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의 굴레

할아버지에게서 할머니로.. 그리고 언젠간 나에게로

by 따뜻한책쟁이

할머니는 집에서 요양보호사 선생님의 도움을 받았다. 가족들은 모두 직장이 있었기에 평일에는 다른 사람의 손이 필요했다. 요양보호사는 오전, 오후로 나눠서 두분이 오셨다. 할머니가 요양등급 3등급을 받았기에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았다. 하지만 그것도 하루에 3시간에 대한 부분만 받았기에 나머지는 개인이 직접 충당해야했다. 그렇게 한달에 150만원 이상 비용이 발생했다. 다행히 할머니는 연금이 있었기에 할머니 돈으로 충당이 가능했다. 그 연금은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남기신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공사 현장에서 일하다, 8층 높이에서 떨어졌다. 사람들은 살아있는 게 기적이라고 했다. 그 일로 인해 하반신 마비가 왔고, 할아버지는 왼팔만 간신히 사용할 수 있는 정도였다. 그 당시 흔치 않게 180cm나 되는 장신에 건장한 체격의 할아버지를 간병한다는것은 작고 왜소한 외할머니에게는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 그래도 식사부터 목욕, 대소변처리까지 할머니는 억척스럽게 해냈다. 다행히 할아버지는 산업재해로 인정되어 꾸준히 돈이 나왔고, 간병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할아버지가 70도 되지 않은 나이에 떡을 드시다 기도가 막혀 돌아가시기 전까지 할머니는 10년이라는 시간을 할아버지 간병에 쏟아부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할머니도 적지 않은 나이였다. 50대 후반에서 60대 중반까지. 이제는 여행을 다니고 편히 쉬어야 할 나이에 그녀는 그녀의 남편과 함께 병원에, 그리고 작은 집 한 칸에 묶여 있어야 했다.



건강하던 남편이 갑자기 하반신 마비가 되어 한쪽 손만 간신히 쓸 수 있는 상황이 됐다면. 나 없이는

일어날 수도, 용변을 처리할 수도, 옷을 입을 수도, 밥을 먹을 수 조차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녀의 기분은 어땠을까. 엄청난 부담감, 이제 나에겐 자유가 없다는 절망감. 자신보다 더 큰 사람을 보살핌으로 인한 체력적 고통. 이 모든 것들보다도 언제 끝날지 모르는 간병의 시간이 두렵고, 괴롭진 않았을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슬프지만, 한편으로는 이제 나도 쉴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진 않았을까.



할아버지를 간병하던 그녀의 손은, 그를 병원으로 데려가던 그녀의 다리는, 이제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다. 마치 20년 전의 할아버지처럼.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이 집을 나갈 수조차 없다. 몇 주 전 육아로 인해 집에만 있어 답답하다는 나의 말에 할머니가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지금 막 소리를 지르고 싶어.”

그녀에게 자유를 주었던 육체는 이제는 반대로 그녀를가두는 감옥이 되어 버린 게 아닐까. 끝없는 간병의 굴레 속에서 언젠간 할머니 자리에 내가 앉아 있을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시간은 소리 없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의 차례가 다가온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