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곡점을 맞이한 북한, 부활의 시작일까 몰락의 징조일까

by seeker

한반도에 예사롭지 않은 공기가 흐른다. 지난 1월 5일, NLL 북방 일대 영역에는 북한이 쏜 200여 발의 실탄이 떨어졌다. “즉시 강력하게 끝까지 응징한다”라는 신원식 국방부 장관의 지시에 따르듯, 우리나라는 약 6시간 만에 2배가량의 실탄 양인 400여 발을 NLL 남방 해상지역에 설정한 가상표적을 향한 사격훈련을 실시로 대응하며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우리나라를 향한 발언 속에 전쟁, 괴멸, 적대적인 두 국가 등 공격적이고 민감한, 유례없는 표현을 발언 속에 포함하며 지난달 14일까지 잇따라 7회의 군사적 대남도발을 감행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러한 북한의 행동에 대해 “비이성적 집단”이라 발언하는 등 비판적인 자세를 취하며 두 국가 사이의 갈등은 격화돼 가고 있다.

북한의 도발은 최근 들어 심화하긴 했지만, 이것은 비단 요즘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북한은 예로부터 끊임없이 도발을 감행해 왔다. 그중 가장 위협이 됐던 것은 핵무기로, 이는 북한과의 회담에서 늘 빠지지 않는 “뜨거운 감자”였다. 북한의 도발과 끊임없는 핵무기 개발의 원인은 북한의 국제적 위상과 북한의 역사에서 기인한다.

과거 소련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권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권이 이념 전쟁을 하던 냉전 시대에, 1950년대 후반에 이르러 사회주의권의 가장 큰 두 세력 중국과 소련 사이의 갈등으로 인해 사회주의권은 하나로 뭉치지 못하는 상황을 마주하고 있었다. 1950년대 말 1960년대 초에 이르러 갈등이 본격화되고 사회주의권이 중국과 소련 두 국가를 중심으로 나뉘는, 이른바 중소분열이 일어난다. 과거 소련과 중국에 대한 높은 의존도와 잦은 갈등으로 인해 북한은 중소분열을 계기로 삼아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경제, 국방, 정치 등을 외세의 간섭과 도움 없이 스스로 해결하고자 하는 “주체사상”을 표방한다. 그러나 북한의 주체사상은 다소 극단적이었다. 외교적으로 강대국에 굽히지 않고 제3세계 국가들과 느슨한 외교 관계를 유지하는 가운데 점점 더 자발적 고립을 자처했고, 자립 경제 정책을 추진해 경제 부흥을 꾀했다. 국방도 자주적으로 해결하고자 했다. 특히 북한은 미국의 핵 위협에 맞서기 위한 수단으로 핵무기를 개발하고자 했으나, 당시 미국과 소련은 핵확산을 엄격히 금지해야 한다는 점에 사실상 합의하고 있었으며, 소련의 입장에서는 북한에 핵기술을 전수해 줘야 할 별다른 이유를 찾지 못했다. 이렇게 북한의 안보에 공감해 주지 못하는 세계적 분위기는 ‘자주’라는 키워드와 맞물려 북한의 호전적 성향 강화, 군사 우선주의 체제의 동기, ‘자주국방’ 성격의 강화로 인한 자체 핵무기 개발을 이끄는 계기가 됐다. 결국, 소련 붕괴와 냉전 질서 해체 이후 북한은 스스로 택한 ‘극단적 자주’라는 노선을 한층 더 강화하며 정권 생존의 수단으로서 핵을 개발에 매진했다. 또한 이런 노선 위에서 외교적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도발이라는 카드를 집어 드는 것이다.

최근 북한의 행동은 단순히 ‘영향력 행사’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특히 북한의 도발과 통일 지우기의 여파로 ‘한반도 전쟁위기설’이 대두됐다. 지난 1월 11일, 로버트 칼린 미국 미들베리국제연구소 연구원과 지그프리드 해커 스탠퍼드대 명예교수는 “한반도 정세가 1950년 6월 초 이후 그 어느 때보다 위험하다”라며 뒤이어 “김정은이 그의 할아버지가 그랬듯 전쟁하기로 전략적 결단을 내렸다고 본다”라고 한반도의 드리운 위험을 경고했다. 최근 북한에게 전쟁에 대한 자신감이 조성된 환경도 지적된다. 최근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벌이며 무기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러시아에 무기를 제공해 줄 수 있는 유일한 국가로 떠오르며 러시아로부터 다양한 무기 기술을 이전받아 국방력을 강화할 수 있게 됐다. 특히 백악관은 지난해 10월 VOA에서 ”북한이 탄약 지원의 대가로 러시아로부터 전투기, 지대공 미사일, 전차, 탄도미사일 생산 장비 등을 포함한 군사적 지원을 받고자 하는 것으로 평가한다“라고 밝힌 바가 있다. 물론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거란 의견도 존재한다. 영국의 언론 이코노미스트 및 BBC가 위 분석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보도를 낸 것에 뒤이어 한미 정책당국 또한 전쟁 발발 가능성이 작다며 진화에 나섰고, 한미 연합방위 태세의 굳건함을 강조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북한의 체제에 균열이 생기고 있는 듯한 정황들이 보이기도 한다. 북한은 주민들이 외부 세계에 동경을 갖고 체제를 불신하지 않도록 막기 위해 ‘반동사상 문화 배격법’, ‘청년 교양 보장법’에 이어서 지난해 ‘평양 문화어보호법’을 도입하는 등 외부 문화 유입에 대한 통제를 더욱 강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통일부가 지난달 발표한 ‘북한경제·사회 인권 실태 인식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 이전 탈북민 중 외부 영상물을 본 이는 8.4%에 그쳤으나 2016년부터 2020년 사이 탈북민 중 83.3%가 외부 영상물을 봤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북한 체제가 지속될 수 있을지에 대한 물음표가 생기기 시작했다. 더불어 지난달 14일, 한국은 북한의 오랜 우방국인 쿠바와 수교를 발표하면서 북한의 세계적 고립이 심화했고, 지난 1월 11일 중국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 수천 명이 북한 당국의 임금 체불에 대한 항의로 다수 공장에서 폭동과 연쇄 파업을 일으킨 것으로 밝혀지면서 북한 역사상 최초로 노동자 집단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북한은 자주 노선을 택한 지 약 60년 만에 ‘좋은’ 국제 정세를 맞아 돌파구를 찾은 듯 보이나, 동시에 주민들의 계몽도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앞으로의 미래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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