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신비주의를 벗고 망가짐을 선택했을까?
2000년에서 2010년 사이.
돌이켜보면 그 시기는 문화의 대폭발기였다.
세기말 특유의 불안과 기대가 뒤섞인 분위기 속에서 새로운 시도들이 쏟아졌다. 음악은 서태지를 기점으로 완전히 다른 결을 보여주기 시작했고, 무엇보다 음악 소비의 중심이 기성세대에서 10대로 이동했다.
그 시대의 정점에 누가 있었느냐 묻는다면, 많은 이름이 나오겠지만 내 기억 속 정점은 단연 H.O.T였다.
H.O.T는 당시 대중에게 다소 낯설었던 장르를 전면에 내세웠고, 10대가 품고 있던 분노와 불안을 노래로 끌어올렸다.
동시대에 젝스키스도 있었지만, 체감상 대중적 파급력은 H.O.T가 조금 더 강했던 것 같다.
무엇보다 그 시절 연예계의 키워드는 ‘신비주의’였다.
사생활은 철저히 차단되었고, 방송에서도 말을 아끼게 했다. 무표정, 과장된 헤어스타일, 정제된 이미지.
우리는 그들을 ‘알 수 없는 존재’로 소비했다.
그 신비로움이 곧 권력이었다.
2000년대를 어린 시절로 보낸 이들에게 H.O.T는 단순한 가수가 아니다.
추억이자, 한 시절의 상징이다.
다시 모인다는 것의 무게
시간이 흘러 해체.
JTL로 나뉘고, 각자의 길을 걷고, 어떤 이는 솔로로, 어떤 이는 록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다시 모였다.
무한도전 무대에서 과거의 의상과 안무를 그대로 재현한 모습을 봤을 때 나는 놀랐다.
아직도 저 에너지가 남아 있다는 사실에.
그런데 최근 또 한 번 놀랐다.
“저 하늘을 바라다보며”가
“저 한우를 바라다보며”가 되고,
“내 꿈도 빼앗아 갔어”가
“내 꿈도 빼앗아 가쓰오”가 되는 순간.
그들은 광고 속에서 스스로를 희화화했다.
한때 신비주의의 정점에 서 있던 이들이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정말 돈이 궁했던 걸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은 조회수와 화제성이 모든 것을 설명하는 시대다.
신비로움은 더 이상 권력이 아니다.
노출과 밈, 패러디가 생존 방식이다.
과거처럼 침묵하고 거리를 유지한다고 해서 카리스마가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재미없다”는 평가 속에 사라질 가능성이 더 크다.
어쩌면 그들에겐
‘가만히 있다가 잊히는 것’이
‘한번 망가져서라도 기억되는 것’보다 더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번 선택이 틀렸다고 보지 않는다.
조금은 아쉽지만, 시대를 읽은 전략이었을지도 모른다.
밀려나는 것은 그들만이 아니다
광고를 보며 아내가 말했다.
“소찬휘도 아파트 축제에 와서 노래 부르는 시대야.
H.O.T가 거기 나온다고 이상할 것도 없지.
우리가 그만큼 지난 거야.”
그 말을 듣고 이상하게 씁쓸했다.
H.O.T가 주류에서 밀려난 것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가 밀려난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이 ‘망가졌다’고 느끼는 건,
사실 우리가 아직도 그들을 20년 전의 자리에서 바라보고 있기 때문 아닐까.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고맙다.
어떤 방식으로든 다시 무대에 서줘서.
추억은 완벽한 상태로 박제될 수는 없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르니까.
다만, 저 한우를 바라다보며 웃고 있는 그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시간을 본다.
그리고 그 사실이, 조금은 쓸쓸하지만 그게 현실이다. 그때만큼 풋풋함은 없지만 그래도 지금은 내가 번 돈으로 한우 사 먹을 수 있는 여유가 있으니까. 지금도 그렇게 나쁘지 만은 않은 것 같다. 무엇이 틀렸다기보다 다른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