평양문화어보호법’을 추가해 남한식 말투와 억양, 심지어 글씨체까지 금지했다. 이것은 단순한 문화 단속이 아니다. 김씨 정권이 가장 취약한 지점, 즉 '바깥세상의 존재'를 주민들이 인식하는 것을 막기 위한 필사적 조치다.


탈북자들의 증언은 일관된다. 남한의 자유와 번영을 담은 영상 한 편이 수십 년간 구축된 우상화보다 더 강력하게 주민의 인식을 흔든다. 정권도 그것을 안다. 그래서 정보 유입을 체제 붕괴의 씨앗으로 규정하고, 국가 자원을 총동원해 막는다. 이 사실만으로도 정보 유입이 얼마나 유효한 수단인지는 증명된다. 막으려는 자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북한 정권이 그토록 차단하려는 정보 유입을, 대한민국 정부가 스스로 제한하고 있다는 역설이다.


2025년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평화적 공존', '적대행위 불추진'을 기치로 내걸었다.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했고, 민간 탈북단체의 전단·USB 살포를 사실상 강한 규제 아래 묶었다. 북한이 전단을 "적대 행위"로 규정하며 보복을 위협하면, 정부는 이를 피하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차단에 나서는 형국이다.


북한 정권이 원하는 것을 한국 정부가 대신 해주고 있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물론 정부의 논리를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해 긴장을 낮추고 성의를 먼저 보이겠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이 계산에는 근본적인 오류가 있다. 북한 정권은 한국의 유화 조치를 '성의'로 읽지 않는다. '약점'으로 읽는다. 역대 남북 대화의 역사가 그것을 반복해서 증명해왔다.


한국 진보 진영 일각에 뿌리 깊은 ‘단일 민족 이상주의’도 이 문제를 복잡하게 만든다.


'한민족', '동포', '혈연 공동체'라는 프레임은 북한 정권과 북한 주민을 분리해서 보게 한다. 정권은 나쁘지만 주민은 피해자이며, 그 주민을 위해 대화와 포용이 최선이라는 믿음이다. 이 이상주의는 인도적 지원의 정당성을 높이는 데는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 정권의 본질—1인 독재, 공포정치, 핵—을 낭만화하는 부작용을 낳는다.


정권은 주민을 '동포'가 아닌 '도구'로 본다. 외부 정보가 그 도구들에게 스며드는 것을 최악의 적으로 여긴다. 민족 감정이 아무리 뜨거워도, 그 냉혹한 현실 앞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이상주의가 정책을 지배하면, 정책은 현실이 아닌 소망을 향해 달린다.


명확히 해두자. 대화 자체를 포기하라는 주장이 아니다.


그러나 대화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어야 한다. 압박과 변화 유도를 병행하지 않는 대화는, 상대에게 시간과 공간만 내어주는 일방적 선물이 된다. 정보 유입은 대화와 모순되지 않는다. 오히려 주민들의 인식이 변화해야, 언젠가 진짜 의미 있는 협상의 토대가 만들어진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북한 내부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몰래 남한 드라마를 보며 세상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그 작은 균열들이 역사를 바꾼다. 강력한 한미동맹을 통한 억지력, 민간의 정보 유입 활동 보장, 그리고 선택적이고 원칙 있는 대화—이 세 가지의 균형이 현실적인 대북 정책의 답이다.


정보는 결국 흐른다. 문제는 우리가 그 흐름을 도울 것인가, 아니면 적과 함께 막을 것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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