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보고식 해상질서와 국가 형성

폭력의 경제학, 질서의 철학, 그리고 해양의 문명사

by 임찬수

“인간은 모두가 두려워하기에, 평화가 생긴다.”

홉스의 이 말은 근대 정치철학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이 문장은 국가 이전의 인간을 ‘야만’으로 전제한다는 점에서 니체의 반론을 불러왔다. 니체는 이렇게 말한다.

“질서는 약자의 합의가 아니라, 강자의 미학이다.”

장보고의 해상질서는 이 두 명제의 교차점에 서 있다.

그는 무정부적 바다 위에서 폭력의 미학을 통해 평화를 세웠다. 그의 체제는 홉스적 공포의 리바이어던이자, 니체적 의지의 형식화였다. 그가 구축한 청해진은 단순한 항구가 아니라, 폭력이 규범으로 전환된 첫 번째 실험장이었다.


8~9세기의 동아시아 해상은 국가의 손이 닿지 않는 공간이었다. 당나라는 해적을 단속할 여력이 없었고, 신라는 행정력이 바다를 통제하지 못했다. 이때 해상교역로는 ‘무정부적 자유지대(anarchic free zone)’로 변했다. 브로델은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에서 이렇게 말한다.

“역사에서 가장 자유로운 시장은, 언제나 국가가 부재한 경계지대에서 태어났다.”

장보고는 바로 그 경계지대의 기업가였다. 그는 ‘무정부의 시장’을 폭력으로 통제하며, 폭력을 거래의 신뢰로 전환했다. 즉, 그가 만든 질서는 “폭력의 가격표가 붙은 자유시장”이었다. 그의 통행세는 약탈이 아니라 보험이었다. 그의 군선은 침략이 아니라 보호였다. 그리고 그의 이름은 ‘리스크 헤지’의 상징이었다. 그가 만들어낸 것은 단순한 해상무역이 아니라 사적 주권의 경제학, 다시 말해 폭력의 합리화였다.


니체의 『도덕의 계보학』은 약자의 도덕이 사회를 ‘순화’시킨 과정을 비판한다. 그에 따르면, 강자는 창조하고, 약자는 규범화한다.

“정의란 강자의 폭력이 스스로에게 부과한 자기 제한이다.”

장보고의 질서가 바로 그 사례였다. 그는 폭력을 통해 질서를 세우되, 그 폭력을 자기 제한(self-restraint)을 통해 제도화했다. 그의 ‘통행세’는 강탈이 아니라 계약이었고, 그의 보호는 위협이 아니라 신뢰였다. 즉, 그는 폭력을 부정하지 않고 폭력을 예측 가능한 형태로 가두었다. 니체적 관점에서 보면, 장보고는 “도덕의 기원”을 거꾸로 보여준다. 도덕은 약자의 방패로 생긴 것이 아니라, 강자의 제도화된 폭력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말이다.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국가를 “공포의 계약으로 세워진 인공적 인간”이라 불렀다. 그는 자연상태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 규정했고, 이를 끝내기 위해 절대권력을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장보고의 해상체제는 홉스의 모델과 유사하게 공포의 경제학으로 작동했다.

바다 위에서의 생존은 폭력의 관리에 달려 있었고, 그는 그 공포를 독점했다. 사람들은 자유를 잃었지만, 불확실성을 줄였다. 홉스의 말대로, “자유보다 평화가 더 비싸다.” 그러나 장보고의 질서는 홉스의 국가와 달리 국가의 승인 없이 작동하는 리바이어던이었다. 그는 신라의 명령을 받지 않고, 당의 허락을 구하지 않았다. 즉, 그는 자생적 리바이어던(spontaneous Leviathan)이었으며,

그의 질서는 국가가 아니라 시장이 낳은 평화였다.


브로델은 지중해를 “세계의 교류가 폭력과 교환의 경계에서 이루어진 공간”으로 묘사한다. 그에게 해양은 항상 국가보다 빠르고, 자본보다 오래된 질서였다. 그렇다면 청해진은 동아시아의 소규모 지중해였다. 그곳은 신라·당·일본·동남아의 상인들이 모여들어, 종교·언어·화폐가 뒤섞인 다층적 네트워크였다. 브로델이 말한 “역사의 심층(longue durée)”에서 본다면, 장보고의 실험은 단지 한 인물의 영웅담이 아니라 해양문명 특유의 자생적 질서 형성 메커니즘을 보여준다. 그의 질서는 바다의 경제가 국가의 육지 질서를 압도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국가의 제도가 아닌 교류와 폭력의 복합체로서 하나의 문명을 창출했다.


경제인류학적으로 보면, 장보고 체제는 ‘프로토국가(protostate)’의 전형이다. 그의 조직은 세 가지 기능을 수행했다. 첫째, 경제적 기능으로 교역, 세금, 보험, 노예시장을 통합했다. 둘째, 정치적 기능으로 분쟁조정, 계약집행, 법적 제재를 수행했다. 셋째, 문화적 기능으로 교역민족 간의 다언어·다종교적 융합을 시도했다. 이 세 가지는 근대국가가 수행하는 기본 기능이기도 하다. 즉, 장보고는 “국가의 기능을 가진 비국가”였다. 그의 통행세는 세금이 되었고, 그의 폭력은 법이 되었다. 그의 해상질서는 곧 경제를 통해 국가로 수렴되는 인류학적 과정의 미시모델이었다.


장보고의 실험은 결국 신라 조정의 견제 속에 붕괴했다. 사적 주권은 공적 주권에 흡수되었고, 폭력의 독점은 국가의 몫이 되었다. 그러나 그가 남긴 구조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늘날 메콩강 삼각주, 아프리카 연안, 중남미의 항만도시까지 모두가 ‘장보고적 질서’, 즉 폭력의 시장화와 질서의 자생적 발생을 반복한다. 이것은 인류 문명의 구조적 리듬이다. 혼돈은 폭력을 낳고, 폭력은 질서를 낳으며, 질서는 다시 부패하여 새로운 혼돈을 부른다. 니체의 말처럼, “모든 질서는 결국 새로운 무정부를 준비한다.” 장보고는 그 순환의 한 지점에서, 폭력의 미학을 질서의 철학으로 바꾸어 놓은 최초의 동양적 리바이어던이었다. 그의 바다는 무정부가 아니었고, 그의 질서는 독재가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이 스스로 폭력을 길들이며 문명을 만들어가는, 가장 원초적이면서도 현대적인 경제인류학의 장이었다.





작가의 이전글주권의 상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