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로서의 인생을 산지도 어느덧 2년.
그간 늘 입버릇처럼 했던 말은
‘아이 낳고 나는 다시 모든 게 처음이다 ‘ 였다.
내 인생도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는,
여전히 나의 엄마에게 효도 한 번 제대로 해본 적 없는
밋밋하고 어리숭한 스물일곱에,
그래도 결혼 2년 차라고 뱃속에 생명을 품었다.
그저 임신했을 적엔 건강만 하면 되지,
내 몸도 아기 몸도 제발 건강만 하면 되지 싶었고
달리 어떻게 키워야 할까에 대한 고민은
진지하게 해 본 적이 없었다.
어쩌다 몇 번 해봤다 해도
육아의 현실을 전혀 알지 못하는 내가
대충 고심한 생각들이 뭐 얼마나 영양가 있겠나.
그렇기에 지금 내 기억 속엔 임신한 그 시간만큼
평온하고 걱정 없던 시기가 또 있을까 싶다.
‘잘 키워야 한다’ 이유 모를 그 강박에
나는 아기가 8개월이 되도록 밤 잠을 제대로 자 본 적이 없다.
틈만 나면 누워자도 이상할 것이 없을
갓 출산한 애엄마가
한 시도 엉덩이를 붙여놓고 쉬질 않았으니,
아이 낳고는 내가 성인 ADHD라고 확신하기도 했다.
내가 자라 온 그대로 자라는 게 싫어서,
내 시절에 좋았던 것에 지금의 좋은 점들을
덕지덕지 갖다 붙여 모든 걸 해주겠노라 다짐하며
아이가 옹알이도 못하는 응애시절부터
나는 얼마나 많은 노력을 불태웠는지 모른다.
나의 모든 관심사와 나의 모든 신경은 아이에게 향해있었고
그 속엔 나도 없고 남편도 없었다.
정작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나 자신에 대한 확신도 없으면서
옆에 붙어 놀아주고 읽어주고 먹여주면 좋은 거라 생각했다.
내 밥은 생각도 안 하고 애기밥에만 한 시간의 정성을 쏟아붓고
300일 400일 기념일엔 사진 한 장이라도 꼭 남겨야 할 의무라도 지었는지
세상에서 제일 예쁜 아기가 여기있다 홍보하듯 사진을 찍어대고 그랬다.
움푹 페인 다크서클에 언제 이렇게 깊어졌는지
웃기 싫어지던 팔자주름과 눈가주름..
이게 이제 막 서른을 앞둔 여자의 얼굴이 맞는지
속상하면서도 뒤돌아서면 아기만 보였다.
나는 내가 모성애가 지나치게 많아서 그런 줄 알았다.
흔히 말하는 도치맘이 나구나 싶었다.
근데 지나고 보니 그건 산후우울증이었다.
너무 우울하고 힘든데 나 스스로 그런 나를 받아들이지 않고서 ‘나는 괜찮아 나는 엄마잖아’ 그 말로 최면을 걸듯 나를 괴롭혔다.
그럴수록 나는 아기에게 집착했고
그 순간만큼은 내가 정말 괜찮아진 듯 느껴져서
내가 우울증이란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고 적응해갈 즈음
등원 후 집에 혼자 있게 되면 나의 무기력이 심해지곤 했다.
애기 재운 뒤 몇 시간이고 멍하니 누워
핸드폰 속에 들어가 살던 나,
그 시간이 길어지다 길어지다 문득
바보 같고 멍청한 엄마가 되어가는 내가 너무너무 혐오스러웠다.
모든 걸 내려놓고 아이에 관한 나의 모든 생각들을 비워냈다.
그리고 운동을 시작했다.
다시 글을 쓰자 다짐했다.
맛있는 요리를 해 먹기로 다짐했다.
엄마 나이 두 살, 어쩌면 아이보다도 더 아이 같다.
내가 내 말을 아이보다도 안들을 때가 많다.
아이 교육은 엄마의 삶으로 보여준다고 하던데,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아이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이젠 조금씩 나에겐 엄마로서의 삶도 있을 뿐이라는 걸 깨우쳐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