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스턴스(2024)리뷰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는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인터넷에 유구하게 내려오는 격언(?)이 있다.
다이소 매장 거울을 보면 정신병이 온다!
왜?
본인은 종종 다이소 매장에 들러 문구코너나 스마트폰 용품 코너를 구경한다. 구매는 딱히 하지 않아도 구경하는 재미가 있는 편인지라. 그러다보면 2층도 올라가곤 하는데 오르는 계단 전면에 커다란 거울이 있다. 내 정면 측면을 다 보여주는.
하지만 '오 내가 있네~' 정도의 감상 외엔 특별한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기껏해야 '피곤에 찌들었군' 정도다. 보통 퇴근길에 가다 보니 피곤한 건 어찌할 바가 없다.
그런데 왜. 유구하게 많은 사람들이 다이소 거울을 정신병 발병원으로들 생각할까?당장 집에 거울 없는 사람은 없을진대 왜 하필?
궁금해하던 중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집앞 편의점에 가면서도 풀메이크업을 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더라.'
아니 집앞 편의점이면 걸어서 십분거리인데. 그걸 위해 그 귀찮은 화장을 한다니.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편의점 십분 다녀와서 화장 벅벅 지울 생각을 하니 머리가 아파왔다.
도대체 왜 그런 비효율적인 짓을 하나. 궁금한 마음에 인터넷을 찾아보았다. 편의점 화장, 편의점 메이크업... 별다른 이유는 못 찾았지만, 비슷한 뉘앙스는 찾아볼 수 있었다.
편의점 갈 때 화장 안 하면(혹은 대충하면) 얼굴을 못 든다.
화장 못 하면 꽁꽁 싸맨다...
모두 한 가지 공통점을 향유하고 있었다.
맨 얼굴을 드러내는 걸 부끄러워한다는 점 말이다.
민증 사진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까지 포토샵을 하고. 얼굴에 두껍게 화장을 올리고. 사진을 찍을 때 필터를 씌우는 사람들. 사실 다들 비슷한 맥락이다. 자기 본모습을 드러내기 무섭다. 부끄럽다...
본모습은 초라하고. 보잘것없다. 자신이 없다. 부끄럽다. 사랑받을 수 없다.
그러니 꾸밈이라는 갑옷을 입고 전장에 나서야 해. 사진은 보정을 하고 영상엔 필터를 넣는다.
그런데 다이소 거울은 어떠한가? 다이소거울엔 내 모습이 정면, 측면 온 사방팔방으로 비춰진다. 어떠한 보정도 없이 적나라하게.
그리고 그 모습이 남들에게 비쳐지는 날것 그대로란 것을 깨닫게 되고 - 정신병이 와 버리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 시선에 신경쓰느라 본연의 모습을 사랑하지 못하고 부끄럽게 생각하니 나타나는 현상이라 생각하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사실 여성을 둘러 싼 사회부터가 여성에게 끊임없이 아름답고 젊을 것을 요구하지 않던가.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는 끊임없이 미모의 인플루언서 사진이 업로드된다. 틱톡 등에선 메이크업 영상이 분초를 다퉈대며 올라온다. 퍼스널 컬러니. 웜톤이니 쿨톤이니 하는 논쟁이 사라지지 않는다.
최근엔 '고객님은 일단 중안부가 길어요'로 요약되는, 뷰티업계의 깎아내리기 상술까지 등장했다. 중안부가 뭐라고. 여기에 큰 충격을 받은 여성들이 성형외과를 찾아가거나 중안부를 짧아보이게 하는 화장법을 찾아다닌다.
사회 전체가 여성에게 '본모습을 부끄러워할 것'을 강조한다는 말이 전혀 과장으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그 따갑고 매서운 시선에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여자들. 그야말로 다이소 거울에 비친, 사회가 낳은 부조리극이라 할 만하다.
왜 다이소 거울 이야기가 나왔느냐 하면, 오늘 설특집 공포 영화인 '서브스턴스'가 내내. 목이 터져라 외치기 때문이다.
