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간도나 신세계를 기대했지만, 현실은 조금 어두운 분위기의 무빙
연휴 직전 영화 예매권이 하나 생겼고, 와이프와 아이에게 영화 보러 가겠냐고 물어봤지만 다들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예전에는 명절 연휴에 극장에 가는 게 큰 재미였는데, 그만큼 영화의 인기가 사그라들었다. 물론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논쟁은 있을 수 있다. 재미있는 영화가 없어서 보러 가지 않는 것도 있고, 영화라는 매체 자체가 갖는 매력이 줄어든 것도 있다. 덩달아 예전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보러 가던 영화가 이젠 내 돈 주고 보러 가기는 아까울 정도로 비싸진 것도 있으리라.
보러 갈 시간이 연휴 전 금요일 심야 밖에 없었기에 고민했던 영화는 2가지였다.
조인성, 박정민, 신세경 주연의 첩보물? "휴민트"와 유해진 주연의 잔잔한 시대극 "왕과 사는 남자".
'왕과 사는 남자'는 감동적인 내용이라 막판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많다고 하기에 가볍게 보고 싶어 '휴민트'를 선택했다. 뭔가 기본적으로 어두운 분위기가 더 끌렸다. 좋아하는 배우인 조인성과 박정민이 남과 북의 대척점에 있다는 점도 기대가 됐다. 베를린에서 나름 나쁘지 않은 연출을 보여줬던 류승완 감독이 전체적인 감독이었던 점도 좋았다.
일단, 전체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영화에 대한 한 줄 평을 하자면,
"무간도나 신세계의 다크함을 표방하지만, 그 깊이에 다다르기엔 스토리가 빈약하고 배우들 자체 색이 너무 튄다."
스토리는 뒷부분에 언급하고 먼저 배우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사실 너무 좋은 배우들이고 너무 사랑하는 배우들이다. 극 중 연기도 매우 좋았다. 그런데, 뭐랄까, 영화 자체에 녹아들어 가지 못하는 느낌이다.
먼저, 주연 중 한 명인 조인성.
그의 긴 코트는 정말 멋이라는 게 이런 것이구나를 느끼게 해 준다. 눈빛 연기도 그렇고 총격씬도 그렇고 다 좋았다. 그런데.. 뭐랄까.. 무빙의 김두식이 계속 떠오른다. 아무래도 비슷한 역할을 자주 했기에 올 수밖에 없는 기시감이 아닐까 싶다. 같은 역할이라고 하더라도 뭔가 다른 킥은 만들어 보는 게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또 다른 주연, 박정민
박정민 배우의 광기 어린 눈빛 연기는 관객을 빠져들게 만든다. 약간은 투박한 액션도 마음에 들었다. 간절한 눈빛의 멜로도 좋았다. 사실 박정민이 전체적인 흐름을 다 끌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본다.
너무 한결같이 예쁘기만 했던 신세경
신세경 배우가 예쁘다는 것에 대해선 그 누구도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쁜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다. 한복 여신답게 무대에서 북한식 한복을 입고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너무 예뻤지만, 뭐랄까, 내가 왜 저 여자를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하지? 란 당위성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건 아마도 빈약한 스토리의 한계일 수 있기도 하지만, 배우의 연기도 조금 떠있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극 중에는 한결같이 예쁘다.
전체적으로 배우들 자체도 좋고 연기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의 구성이 조금 아쉬웠다.
본 시리즈를 보면, 주인공이 죽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긴 하지만, '와. 저렇게 할 수 있다고? 저 정도 했으면 살아줘야지.'라는 생존의 공감이 든다. 그런데 휴민트에서는 빗발치는 총알 사이에서 살아남고, 천하무적 방탄조끼로 생사가 갈린다.
눈밭에서 자동차 액션도 좋았고, 약간 무빙의 느낌이 나긴 했지만 많은 적들을 헤쳐나가는 총격 액션도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가장 중심이 되는 총격신에서 뭐랄까. 조금 기운이 빠진다고 할까? 약속 대련의 느낌이 들었다. 스코프가 있는 소총은 왜 갖고 온 거지?
이 이야기의 가장 중심은 멜로이고, 멜로여야 한다. 그게 아니면 이 상황이 설명이 안된다. 그런데 그 멜로의 개연성이 너무 낮다. 박정민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왔는데 때 마침 구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그러니 뭔가 흐름이 복잡해진다. 차라리 그냥 구하러 오는 게 맞을 것 같다.
그리고 조인성도 자신의 휴민트에 대한 연민인 건지, 사랑인 건지 모호하게 나온다. 이도 저도 아닌 스탠스는 보는 사람을 짜증 나게 만든다. 그래서 왜 네가 죽을 고비까지 넘겨가며 그 여자를 살리려는 건데? 그냥 휴머니즘인가? 안타깝게도 멋있게 보이려고는 했겠지만 공감은 되지 않는다.
특히 마지막 결론은 '뭐지?'란 어이없음을 들게 한다. 마지막 장면이 나오고 바로 인터넷으로 쿠기 영상을 검색해 봤다. 이건 아닌 거 같아서. 뭔가 다른 뒷 이야기가 더 있을 것 같아서. 그런데 쿠키는 없었다.
모호하게 끝낼 거면 충분히 인셉션 같은 열린 결말로 관객을 계속 궁금하게 만들 수도 있을 듯한데, 이건 궁금증 보다도, 뭐지? 란 어이없음만 들게 해서 아쉬웠다. 뭔가 반전의 실마리라도 던져줬으면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N회차도 이끌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아주 안 좋은 영화라고 하긴 그렇다. 최근 OTT 홍수로 이것보다 더 형편없는 영화는 많고 많다. 그래도 영화를 보고 돈은 아깝지 않은 영화였기에 만족한다.
영화를 보고 오며 갑자기 신세계가 보고 싶어졌다. 이번 주말에는 오랜만에 신세계를 다시 봐야겠다.
구르미 평점 : 3.5/5
좋은 연기, 좋은 영상, 조금 아쉬운 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