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신난다 May 31. 2021

민들레 파스타

나의 민들레 이야기

<민들레 파스타>

‘추운 긴 겨울을 뚫고 여기저기 기운차게 땅을 박차고 나오는 보드라운 새싹들은 쌉싸름하고 고소한 풀 맛이 난다. 피어나는 작은 새싹 하나하나는 모두들 이유가 있을 거야.'


아직 겨울인가, 따스한 봄인가 하는 온도가 될 때면 효자동에서 팔판동까지 청와대와 경복궁 북쪽 담장 사잇길을 자주 산책한다. 자칫하면 나무들의 새싹 잔치를 놓친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하루도 빠짐없이 산책을 해야 한다. 그러면 어느 날 거무티티한 나무줄기에서 뭔가 도드라지는 것이 보이고 멀리서 보면 줄기의 색이 노란색과 연두색이 섞이면서 밝아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드디어 봄의 잔치 시작이다. 나무 밑에서 하늘을 보면 작디작은 새싹들이 빼꼼히 웃음 지으며 얼굴을 내밀고 와글와글 수다를 떨고 있는 것 같다.

올해도 새싹들의 잔치를 놓치지 않았다고 뿌듯해하던 어느 날이었다. 친척 아주머니가 집으로 커다란 자루를 들고 오셨다.

“이것은 뭐예요?”

“민들레다. 간장 넣고 고춧가루 넣고 무쳐서 먹어라. 맛있다.”

“민들레요? 만들어다가 주시지 언제 만들어요.”

염치없는 볼멘소리를 하고는 자루를 열어서 보니 흙도 많고 중간중간 무른 것들이 있는 못생긴 민들레들이었다. 한 숨이 절로 나왔다.

‘이것들은 언제 다 손질 한담.’

흐르는 물에 잎을 하나하나 씻으면서 맛을 보니, 상상했던 쓴맛이 아니었다. 고소하고 약간의 단맛도 있었다. 작은 꽃봉오리는 고소한 맛이 더 진했다.

“맛있긴 맛있네.”

고기도 싸 먹고 비빔밥도 해 먹다가 파스타에 올리면 아주 맛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우와 애호박이 들어가서 자연스러운 단맛이 나는 파스타에, 우리가 배우는 입맛 중 가장 나중에 배운다고 알고 있는 쌉싸름한 맛을 더하면……. 이 맛의 조합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우리 집 꼬맹이는 어릴 적 산책하다가 씨를 날려 보낼 준비를 마친 하얀 솜털의 민들레를 발견하면 신기한 놀잇감을 발견한 것처럼 눈을 반짝거리며 뒤뚱뒤뚱 걸어가서 줄기를 ‘툭’ 딴다. 기도하는 것처럼 양손을 모으고 양 볼에 바람을 가득 넣어 터질 것 같은 모습으로 힘껏 민들레 씨를 분다. ‘후우’ 훨훨 잘도 날아간다. 이 민들레 씨들은 여행을 시작한다. 어딘가에 정착해서 또 다른 민들레가 자라고 꽃이 피고 그 민들레의 씨들은 또다시 여행을 하겠지.


민들레 씨 하나가 어느 손님을 레시피로 불렀나 보다. 막 봄이 시작된 어느 오후였다. 밖에서 누군가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아주 두꺼운 쑥색의 점퍼를 입은 사람이 서 있었다. 그냥 쳐다보는 사람인가 했는데 가게 문으로 한 발 더 다가선다.

“지금 밥 먹을 수 있어요?”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네, 들어오세요. 지금 파스타를 드실 수 있어요.”

“그래요? 아무거나 줘요. 따스한 물도 한 잔 주세요.”

그 손님께 새로운 민들레 파스타를 준비해 드렸다. 나는 맛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언제 맛있다는 말씀을 하시려나 기다리고 있었다.

그 손님은 파스타를 하염없이 씹고만 있다가 다 먹지도 못 하고 갔다. 조금 서운했다. 그 후 그 손님은 비슷한 시간에 와서 레시피의 음식을 이것저것 주문해서 먹고는 별말 없이 다 먹지도 못하고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손님은 다르게 주문을 했다.

“나는 맛은 상관없으니 그냥 따뜻하게만 주면 돼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내가 항암 치료를 받고 있는데 미각이 없어졌어요.”

