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 반, 남편의 출근에 작은 샌드위치를 부랴부랴 만들어 쥐어주곤 아침을 시작한다. 제법 자란 뱃속의 아이를 힘껏 품어 안고 남편의 출근길을 배웅하는 나를 돌아보면 멋쩍은 웃음이 나기도 한다. 참, 내가 이 나이 이 계절에 이런 모습을 하고 있을 거였구나 생각하며 지난날의 세월이 지금 이 순간을 중심으로 짜 맞춰 질서 있게 정리되기도 한다.
대게는 남편이 출근한 뒤 남은 재료로 간단히 내 아침도 챙겨 먹고 (뱃속의 아기의 식사를 챙기는 기분이 들 때가 더 많다) 빨래나 청소기만 간단히 한 뒤 다시 잠에 들지만, 오늘부터는 오전 생활을 충실히 해보기로 했다. 뱃속의 꼬맹이가 나오기도 전에 우리 집엔 이미 깡총대는 강아지 한 마리가 살고 있어서, 내 일상은 이 작은 생명체들을 키우느라 여념이 없다. 고로 오전 시간이 확보가 되어야 하루가 길고 여유롭게 지나갈 것 같아 좀 더 부지런을 다짐했다.
임신 24주 4일 차, 아침에 일어나면 온몸이 부어있다. 생리통도 몸살도 아닌 것이 등과 어깨는 뻐근하고 다리는 퉁퉁 게다가 산만큼 불뚝한 배까지. 몸이 천근만근이다. 자고 일어나면 피로가 싹 가신 개운한 몸이어야 하는데 임산부의 몸은 상식에서 많이 벗어나있다.
티비를 틀어 유튜브의 요가 영상을 찾는다. 내가 주로 하는 임산부 요가는 20분짜리 짧은 스트레칭인데 이 짧은 시간으로 하루를 사는 기분이다. 1:1 필라테스나 요가학원 같은 거창한 계획이나 의욕 같은 것도 필요 없다. 비록 한 손으론 강아지를 놀아줘야 해서 온전히 조용한 요가를 즐길 순 없지만, 완벽함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은 것 또한 아침 요가를 하며 되짚는 나만의 다짐이다.
충실히 요가를 끝내고 30분가량 더 강아지를 놀아주면 얘도 지치고 나도 지친다. 아무 걱정 없이 행복만 해달라며 이름을 ‘해피’라고 지어주었는데, 강아지도 이름 따라 산다. 정말 마냥 행복하고 맑은 댕댕이.
마침 다 된 빨래를 건조기에 쑤셔 넣고 어질러진 잡동사니를 정리하고 나면 벌써 11시가 넘어있다. 4시간 간격으로 정확히 울리는 배꼽시계를 위해 점심을 준비한다. 어제 주말, 어머님이 만들어주신 달래장과 감태, 친정엄마가 싸주신 냉이배추된장국. 집밥파인 나에겐 너무도 황홀한 점심이 아닐 수 없다. 맛있는 집밥 하나로 너무도 행복한 월요일을 보낸다. 나도 나중에 우리 아이에게 이렇게 맛있는 국과 반찬을 해먹일 수 있을까?
게 눈 감추듯 후루룩 해치운 점심과 주말 동안 조금씩 쌓인 설거지를 개운하게 끝내고, 비타민까지 꼬박 챙겨 먹는다. 왠지 할 일을 차곡차곡 잘 끝내 가는 기분이 들면 내 삶을 그대로 잘 살고 있는 것 같은 뿌듯함이 가득 차오른다.
해피를 재울 겸 차 한잔과 책 몇 권을 들고 안방으로 향한다. 아 참, 중간에 일어나면 강아지가 깰 테니 노트북도 들고 와야지. 문을 닫고 침대에 기대고 한참 책을 읽다가 보니, 손에 들고 다니던 찻잔이 거실 식탁에 있다.
내게 중요한 건 차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차 한잔 타먹어야지 하는 마음일까. 왜인지 마시지 않아도 마신 것 같다. 그래도 이 방엔 지금 내게 중요한 게 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