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최면이라는 것을 하여야 할까?
심리상담을 받아서 상담을 통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자신의 성격을 변화하고자 하면 비교적 많은 시간이 걸린다. 유튜브에서 어떤 유명한 심리상담 선생님은 최소 100회기~1,000회기 정도 상담을 받아야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한다. 반면에 최면에서는 비교적 단기간의 상담으로 의도한 효과를 거둘 수 있게 된다.
모든 사람에게는 적으나 크나 마음의 상처들이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마음의 상처는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받는 것이 많다. 엄마, 아버지, 오빠, 누나, 할아버지, 할머니, 이런 사람들이 어떤 사람의 마음에 큰 상처를 주거나, 큰 슬픔, 큰 원망, 큰 불안감, 큰 무서움 등등을 주었을 수도 있다.
대개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을 잘 들여보지 못한다. 바쁜 인생살이에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은 사치일 수도 있고, 막상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아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느끼지 않는다. 마음속의 무의식의 상처라는 것은 매우 교묘하게 위장되어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상처가 자신의 일상생활 모든 부분의 결정에 개입을 하고, 잘 못된 판단으로 인생을 그르치게 할 수도 있다.
최면을 통해 자신의 마음속 깊은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자신만의 상처나 슬픔을 찾아내고 이를 보듬어주고 이를 다독거려 줌으로써 자신의 잃어버렸던 자존감을 회복하고 다시 우뚝 서게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도 시급한 일이다. 최면을 받으면 받을수록 많은 면에서 더 좋아지는 사람들을 필자는 많이 보았다.
우선 나부터가 그렇다. 어릴 적 초등학교 2학년 때 부모님의 이혼 이후 나는 잘 살아왔다고 자부했는데, 어느 날 내가 '항상 주눅 들어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자존감을 찾고 싶어서 심리상담실을 갔는데, 마침 그 상담가께서 최면을 하시는 분이어서 최면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이다.
그분께도 최면을 받고 또 다른 분께 최면을 받으면서 나는 울고 또 울었다. 나의 내면에 이토록이나 많은 눈물이 있었나 할 정도로 최면을 받을 때마다 많은 눈물을 흘리고 나서 나는 드디어 초등학교 2학년 때 혼자서 오도카니 단칸방에서 일 나간 아버지를 기다리던 외로움, 엄마 없던 슬픔, 억울함, 분노 등의 감정의 늪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이러한 카타르시스(정화)를 통해 많이 밝아지고 깨끗해진 정신과 명랑해진 마음으로 나는 새로워졌다. 이러한 최면의 좋은 점을 발견한 나는 최면을 통해 변화된 나 자신을 대견해하면서, 이렇게 좋은 최면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심리적 어려움을 도와주는데 발 벗고 나서게 되었다.
최면이란 좋은 것이다. 자신의 무의식에 어떤 감정이나 기억이 숨어있어서 그토록 자신을 괴롭히는 것인지, 그토록 자신의 자존감을 무너뜨리는지, 하나 둘 찾아내고 그것들을 직면하고 묵은 감정 찌꺼기를 걷어낸다면 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거듭나게 된다.
프로이트는 정신역동이론을 만들었지만 최면을 통해서는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하지만 프로이트 이후에 데이브 엘먼, 밀턴 에릭슨을 시발로 해서 성장해 온 20세기 이후의 최면이야 말로 프로이트가 그토록 갈망하던 정신역동 심리학을 제대로 만들어 나간 것이라고 할 것이다. 무의식을 변화시켜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 진정한 최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