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일없는 날도 기록하는 사람

by 서진

별일 없는 하루를 돌아보며 일기를 쓴다.

별일 없는 날은, 그래서 쓸 말이 없는 날은 어떤 특별한 에피소드가 없는 날이다. 기록을 할 만한 ‘건덕지’라고 해야 하나.

특별함은 포착하는 것이라지만 찬찬히 하루를 거슬러 훑어봐도 글감이 될 만한 일들이 걸러지지 않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은 하루의 일과들을 시간 순서대로 나열해본다.


미라클 모닝을 하고 있는데 오늘은 5시에도 6시에도 일어나지 못해서 7시에 일어났고 일어나자마자 홍차를 한 잔 내린 후 도시락을 쌀 때를 대비해서 오이를 채칼에 썰어서 소금을 뿌려두었다. 시간이 필요한 요리 손질은 이제 미리 해둔다.


그리고 7시부터 8시까지 딱 한 시간 영어 단어를 공부하고 8시부터 8시 반까지 황정은 작가님의 “일기”의 한 꼭지를 필사했다.


그 이후에는 소금에 절여둔 오이를 꼭 짜서 물기를 제거하고 계란을 부치고 당근을 볶아서 대충 김밥을 두 줄 말았다.


도시락에 나름대로 모양을 내서 담은 후 사진도 찍어둔다. 2년 전부터 나는 내가 매일 입는 옷을 찍어두고 1년 전쯤부터는 내가 먹는 음식을 사진 찍어둔다.


sns에 올리고 기록 해두기 위해 시작한 일인데 어엿한 습관으로 자리 잡아서 이제는 당연한 나의 일과의 한 부분이 되었다.


도시락까지 준비하면 씻고 간단한 화장을 하고 옷을 입고 집을 나서기까지는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혼자 살면서 갖게 된 강박이 있는데 집을 나서기 전에 가스레인지를 두 번씩 확인하는 것이다. 다시 확인하는 게 싫어서 요즘엔 사진을 찍어둔다. 예전에 한번 심리 상담을 받아봤는데 그런 강박증을 고치는 데는 사진을 찍는 것보다 그냥 자신이 그 행위를 했다고 믿는 게 도움이 된다고 조언을 들었지만 역시 나는 나를 믿지 못하고 그 불안함을 견디기 싫어서 사진으로 남겨둔다


사진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 자꾸 사진에 의존하게 된다.


지하철을 한번 갈아타고 출근을 하면 나의 일터에서의 생활이 시작된다.


일을 할 때는 시간이 빠르게 간다. 점심시간, 티시 간, 간식 시간을 분기점으로 손님들을 응대하고 그날 처리해야 할 일들을 처리하다 보면 금세 퇴근 시간이 된다.


일을 하다 보면 시간이 너무 빨리 가서 일 년을 돌아봤을 때 일을 한 기억만 빼곡히 남아있는 것 같아 SNS를 하게 되었다. 일을 하는 사이사이 쉬는 시간에 나는 영어 공부를 하고 책을 읽고 간식을 먹고 글을 쓰고 다른 이들의 계정에 댓글을 단다. 틈새 시간에 멍하니 유튜브를 보거나 인터넷 뉴스란을 떠도는 게 싫어서 무엇인가 다른 일을 해보자 하고 시작된 일들이 이제 관성이 되었지만 그런 행위들이 나에게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는지는 모르겠다. 일주일에 5일은 운동을 하고 배달 음식을 시켜먹는 대신 간단한 집 밥을 만들어 먹지만 그 규칙적인 삶에 어느 정도는 만족을 하지만 또 부족하다는 생각도 종종 든다.


열심히 안 사는 것은 아닌데. 일도 하고 그 와중에 운동도 독서도 하고 영어 공부도 하고 그런 일들을 함으로써 일상의 불안함을 많이 불식시켰지만 삶의 사소한 반짝임을 놓치기 위해 아등바등하지만 그래도 그래도... 끝내 아쉬운 것들


하루는 오늘도 나의 그런 아쉬움과는 상관없이 벌써 저물어가고 나는 또 내일의 에피소드를 기대하겠지. 지난 2년간 많은 사진을 남기고 흘러가는 시간을 포착하기 위해 애썼지만 가끔은 더 거창한 것을 원하는 마음 때문인지 선택과 집중을 고민하다 결국 집중하지 못하고 놓지 못한 것들로 인해 중요한 것들이 느리게 흘러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마음이 산란해진다.


그럼에도 모자란 나의 가능성에 애써 희망을 걸며 내가 느끼고 겪은 것은 사소한 것들을 사진과 글로 남겨두려고 애쓴다.


최근에 발표된 테일러 스위프트의 신곡에 이런 가사가 나온다.



태양은 똑바로 볼 수 있어도 거울 속 내 모습은 못 보겠어


주인공 같지 않은 주인공을 늘 응원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지



내 삶의 주인공은 마땅히 내가 되어야 하겠지만 나는 내가 관찰자로서의 소명을 가진 인간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무엇인가를 항상 바라보고 관찰하는 사람. 주인공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주로 관찰당하는 사람이지 관찰하는 사람이 아니다. 시선의 포커스가 멈추는 곳에 그이가 있으니까 나는 “관찰하는”이로서의 내 삶의 몫을 받아들이며 세상을 관찰하고 나 자신도 한 발자국 떨어져서 관찰하며 "관찰하는 나"와 "관찰당하는 나"로 내 자아를 분리해 기록하고 체크한다. 관찰하는 습성을 타고났다면 끝내 나 자신의 정수도 끈질긴 관찰로 발견할 수 있을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므로

작가의 이전글김애란 작가의 글을 읽으며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