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아버지의 빈자리 보다 내가 만들 빈자리가 걱정된다.
이젠 정말 까마득한 예전이 되었지만, 어렸을 적 아버지와 함께하는 시간이 참 좋았다. 아버지는 장사를 하셨기에 요즘처럼 주 5일을 쉬기는커녕 다들 쉰다는 일요일도 한 달에 한번 쉬는 정도였다. 심지어 매일 한 시간 반 거리를 출퇴근하셨기에 새벽 6시 반이면 출근하셨고 11시는 되어야 퇴근하셨다. 그때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맞벌이였던 어머니도 나와 동생 아침밥을 챙겨주고 일을 나가셨고, 동생과 함께 학교에 가는 게 일상이었으니.
그럼에도 한 달에 한번 쉬는 날이면 아버지는 무언가 같이 해주려고 노력하셨었다. 물론 아닌 날도 있었으리. 어떤 날은 혼자 낚시를 가신 날도 어떤 날은 가족행사나 어떤 날은 집에서 쉬기만 하셨던 날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몇몇 함께 했던 기억들이 참 좋았다.
한 번은 장마철에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서울에 다리가 다 잠겨 출근하시던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신 적이 있었다. 마침 학교도 임시 휴교라서 가족이 다 같이 단칸방에 누워 얇은 이불을 덮고 작은 TV를 보며 재밌다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비가 참 고마웠다. 아버지와 어머니와 우리 가족이 다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줘서.
그랬던 아버지가 떠나신 지 벌써 20년이 지났다. 크리스마스이브 아침, 낚시를 가신다는 아버지를 잠결에 인사하고 그날은 케이크이라도 사서 같이 먹어야지 하고 생각했었던 그날. 오후 5시 갑자기 집 전화기가 울렸다. 어머니의 다급한 전화였다. 아버지께서 병원으로 이송되셨다고.
택시를 타고 한 시간 거리의 작은 병원으로 갔다. 가던 길에 난 별게 아닐 거라고 어머니를 안심시켰었다. 그냥 단순한 사고일 것이라고. 그런데 병원에서 본모습은 날 절망하게 만들었다.
침대에 누워있는 아버지. 그 침대에 올라가 땀범벅이 되어 CPR을 하는 의사. 가족이 다 온 걸 확인하고 인턴인 듯 젊어 보였던 의사는 우리에게 말했다.
"OO시 OO분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이송되셨고 지금까지 1시간가량 조치를 했으나 바이탈이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조치를 더 할까요?"
처음에는 더 해달라고 했지만, 아무리 해도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우리는 그만해 달라고 했다.
사망 원인은 '허혈성 심근경색'. 얼마 전부터 피곤해하시고 다리가 저리시다고 하셨었는데 그게 그 전초증상이었었나 보다. 제대로 된 건강검진 한번 못 받으셨던 게 내심 죄송스럽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던 게 원망스러웠다. 그때 난 군대를 다녀온 후 대학 복학했던 대학교 2학년이었다.
한 겨울 아버지가 열심히 연을 날리고 썰매를 타셨을 고향에 눈이 한창 오던 날 보내 드리고 하염없이 울었다. 아버지의 빈자리가 허망해 울었던 것도 있었지만, 해드린 게 너무 없고 받은 것만 많아서 울었던 것도 있었다.
그렇게 20년이 지났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부단히 도 열심히 과외를 해서 학비를 벌었고, 4학년이 끝나기도 전에 숙소를 제공해 주는 지방의 대기업 계열사로 취업을 했다. 어머니의 절약 정신 덕분에 벌이는 적었지만 그렇게 빠르게 취업을 해야 하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냥 빨리 안정적이고 싶었다. 그리고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이제는 무덤덤해진 기일에 가족끼리 모여 예배를 드리며 이제는 너무 식상해진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아버지 이야기를 하며, 조금만 더 살다 가셨으면 좋은 것 많이 보셨을 텐데 하는 푸념을 하며 그렇게 기일을 보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떠난 다면 어떻게 될까? 돈은 누가 벌고, 아이와 야구는 누가 하고, 야간 운전은 누가 하고, 음식물 쓰레기는 누가 버리지..?
어느덧 내가 만든 자리가 커져버렸단 생각에 전엔 느끼지 못했을 부담이 찾아왔다.
죽음이란 오히려 살아갈 힘을 주는 메타포가 될 수 있단 말이 있다. 영원할 것 같은 인생이 주는 늘어짐을 죽음이라는 언제 일지 모르지만 언젠간 맞닥뜨리게 될 이벤트는 다시 사람을 긴장하게 만든다.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내가 아버지께 했던 한탄처럼, 이젠 내가 그런 한탄을 듣지 않게 더 오래 살아야만 한다는 이유가 생겼다. 삶의 이유. 더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 아버지가 떠난 날을 추모하는 그날에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를 하나 더 깨닫고 간다.
아버지. 이젠 많이 희미해져 잘 떠올려지지 않지만, 그때 그 따뜻함을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괜히 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