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을 위한 게임이론 제1장 6
※ 맨 뒤에 요약이 있습니다.
┃서로 모르고 하는 게임, 동시게임┃
호프집 사장들의 고민
시장 입구에 호프집 두 개가 있습니다. 가게의 크기도 분위기도 비슷합니다. 이름도 비슷해서 치킨호프(A), 시티호프(B)입니다. 어느 날 고객을 더 많이 끌어모으는 방법을 궁리하던 A호프 사장은 황금시간대에 노가리 안주를 공짜로 주는 전략을 선택하기로 합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에 B호프 사장은 그 소식을 듣고, 질세라 자기도 노가리 안주를 공짜로 주기로 결정합니다. 밤늦게 이 소식을 들은 A호프 사장은 고민에 빠집니다. 이렇게 되면 노가리 안주를 공짜로 주는 것이 무의미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B호프 사장도 사실은 같은 생각인 건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해프닝 다음에 잠자리에 든 두 사장은 이불속에서 가만히 생각합니다.
“둘 다 공짜 안주를 주면 괜한 손해만 나겠지. 한 달에 5만 원은 손해가 날 거야. 차라리 둘 다 안 주면 손해도 이익도 없을 테고. 그럼 안 주는 게 상책인데. 아니, 아니지. 나는 공짜 안주를 주고 맞은편 가게가 안 주면 한 달에 20만 원은 더 벌 수 있잖아. 아, 어떡하지.”
끊임없이 맴도는 생각 때문에 두 사장은 잠을 자지도 못할 지경이 됩니다. 이 게임에서 중요한 것은, 각 플레이어는 상대가 어떤 행동을 선택할지 모르고 자신의 행동을 선택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상황의 게임을 ‘동시게임(simultaneous move game)’이라고 합니다.
반드시 시간적으로 동시일 필요는 없음
동시게임이라는 말은 두 명의 플레이어가 동시에 행동한다는 것인데, 동시에 선택한다는 말의 의미는 시간적으로 동시에 해야 한다는 것만은 아닙니다. 정확히는 상대가 하는 행동을 모르고 하는 행동이라는 의미입니다. A호프 사장은 B호프 사장이 어떤 결정을 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공짜 안주를 줄 것인지 말 것인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B사장도 마찬가지죠. 그러니 이불속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습니다.(이 게임의 균형은 나중에 다룹니다.)
홀짝게임은 어떨까요? 쥐는 쪽과 맞추는 쪽 사이에 시간 차이는 있지만 홀짝게임 역시 동시게임입니다. 홀을 부르는 B는 A가 뭘 쥐었는지 모르고 자신의 행동을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가위, 바위, 보가 동시게임인 건 분명하지요. 동시에 내기 때문에 동시게임이 아니라 상대가 뭘 내는지 모르고 자신의 행동을 선택하기 때문에 동시게임입니다. 가위, 바위, 보를 쓴 종이를 제출하고 이걸 하나씩 열어보는 방식으로 시차를 둬도 동시게임입니다. 서로 상대의 선택이 뭔지 모른 상태에서 자신의 선택을 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종이에 쓰는 것은(펜이 하나밖에 없어서) 순서대로 썼다고 하더라도 동시게임입니다.
바둑, 체스, 장기
동시게임의 반대는 ‘순차게임(sequential game)’입니다. 순차게임은 상대의 선택이 뭔지를 알고 나의 행동을 선택하는 게임입니다. 대표적인 순차게임이 바둑입니다. 상대가 어느 자리에 두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나의 행동을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정확히 상대가 취한 행동을 알아야 성립이 되는 게임입니다. 체스, 장기도 모두 순차게임입니다.
