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도 때가 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노안이라는 소리를
많이 듣고 자랐다.
예를 들어 나보다 5살이나 많은 친언니와
내가 같이 있는 경우
사람들은 나보고 언니냐고 물어보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에도 나랑 나이차가 크지 않은
아는 동생과 절에 놀러 갔는데
엄마와 딸이 놀러왔냐고 하는 것이 아닌가.
(조금 충격먹었다. 그럼 50대 60대로 보인다는건데 흠...
나 아직 30대인데?!!!)
그렇게 나이 들어 보이나?
내가 너무 피부관리에 소홀했나?
그런데 솔직하게 말하자면
사실 나는
내가 동안이던 노안이던
그렇게 신경쓰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 노안에 대해
나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아버지의 실직으로
가정에 풍파가 닥쳐오기 전부터도
우리집은 그리 넉넉한 집안은 아니었다.
아버지가 실직해서 우리집이 가난해지기 시작한 게 아니라
우리 집은 원래 가난했었다.
그런데 실직으로 인해 그 정도가 더 심각해졌을 뿐.
그래서 항상 부모님의 경제 상황에 대해
눈치를 봐야했고
갖고 싶은 장난감들을 엄마에게 사달라고 조르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어른들의 상황에 대해
누구보다 빠르게 눈치를 보면서
말을 골랐고,
엄마, 아빠 속을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다.
내가 부모님 속을 썩이지 않아도
부모님 속이 썩어날 일은 무수히 많았기 때문이다.
나는 알아서 공부를 했고
(공부를 못 해서 부모님을 신경쓰게 하고 싶지 않았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조숙해지려고 노력했다.
나는 애늙은이 어린이가 되고 만 것이었다.
자연스러운 성숙이 아니라
조숙한 어린이가 된 것이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내가 중학교에 올라갈 때
부모님께서는 채소가게를 접으시고
대학교 앞에 호프집을 차리셨다.
오후 3시부터 밤을 꼬박 새시고
아침 7-8시에 장사를 하셨는데
(그때는 사회가 술을 흥청망청 마시는 분위기였었다.)
밤에 손님이 많아 바쁠 때는
아무때고 집전화가 울렸다.
와서 설거지 하라는 전화.
그러면 언니와 나는 부모님 가게에 가서
설거지를 했다. 서빙도 하고.
언니는 그 당시 대학생이었는데
(심지어 부모님 가게 앞 대학교를 다녔었다.)
가게 안 부엌 싱크대에서
처리가 안되는 설거지거리들은
가게 밖 도로에 인접한 수도꼭지에서
설거지를 해야했다.
자격지심 덩어리인 나는
(더군다나 사춘기 중학생이었으므로)
가게 밖 수도꼭지에 쭈그리고 앉아서
해야하는 설거지는 절대로
하기 싫다고 생각해서
은근슬쩍 그런 상황이 되면
언니에게 넘겼는데
언니는 또 그걸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설거지하고 있을 때
자기 과 친구들이 지나가면서
야 너 뭐하냐? 그러면
여기 우리 부모님 가게야,
일 도와드리고 있어 하는 것이 아닌가.
똑같은 가정환경인데도
자격지심과 열등감 덩어리인 나와 다르게
언니는 건강하게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내 마음은 더 늙어버렸다.
언니와의 비교까지 더해지니
내 마음은 더 무너지고
내 엄청난 자격지심과 열등감은
고스란히 얼굴 표정으로,
주름으로 남아버린 것이라고
내 얼굴을 볼 때마다 나는 생각했다.
나는 나이에 맞지 않게 늙어버린 거라고,
마음고생이 얼굴에 흔적을 남겨버린 거라고 말이다.
그렇게 대학생이 되고, 사회인이 된 나는
나이보다 훨씬 성숙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었다.
나는 속으로
어렸을 때부터 고생을 많이 해서 그래요, 하면서
씁쓸하게 그 말을 들었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성숙한 사람에 대해
사회는 좋은 평가를 해주나,
그 성숙이
어린 나이에,
그 나이에 맞지 않게 일찍 해버린,
조숙의 경우
그 어린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건강한 어른이 되느냐는
다른 문제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성숙도 때가 있다.
자연스러운 속도에 맞게 성숙해야
알찬, 건강한 열매로 맺어지듯이,
사람도 똑같다.
나도 그 나이에 맞게
철딱서니 없는,
순수한 아이로 컸다면 어땠을까.
좀더 건강한 사람이 되었을까.
하지만 시간이 흘러
가난에 대한 자격지심은
그때 그 호프집으로 대박이 나서
말그대로 부모님이 건물주가 된 후로
많이 옅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나 또한 어린 나이에 사회인이 되어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더욱더 돈에 대한 열등감은 많이 사라졌다.
자격지심과 열등감은 옅어졌으나
내 얼굴에 새겨져버린
노안은 어떻게 할 수가 없어졌다.
나는 내 나름대로 이 것을 어떻게 바라볼지 선택해야 했다.
그래, 어렸을 때 고생 많이 했다, 애썼어,
그런 고생 때문에 나이에 비해 일머리도 좋고
사회성도 길러졌잖아, 눈치도 있고,
살아가는데 일머리, 사회성, 눈치있는 거?
엄청 좋은거야,
너 그래서 어디가서도 잘 적응하고 잘 살잖아,
좀 늙어보이면 어떠냐,
술 살때 민증 안 보여도 되니까 편하잖아, 좋네, 뭐
이렇게 결론내리자
내 노안은 내가 지나쳐온 과거의
영광스러운(?) 흔적으로 생각될 뿐이다.
하지만 내 딸을 보면서
너는 너 나이에 맞게 크는 게 좋겠어,
조숙할 필요 없어,
자연스러운 속도에 맞게 크는 게
건강한 거야 라고 생각해서
쁘나에게서 무언가 지나친 의젓함(?),
성숙한 말과 태도가 보이면
너 뭐여? 왜 이래? 애같이 굴라고!!! 하는 부작용도 조금 있긴 하다.
항상 중간이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