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으로 오기 전 아는 동생을 만나기로 했다. 번화가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봤다. 매장은 엄청 넓었고, 인테리어는 굉장히 세련됐다. 우리는 편안한 소파에 앉았다. 동생은 하얀 손수건과 시집을 내게 건넸다. 스벅은 은근 손수건과 시집이 어울리는 감성적인 공간이었다.
반면, 미국에 왔을 때,스벅의 이미지는 많이 달랐다. 매장은 대부분 작았고, 딱딱한 의자들로 채워져 있었다. 인테리어는 모던했지만 편안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커피숍계의 패스트푸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 스벅은한국처럼 맥북을 들고 감성에 취하는 곳은 아니다. 동네 다방 같다. 스벅은 어딜 가나 쉽게 찾을 수 있는 동네 커피숍이다. Vons나 Target 같은 미국 마트에 안에도 스벅 간이매장이 있을 정도다. 로컬들에게 일상적인 공간이다.
요즘 자주 가는 스벅은 테이블을 아예 치웠다. 코로나도 끝나가는데 테이블을 왜 치웠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상관없다.나에게 이곳은 커피가 먹고 싶을 때 모바일 오더하고 잠깐 들러서 픽업하는 장소일 뿐이다.
미국에서 관광지를 벗어나 스타벅스를 가면 미국의 일상적인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미국의 일상에서 때려야 땔 수 없는 것은 홈리스다. 스벅도 예외는 아니다.
두 달 전 집 앞 스타벅스로 온라인 오더를 픽업하러 들어갔다. 오더를 기다리는 중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30~40대쯤 돼 보였다. 얼굴엔 수염이 가득하고, 허름한 검은색 옷을 입고, 가방을 들고 있는 것으로 봐서 홈리스였다. 주문대에 서서 뭘 주문했다. 돈은 지불하지 않았다.
무엇을 주문했을까 궁금하던 차에 그는 아이스워터를 받아 들었다. 물을 받아 밖으로 나설 줄 알았는데 자리에 앉았다. 그가 눈에 더 들어왔다. 갈증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지만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피곤에 지쳐 잠시 쉬어갈 곳을 찾은 것 같아 보였다.
몇 년 전 여행 중 새크라멘토 외각 지역에 있는 스타 벅스 안에서 마주쳤던 노숙자와 표정이 비슷했다. 땡스기빙데이에레노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운전해 이동하는 길이었다. 중간쯤 새크라멘토에서 나와서 밥집을 찾았지만 식당은 모두 문 닫았다. 유일하게 문 연 곳이 스타벅스였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허기를 채우기 위해 핫초코와 머핀을 시켰다.
매장은 넓었지만 안은 한산했다. 두세 테이블만 찼다. 아무 자리나 잡고, 허겁지겁 먹고 있었다. 그러던 중 누가 바로 내 앞에 앉았다. 깜짝 놀랐다. 고개를 들었다.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나이가 지긋이 든홈리스였다. 긴장됐다.하지만 그는 나를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눈치였다.
나는 본능적으로 먹고 있던 머핀과 음료를 좀 더 내쪽으로 옮겼다. 빈 테이블이 널렸는데 왜 하필 내 앞에 앉았는지 궁금했다. 먹을 것을 먹으며 힐끔힐끔 그를 관찰했다.
그의 얼굴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삶에도 아무런 관심이 없는 사람같이 보였다. 그런데 느긋하게 가방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리고 태연하게 전기 아웃렛을 찾아 꽂았다. 알고 보니 휴대폰을 확인하기 위해 충전을 하려던 것이다.
하필 많은 자리 중에 내 앞에 앉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자리는 그에게 익숙한 곳이었다. 그는 전원을 켜고, 이리저리 만지며 뭔가를 체크했다. 가족의 소식인지 돈에 관련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모를 간절함이 느껴졌다. 연민이 느껴졌다.
한 번은 연민을 느끼게 하는 다른 홈리스를 본 적이 있다. 이때도 여행 중이었다. 레딩에서 엘에이로 돌아가는 길에 산타 쿠르즈에 있는 호스텔에서 하루 묶었다. 엘에이까지 차로 6시간은 걸렸기에 일요일 아침 일찍 출발했다. 아침에 너무 피곤해 스벅에 들러 커피를 사러 들어갔다.
아침에 스벅에서 나는 커피 향은 너무 좋았다. 커피를 기다리고 있는 중 밖에서 뭔가 소란이 일어났다. 누군가 싸우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커피를 받고서 밖으로 나가는데 홈리스 여럿이 밖에 있었다.
한 젊은 홈리스는 스타벅스 앞 도보에서 패배자 마냥 처량하게 커다란 개와 함께 앉아 있었다. 얼굴에는 갓 생긴듯한 상처가 보였다. 주먹으로 두들겨 맞은 것 같아 보였다. 그러고 보니 맞은편에 있던 노숙자 여럿은 이홈리스에게 욕을 하는 것 같아 보였다. 홈리스들 사이에서 영역싸움이 일어났던 모양이다.
미국 스타벅스는 의외로 홈리스들이 잘 보이는 장소다. 가끔 홈리스 특유의 냄새를 풍기는 사람이 스벅 안 테이블에 앉아 있기도 한다. 이들을 보면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