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사건과 결단의 철학
1948년 10월 19일, 대한민국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날의 총성은, ‘존재하는 국가’와 ‘아직 도래하지 않은 국민’ 사이의 간극을 폭로했다. 여순사건은 그 간극이 남긴 첫 번째 심연이었다. 그로부터 77년이 지난 오늘, 국가는 항소를 포기하고 민간인 희생자 150명에게 배상을 결정했다. 이는 단지 인도적 사과가 아니다. 폭력의 기억을 통해 국가 스스로가 자신의 주권을 윤리적으로 갱신하려는, 드문 자기반성의 행위다. 이것은 건국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윤리적 근대성으로 확장시키는 시도이기도 하다. 주권은 자신이 낳은 폭력의 그림자를 마주할 때만 새로이 존재할 수 있다.
칼 슈미트는 “주권자는 예외상태에서 결단하는 자”라고 했다. 1948년의 남한 정부는 실로 예외상태 속에서 결단을 내렸다. 그러나 지금의 대한민국은, 그 결단이 남긴 폭력의 흔적 위에서 다시금 ‘예외상태를 반성하는 주권자’로서 스스로를 재정의하고 있다. 이는 결단의 자기부정이자, 정치신학의 탈각이다. 슈미트가 예외를 통해 국가의 실체를 본 반면, 우리는 이제 예외의 희생자를 통해 국가의 도덕을 묻는다. 보수는 이를 두려워한다. 그들은 이 문제를 “빨갱이들의 난동”으로 단순화하고, 국가의 폭력을 ‘필연적 결단’이라 정당화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신앙처럼 붙드는 결단주의는, 오늘날의 현실적 주권 문제 앞에서는 침묵한다. 한미동맹, 기술주권, 외교안보 체제 같은 실제적 결단의 순간에 그들은 결단하지 않는다. 결단의 철학은 더 이상 결단의 행위가 아니라, 신념의 관성으로 퇴화했다.
반면 리버럴들은 결단주의를 거부하면서도, 그것을 대체할 철학을 제시하지 못한다. “모두의 참여”라는 추상적 민주주의의 언어는, 결국 ‘누가 결정하는가’라는 근본 문제를 유예한다. 민주주의는 스스로의 윤리를 방패 삼아 결단의 책임을 회피하고, 그 결과 “결정 불가능의 정치”로 스스로를 안전하게 봉인한다. 민중주의와 민족주의가 다시 매혹적으로 부상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은 비록 낡고 위험한 방식으로라도 “주권자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려 한다. 리버럴은 그 답을 두려워하고, 보수는 그 질문 자체를 금기시한다. 그러나 주권의 공백은 누군가에 의해 채워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자리는 언제나 폭력이 차지해 왔다.
1948년의 주권자는 누구였는가. 남로당, 제주 4·3, 여순의 반란자들은 그 밖에 있었는가, 아니면 그들 또한 주권의 원천이었는가. 이 물음은 단순한 역사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주권의 존재론을 가르는 경계선이다. 1948년의 주권은 결단으로 태어났으나, 그 결단은 외세와 분단의 구조 속에서 이미 타자의 그림자를 품고 있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처음부터 완전하지 않았다. 그것은 예외 속에서 태어나, 예외를 배제함으로써 유지된 주권이었다. 이 불완전성은 한국 근대의 원죄처럼 반복되어 왔다. 여순사건의 피해자들이 70년이 지나서야 명예를 회복하는 과정은, 바로 그 원죄의 윤리적 갱신을 상징한다.
이제 한국의 주권은 또 한 번의 전환기를 맞고 있다. 한미동맹이 더 이상 결단의 조건이 되지 않는다면, 1948년의 건국은 그 정치적 의미를 잃게 된다. 그때 필요한 것은 새로운 결단이지만, 지금의 한국 사회에는 결단이 없다. 보수는 동맹의 안전망에 의탁하고, 진보는 절차의 정당성에 기대어 서 있다. 이로써 우리는 ‘결단 없는 결단주의’의 상태, 즉 형식만 남은 주권의 시대로 진입했다. 슈미트의 말대로라면, 우리는 더 이상 ‘결정할 수 있는 국민’이 아니라, ‘결정당하는 국민’이다. 주권의 외피는 남아 있지만, 그 실질은 타자의 승인 속에서만 존속한다. 그것이야말로 21세기 한국 정치의 구조적 위기다.
주권은 공백을 싫어한다. 그 공백을 메우는 것은 언제나 폭력이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은 단지 중동의 문제가 아니다. 주권이 분열될 때, 우리 안의 하마스와 우리 안의 이스라엘이 동시에 태어난다. 그것은 물리적 내전이 아니라, 정체성과 언어, 기억과 해석의 내전으로 우리 곁에 도래한다. 우리는 이미 그 전조를 목격하고 있다. 역사의 주도권을 되찾으려는 집단과 그것을 억제하려는 체제의 대립이 반복된다. 주권이 결단을 잃을 때, 사회는 윤리적 내전의 상태로 미끄러진다. 여순사건은 그 오래된 전조였고, 오늘의 사회는 그 예외상태가 제도화된 결과일지도 모른다.
여순사건은 단지 과거의 상처가 아니라, 주권이 스스로를 반성할 수 있는가를 묻는 현재의 실험이다. 그 질문은 지금도 유효하다. “1948년의 결단은 오늘의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가.” 보수는 이 질문에 신앙으로, 진보는 도덕으로 대답한다. 그러나 주권은 신앙도, 도덕도 아니다. 주권은 결단이며 동시에 반성이다. 그 반성의 결단이 부재할 때, 한반도는 또 한 번 ‘무주권의 상태’로 회귀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좌우의 정당한 해석 경쟁이 아니라, 주권의 철학으로의 귀환이다. 주권이란 ‘누가 결단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반성할 수 있는가’의 문제로 진화해야 한다. 여순의 피는 국가의 죄가 아니라, 정치철학의 씨앗으로 기억되어야 한다. 그때에야 비로소 대한민국은 건국의 결단을 넘어, 반성의 근대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