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외할머니는 가족들 앞에서 기절했다. 여행지에서 돌아오는 차 안이었다. 두 눈이 뒤집히고 입은 반쯤 벌린 채 그녀는 미동이 없었다. “엄마! 엄마!!” 엄마는 자신의 엄마를 울부짖으며 불렀다. 할머니는 얼어붙은것처럼 눈도 깜빡이지 않았고, 검은 눈동자는 뒤로 넘어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온몸이 빳빳하게 굳어버렸다. 가족들은 할머니 바지 단추를 풀고 피가 통하도록 계속해서 그녀의 몸을 주물렀다. 할머니는 잠시 이 공간을 떠난 사람 같았다. 영혼은 떠나고 육체만 남은 것처럼. 약 5분 정도가 흐른 뒤 할머니는 다시 눈을 깜박였다. 며칠 뒤 할머니를 모시고 찾아간 대학병원에서 받은 진단은 뇌수막염. 85세의 고령이었기에 할머니는 개복 수술 대신 감마나이프 수술을 받았다. 양 관자놀이를 고정하고 엄청난 양의 방사선을 뇌에 쏘아 종양을 없애는 수술이었다.
그 수술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진행되던 노화의 연장선이었을까. 할머니는 수술 이후 넘어지는 일이 잦아졌다. 중심을 못 잡고 휘청거리는 날들이 많아졌다. 가족들은 수술 후유증이니 곧 사라질 증상이라 생각했다. 그 사건 후 반년이 흘렀다. 25년 봄, 내가 둘째를 낳고 산후조리원에서 몸조리를 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놀라지 말고 들어. 할머니가 혼자서는 이제 일상생활을 할 수 없으셔.“ 그리고 엄마는 할머니가 대변실수를 했다고 했다. 외할머니와 같이 살고 있던 삼촌이 출근하려 방문을 열었을때 어디선가 악취가 났다. 삼촌은 금세 그 악취가 외할머니 방에서 나는 것임을 알아차렸다. 그녀가 있어야 할 침대는 덩그러니 비어있었다. 대신 방 안 화장실 앞에 똥으로 아랫도리가 범벅이 된 그녀가 멍하니 천장을 응시한 채 누워 있었다. 어떻게든 혼자 화장실을 가려했는지 바지를 벗고 팬티만 입은 채로. 꽤 오랫동안 누워있었는지 팬티 옆으로 샌 똥은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충격적이었다. 할머니는 동네 꼬마가 본인에게 “할머니”라고 부르면 집으로 돌아와 씩씩거리며 화를 내던 사람이었다. “언제 봤다고 나보고 할머니래.” 엄마와 나는 ‘할머니 맞잖아요.’라는 눈빛을 교환한 뒤 할머니 말에 맞장구를 치고는 했다. 본인 스스로를 노인으로 생각하지 않았기에, 남들에게 노인이라는 이유로 배려를 받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지하철을 타도 꼭 교통카드를 찍고 탔고, 노약좌석은 쳐다도 안 봤다. 일반 좌석에 앉을자리가 없으면 서서 가자는 주의였다. 80세에는 딸들과 자유여행으로 유럽을 보고 왔다. 편안한 패키지의 도움대신 오롯이 자신의 두 발로 걸어서. 85세였던 작년에는 일본으로 또다시 자유여행을 갔다. 그런 그녀였기에 혼자서 일상생활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현실감 있게 느껴지지 않았다.
‘다른 집 할머니는 몰라도 우리 할머니는 100살은 거뜬히 살지! ’ 이 얼마나 오만한 생각이었나. 삼촌이 할머니를 발견한 그날 아침, 가족들은 그제야 인정했다.할머니의 삶이 끝으로 향해가고 있다는 것을.
문득 6살 무렵, 할머니 집에서 똥을 누다 변기에 빠진 일이 생각났다. 엉덩이가 변기에 비해 작았고, 나는 똥 위에 철푸덕 앉았다. 할머니는 뭐가 그렇게 우스운지 한참을 깔깔깔 웃으며 똥 묻은 내 엉덩일 씻겨냈다. 그러고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변기에 빠졌던 일을 숨도 안 쉬고 상세하게 전달했다. 거기서 멈췄으면 좋았을 텐데. 할머니는 모래내 시장에 가서 물건을 사면서 사장님에게 내가 변기에 빠진 얘기를 했다. 할머니와 사장님은 깔깔깔 큰 소리로 웃어댔다. 옆 가게에서, 또 그 옆가게에 가서도 그 이야기는 계속됐다. 모래내 시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내가 똥 위에 앉았다는사실을 알 것 같았다. 나를 웃음거리로 만든 할머니의 손을 뿌리치고 도망가고 싶었다. 할머니가 미웠다. 아주 미웠다. 변기에 빠진 게 뭐 큰 대수라고! 그렇게 장을 다 볼 때까지 그녀의 웃음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이제는 요양보호사 앞에서도 변 실수를 하는 할머니를 보며 생각한다. 날 보며 그렇게 웃었으면서 왜 지금은 할머니가 변 위에 앉아있는지. 그러면서도 왜 아무런 표정이 없는지. 나한테 그랬던 것처럼 웃기라도 하든가 아니면 창피해하기라도 하든가. 빛을 잃은 할머니의 눈동자가 무섭고, 낯설고, 슬프다. 슬프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기억 속, 젊은 날의 할머니가 나를 보며 깔깔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