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성장하는 모녀가 되다.
우리 엄마는 팔십이 넘어서 문해학교에 다니는 학생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는 ‘늦깎이 학생의 학부모’가 되었다.
요즘 엄마는 숙제가 많다며 매일 투덜거리지만,
또 막상 누가 옆에서 알려주면 좋겠다며 나를 부른다.
오늘도 나는 엄마를 위해 ‘가정 방문’을 간다.
엄마는 선생님이 질문하면 잘 대답하고 싶은데
말이 잘 안 나오면 속상하다고 한다.
“에휴… 잘 쓰고 싶은디 마음대로 안 돼…”
굳은 손으로 연필을 꼭 쥐고 있는 모습이
애틋하면서도 단단하다.
숙제장을 보다가 문득 묻게 됐다.
“엄마, 아빠가 손 잡아준 적 있어?”
가볍게 던진 질문이었는데
엄마의 대답이 마음을 아리게 했다.
“ 아무 생각도 안 나.
내가 좋아하는 수박 하나, 참외 하나 사준 적도 없이 그냥 갔지.”
평생 서운하지만 말 못하고 묻어둔 감정이
그 짧은 말 속에 고요히 담겨 있었다.
“엄마, 지금 한 얘기 글로 써볼까? 재밌을 것 같아.”
“아이고, 그걸 뭘 글로 쓰냐.”
그러면서도 결국 내 말에 밀려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쓰기 시작했다.
“남편은 내가 좋아하는 수박 하나 안 사주고 갔다.”
그 글을 보자마자 웃음이 터졌고
엄마도 따라 웃었다.
“엄마, 아빠가 이렇게라도 우리한테 웃음을 주네.”
함박 웃음에 그간 쌓인 엄마의 오랜 설움이 다 날아가는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오래된 기억이 떠올랐다.
어릴 때 숙제하다가 모르는 게 있어도
물어볼 사람이 없어서 막막했던 시절.
일하느라 바빴던 엄마, 술 취해 들어오던 아빠.
나는 늘 혼자였고, 늘 외로웠다.
그래서인지
지금 팔십의 엄마가 느끼는 답답함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안다.
“엄마, 모르면 언제든 불러. 내가 알려줄게.”
그러고 나서야 깨달았다.
나는 지금 엄마 숙제를 도와주는 게 아니라,
사실은 그때 외로웠던 어린 나도 함께 돌보고 있다는 걸.
팔순의 엄마는
배우지 못했던 그 시절의 자신을 위로하고,
오십의 나는
엄마의 ‘학부모’가 되어
어린 나를 다시 안아준다.
이렇게 우리 모녀는
먼 길을 돌고 돌아
이제서야,
함께 자라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