"다이소 거울에 비친 나 자신도 사랑해야지!'
영화는 엘리자베스 스파클이라는 왕년 오스카상 수상자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과거의 영광은 희미해지고 현재는 에어로빅 방송을 하는 중년의 배우. 하지만 여자화장실 고장으로 남자화장실에 잠시 들어갔다가, 엘리자베스는 이제 늙어 끝났으니 자르고 젊고 예쁜 여자를 앉히겠다는 이야기를 엿듣게 된다.
오줌싸고도 손 안 닦고 새우도 더럽게 처먹는 남사장에게 '이제 끝났다'는 개소리를 듣고 우울해진 엘리자베스. 그만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 신세를 진다. 그리고 거기서 운명의 만남. 간호사가 외투 주머니에 무언가를 넣어 두었던 것이다. '서브스턴스'라고 적힌 USB와, 이게 내 인생을 바꾸었다는 쪽지를.
틀어보니 대충 이런 내용이다. 주사를 맞으면 디엔에이가 복사가 되어 더 나은 자신이 태어난다. 다만 더 나은 자신으로 계속 있을 수는 없고. 7일마다 몸을 서로 바꾸어주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엔 '기억해라 너는 하나다'로 끝난다.
당연하게도 쌈박한 개소리로다 하며 쓰레기통에 처박는다. 하지만 점점 퇴화하는 자존감. 자기혐오 끝에 결국 전화를 해 서브스턴스를 주문하고. 상품을 직접 가지러 가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상자는 무슨 밀키트도 아니고 아주 간단한 구성이다. 먼저 액티베이터. 이걸 주사해 더 나은 나를 만든다. 실제로 해 보니 척추가 쩍 갈라지며 더 나은 자신이 튀어나오신다. 이건 일회용이라 한 번 쓰면 폐기해야 한다.
그 다음은 스테빌라이저. 진정제인데 본래 몸뚱아리의 척수액이다... 원형이 되는 몸에서 척수액 7일치 뽑아 하루 1일치씩 주사하면 새 몸으로 7일을 버틸 수 있다. 다만 후에 밝혀지지만 7일 이상 쓰면 원래 몸에 끔찍한 변형이 온다.
마지막으로 체인지인데 고무호스로 피 교환하면 두 몸이 바뀐다. 이걸로 7일마다 몸을 바꾸는 셈이다.
공포영화적 허용으로 성공리에 '더 나은' 몸을 얻는 엘리자베스. 새로운 몸 이름을 '수'라 짓는다. 이제 무엇을 할까?
바로 자신을 짤라버린 회사에 수의 이름으로 재취업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새로운 에어로빅 영상의 센터를 당당하게 쟁취하는 '수'. 더 이상 길을 걸을 때 두렵지 않다. 노란 코트와 썬글라스로 꽁꽁 싸매던 '엘리자베스'와 달리 '수'는 아주 당당하게 거리를 활보한다. 젊은 친구들과도 술파티를 벌이고, 다른 몸을 숨겨 둘 방을 DIY하다 항의를 받아도 미모로 넘긴다.
하지만 7일이 지나 엘리자베스로 돌아오면 자신감. 그 고양감과 충족감은 눈녹듯이 사라진다. 그저 끔찍한 자기혐오만 남는다. 원래 몸에 갇혀 소파가 눌어질 때까지 TV만 보는 자신...
그러다 한 번 7일 제한을 어기고 척수액을 하루치 더 뽑아 사용하게 된다. 그리고 7일 제한을 어기면 원래 몸에 변형이 온다는 것을 깨닫고 만다.
흉하게 변형된 손가락에 절망하는 엘리자베스. 여전히 아름다운 수. 이 두 몸뚱이의 괴리감에 엘리자베스는 점점 미쳐간다. 가면 갈수록 서브스턴스 상자에 적혀 있던 '기억하라 너는 하나다'라는 문구는 잊고 서로 다른 사람인 것처럼 군다.