자동차 산업 진입 게임
순차게임을 자동차 산업에서의 시장 진입이라는 가상의 현실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자동차 산업, 반도체 제조 산업 등은 하나의 시장을 두고 두세 개의 기업이 경쟁하는 산업입니다. 이런 시장을 경제학에서는 ‘과점’ 시장이라고 합니다. 과점(寡占)은, 적을 과(寡), 차지할 점(占)의 한자 말입니다. ‘독점’은 한 기업이 시장을 차지한 것이라면 과점은 두세 개의 기업이 시장을 차지한 것을 말합니다. 대부분 과점시장은 절대 강자가 닦아 놓은 시장에 후발 주자가 들어오면서 나타납니다. 현대자동차가 독점이던 자동차 제조시장에 삼성이 들어오는 식이죠. 이런 시장 진입은 순차게임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우선 삼성의 선택은, 자동차 제조산업에 뛰어들거나 포기하거나 두 가지입니다. 먼저 삼성이 뛰어드는 경우, 현대는 두 가지 선택이 있습니다. 하나는 독점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생산량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가격을 낮춰 삼성이 시장에서 도태되도록 하는 방법입니다. 자신도 피를 흘리지만 삼성이 못 들어오게 하려면 어쩔 수 없습니다. 보통은 그렇게 하겠다고 위협(threat)을 해서 삼성이 이 시장에 못 들어오게 하는 방법으로 많이 사용됩니다. 위협이 먹히면 현대자동차가 계속 독점을 하게 될 것입니다. 현대가 선택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은, 삼성이 들어오든 말든 가격을 그대로 유지하는 방법입니다. 이 방법은 삼성의 진입으로 현대의 판매량은 좀 줄겠지만, 가격을 그대로 유지해 적정한 이윤을 실현하는 전략입니다. 이는 삼성의 시장 진입을 수용하는 전략입니다. 물론 삼성이 장고 끝에 자동차 제조산업에 뛰어들기를 포기한다면 시장은 원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할 것입니다.
이 게임은 순서가 있습니다. 삼성이 시장에 진입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고 현대는 그 결정을 보고 가격전쟁을 할 것인지 진입 수용을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순서입니다. 이 순차게임은 다음 그림 1.3과 같은 트리 형태로 표현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게임을 이렇게 나타낸 것을 ‘전개형(extensive form)’이라고 부릅니다. 괄호 안에 있는 보수쌍의 순서는, 트리 상에서 첫 번째 의사결정자 즉, 삼성의 보수가 앞에, 두 번째 의사결정자 즉, 현대의 보수가 뒤에 있는 순서입니다. 참고로 게임을 메트릭스(행렬표) 형태로 나타낸 것은 '정규형(normal form)' 혹은 '전략형(strategic form)'이라고 부릅니다.
순차게임을 별 설명 없이 간단히 보여주는 것이 바로 그림 1.3처럼 그린 전개형입니다. 화살표에 따른 선택에 따라 ⓵, ⓶, ⓷의 보수가 정해질 것이고, 그 결과 삼성자동차와 현대자동차가 받게 될 보수가 한눈에 보입니다. 각 기업은 자신의 행동과 그에 따른 보수에 따라 자신의 전략을 결정할 것입니다. 순차게임에 관한 이야기는 나중에 펼쳐집니다.
게임이론에서 게임을 분류하는 몇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동시게임이냐 순차게임이냐 하는 분류입니다. 동시게임은 동시에 하는 게임과는 뉘앙스가 다릅니다. 설사 동시에 하지 않더라도 상대방이 나의 행동을 모르고 자신의 행동을 선택하는 게임이 동시게임이기 때문입니다. 홀짝게임, 가위바위보게임 모두 동시게임입니다. 본문의 호프집 사장들의 고민도 이 게임이 동시게임이기 때문에 나오는 고민입니다.
반면 순차게임은 상대방의 행동을 보고 나의 행동을 선택하는 게임입니다. 바둑, 장기, 체스 같은 게임은 모두 순차게임입니다. 게임이론에서 자주 다루는 순차게임은 진입게임입니다. 현대자동차가 독점하고 있는 자동차 제조 시장에 삼성이 진입하려는 경우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현대자동차는 삼성의 결정을 보고 가격전쟁을 할 것인지 진입 수용을 할 것인지를 정합니다. 순차게임입니다.
순차게임은 본문 맨 마지막에 제시한 그림 1.3과 같은 '전개형(extensive form)'으로 나타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게임을 메트릭스 형태로 그린 것은 '정규형', 혹은 '전략형'이라고 부른다는 것은 지난 글에서 다룬 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