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면에 대한 오해

by 쿠쿠이

사람들이 최면에 대해 잘 못 알고 있는 것이 있다. 최면을 하게 되면 수면상태에 들어가서 의식이 없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대표적인 오해다. 또한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나의 비밀을 최면상담가에게 모두 털어놓게 된다는 두려움도 또 하나의 오해다.


유럽에서 현대적 최면이 알려지게 된 초창기에 제임스 브레이드(James Braid, 1779~1860)라는 최면의 선구자가 최면이 잠의 일종이라고 믿고 그리스어로 잠을 뜻하는 용어인 ‘Hypnos’를 활용하여 ‘최면(Hypnosis)’ ‘최면요법(Hypnotherapy)’를 만들었고, 이를 동양에서 번역하면서 잠을 뜻하는 면(眠)을 써서 최면(催眠)이라고 작명하는 바람에 ‘최면 = 잠’의 오해가 생겼다고 한다.


제임스 브레이드가 최면을 몇 년간 더 많이 공부한 이후에 그것이 잠의 형태가 아니고 정신을 집중하여 몰입하는 상태라는 것을 깨닫고 한동안 새로운 이름인 ‘모노이데이즘(Monoideism)’을 사용하려 했지만 이미 최면이라는 이름이 통용된 상태여서 '모노이데이즘'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우리는 브레이드가 최초로 만든 催眠(최면)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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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에도 최면을 받으면 잠이 들지 않는 상태, 즉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진행되는 것이기 때문에 잠들거나 의식이 없다는 오해는 곤란하다. 다만, 의식이 깨어 있는 상태에서 무의식(감정, 장기기억)도 깨어나 활성화되어서 이를 용이하게 다룰 수 있게 되는 상태에 접어들게 되는 것이 보통때와 다르다는 것이다. 즉 의식도 깨어 있고 무의식도 의식 수준으로 올라와 있는 상태가 최면상태라고 보면 될 것이다.


최면을 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미국에서 20세기 초에 태어난 밀턴 에릭슨의 방식을 따라 하는 얕은 트랜스 상태에서의 최면, 미국의 데이브 엘먼의 방식을 따라 하는 깊은 트랜스 상태에서 하는 최면이 그것이다. (물론 이밖에도 정말로 깊은 최면인 울트라뎁스라는 것이 있지만, 이 것은 일반적인 최면이라고 하기 곤란한 특별한 경지이므로 이는 논외로 하자)


밀턴 에릭슨의 최면은 사람이 갖고 있는 어떤 관념 (내적 표상, Inner Representation)을 어떤 식으로든 충격을 주어서 바꾸면 된다는 생각으로 각성된 상태이건, 약간의 최면 상태이건 상대방(내담자)의 IR을 바꾸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였고,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중심으로 최면 기법을 발달시켰다. 이러한 해결중심법은 대화에 초점을 주어서 행하기 때문에 일종의 화술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반면, 데이브 엘먼은 깊이 들어가지 않은 최면은 효과가 없거나 효과가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일정 깊이 이상의 트랜스를 확보하는 최면을 중심으로 최면기법을 개발하였다. 밀턴 에릭슨이 최면깊이 1~2단계에서 효과를 거두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면, 데이브 엘먼은 최면깊이 4~6단계에서 효과를 거두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고 하면 대충은 맞는 말일 것이다. (일반 최면의 깊이를 1~6단계로 나누는 분류에 따른 서술이다.)


이러한 밀턴 에릭슨식의 최면은 거의 각성된 상태에서 대화를 통해 암시를 주는 방식이어서 잠드는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다만 데이브 엘먼식의 최면은 1~10분 정도 시간과 공을 들여서 내담자의 눈을 감기고 충분히 이완하도록 하기 때문에, 옆에서 보기에 마치 잠든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잠이 든 것이 아니고 내담자의 의식은 또렷해지고 더욱더 순간에 몰입되어 있는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가끔 엘먼식 최면을 하는 도중에 내담자가 실제로 잠이 드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그 내담자가 너무 피곤한 상태에 있어서 눈을 감은 상태에서 최면(트랜스)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옆으로 새서 잠으로 빠져든 경우이다. 이렇게 잠을 자게 되면 내담자와 대화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최면 상담가는 오히려 잠을 깨우기 위해 애쓰게 된다. 내담자가 잠에서 안 깨어나면, 오히려 눈을 뜨게 만들어서라도 내담자의 의식을 깨우고 대화를 시도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최면을 하는 도중에 잠이 든다고 오해하거나, 잠이 아니더라도 잠과 마찬가지로 의식이 없어진 상태가 된다고 오해하는 것은 전혀 맞지 않는 것이다. 또한 최면을 하는 도중에 이상한 변성의식 상태(환상, 환각, 비전 등)로 빠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잘 못된 생각이다. 최면을 하는 도중에는 정말로 정상적인 의식상태에서 정상적인 생각을 하고 각성된 상태와 마찬가지로 정상적인 대화를 하는 상태인 것이다.


그럼 왜 굳이 이런 최면을 해야 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최면의 상태에서는 우리의 표면 의식이 뚜렷해질 뿐만 아니라, 우리 내면 깊숙이에 있는 무의식도 같이 활성화되어서 이러한 내면의 무의식을 다루기 쉽게 되기 때문이다. 무의식 또는 심층의식 속에 있는 장기 기억과 감정들을 청소해 내면, 더욱더 건강한 현재의식으로 거듭나게 되기 때문에 최면을 통하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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