저 멀리 우주에서 운석이 머리 위로  ‘쿵’ 떨어지는 것 같았다. 여러 궁금증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하루는 그 손님이 평소보다 조금 늦게 도착했다.

“내가 우체국 앞을 지나는데 작은 풀이 있는 거야. 사람들이 많이 지나는 곳인데 점심시간이라서 사람들이 우르르 지나가다가 밟을까 봐 그 앞에 서 있다가 왔어요. 신 선생은 시멘트 사이로 작은 풀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알고 있어요? 나도 몰랐는데 죽음이 앞에 오니 그 작은 풀들이 보이는 거야. 생명 하나하나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눈물이 날 지경이지. 그런데 이 민들레는 길에서 딴 건가요?”

“아뇨, 이것은 민들레 밭에서 따온 거예요.”

그 후로 친구들과도 오고, 가족들과도 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셨다. 갑자기 다녀가신 지 오래되었다는 생각이 들면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 궁금하고 걱정이 되었다. 전화를 드려볼까 생각하고 있으면 내 마음을 알아채고 빛나는 미소로 나타나셨다. 그러면 안도의 숨이 저절로 났다.


어느 날이었다.

“오랜만이지? 나 아무거나 줘.”

“차를 준비해 드려도 될까요?”

차를 따라드리는데, 그날은 왠지 같이 앉아서 차를 마셔야 할 것 같았다.

“나, 인사하러 왔어.”

그때 나는 알았다.

“무슨 인사요?”

“시간이 얼마 안 남았대. 암에 걸렸을 때 5년만 더 살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했거든. 정확히 약속을 지키시네.”

감출 수 없는, 소리 없는 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어이고, 인사하러 왔는데 이렇게 울면 어떻게 해?”

그때 손님의 핸드폰도 울었다.

“요즘 전화가 오면 꼭 받아야 해. 안 받으면 친구들은 내가 죽은 줄 알거든. 잠깐만, 여보세요?”

통화를 마치고선 내게 말씀하셨다.

“내가 살아 있을 때 친구들한테 장례식을 미리 하자고 했더니 미친놈이라는 거야. 살아 있을 때 만나서 조의금으로 맛있는 것을 먹자고 했는데 이놈들이 도와주질 않네. 이번 달까지 일 정리하고 집사람과 전국을 여행할 거야.”

“선생님, 여행 마치면 꼭 오세요. 가게가 곧 공사를 시작하는데요  끝나고 초대할게요.”

“그래, 연락해. 내가 그때까지 살아 있으면 올게.”

씩씩하게 인사하고 나가셨지만 뒷모습은 너무나 쓸쓸해 보였다. 그 순간 사진이라도 찍을 걸 하는 생각에 얼른 뛰어나가서 핸드폰으로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간신히 찍었다. 얼마나 힘이 드셨을까? 한동안 그 자리에 앉아서 남은 차를 마셨다. 차의 맛이 이렇게 짰나? 민들레 파스타라도 드시고 가라고 말씀드릴 것을. 내 슬픔에 이야기도 못했다.


우리들 곁에는 항상 삶과 죽음이 있었다. 그것이 불편해서 아니면 두려워서 애써 외면하고 살고 있는지 모른다.

문득 우리가 각자의 빛으로 아름답게, 밝게 잘 살아야 하는 이유는 어떤 죽음으로 인해 살아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리를 하고 있는 사람, 요리사는 죽은 재료를 다시 음식으로 탄생시켜서 사람의 에너지를 만들도록 한다. 그래서 요리사에게는 필립 스탁(Philippe Patrick Starck)의 이야기처럼 ‘인간의 모든 생산에서 가장 필수적인 요소인 우아함과 정직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들레 씨가 훨훨 날아 새싹을 틔운다. 그것이 누구에게는 놀이가 되기도 하고, 누구에게는 생명의 애착이 되기도 하고, 또 누구에게는 음식의 재료로 사용되기도 한다. 각각의 민들레는 다른 이유들이 있었다. 요리사에게 온 민들레는 파스타가 되어 사람들에게 몸과 마음의 충분한 에너지가 되었는지 궁금하다.

파스타 만드는 법.

작가의 이전글 수박 박수 샐러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