결국 계속 7일 제한을 넘기다 엘리자베스의 몸에 심한 변형이 온다. 엘리자베스는 엘리자베스대로 거동도 힘들게 변한 제 몸. 무력감에 미친다. 수가 인터뷰하는 영상을 보며 은퇴선물로 받은 요리를 미친 듯이 만들고. 온 집에 떡칠을 한다. 신문지로 수가 등장하는 광고판을 가리고...
그러다 스위치해서 수의 몸뚱아리로 돌아오니 혐오를 걷잡을 수 없다. 저 쓸모는 없고 추잡한 몸뚱아리가 온 집을 난장으로 만드는구나 - 사실 자기 자신이 한 일임에도 - 엘리자베스로 절대 돌아갈 수 없다며 척수액을 미친 듯이 뽑아낸다.
결국 수로 계속 살아가며 승승장구한다. 고대하던 뉴 이어 쇼의 주인공이 되는 쾌거도 이루고. 하지만 하필 뉴이어 쇼를 지척에 앞둔 날 척수액이 다 떨어지면서 다시 엘리자베스로 돌아가게 된다. 아주 끔찍하게 변형된 모습의 엘리자베스로.
엘리자베스는 완전히 변해버린 자신의 몸을 저주하며 서브스턴스 고객센터에 전화를 건다. 이제 끝내달라고. 회사에서는 종결용 상품(템테이션이라 쓴 주사기)을 준비해 준다.
하지만 막상 수에게 주사하고 나니 겉잡을 수 없이 후회가 밀려든다. 너 없으면 안된다고 외치며 급하게 스위치를 찾는 엘리자베스. 결국 스위치를 진행하나, 부작용인지 엘리자베스가 그대로 있는 상태에서 수가 일어나고 만다.
안 그래도 서로 불타오르도록 증오하고 있었건만. 수는 엘리자베스에게 무자비하게 폭행을 가해 죽여버린다. 그리고 뉴이어 쇼를 준비하러 가는데 아뿔사. 몸이 붕괴되기 시작한다. 수는 집으로 달려 남겨두었던 액티베이터를 주사해 더 나은 몸으로 갈아타고자 한다.
하지만 척추를 뚫고 나온 건 몸이 겹겹이 합쳐진 키메라 '몬스트로 엘리자수'였으니. 몬스트로 엘리자수와 뉴이어 쇼의 행방은 어떻게 될 것인가?
길고긴 줄거리에도 나와 있지만 엘리자베스는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노란 코트와 썬글라스로 몸을 잔뜩 가리고 거리를 걷는 모습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이러한 자기혐오는 에어로빅 쇼에서 잘리고 남사장에게 끝났다는 소리나 들으며 더욱 심화된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서브스턴스 키트를 통해 수라고 하는 -더 낫고 더 아름다운 몸-을 얻었음에도 그의 혐오감은 점점 깊어져만 간다. 수라고 하는, 소위 꾸며진 몸과 원래 육체의 괴리감이 심해져만 가기 때문이다. 수로 살 때는 행복해도, 본래 자신의 몸으로 돌아와서는 절망뿐이다.
이는 옛친구를 만나러 가려고 화장을 하는 장면에서 적나라하게 보여진다. 엘리자베스는 몇 번을 화장하고 옷을 고쳐입는다. 하지만 전혀 만족스럽지 않다. 문고리에 비친 자신의 진짜 모습이 '수'와는 너무나도 다르니까. 결국 화장을 자해하듯 마구 문질러 지우고, 침전해가는 엘리자베스의 모습은 이 영화가 암시하는 바를 잔혹하리만치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렇다면 왜 엘리자베스는 자기혐오에 빠졌는가? 오스카 상까지 수상하고 멋진 뷰가 있는 아파트에서 사는 엘리자베스가 부족한 게 무엇이 있다고.
엘리자베스를 둘러 싼 시선이. 눈길을 주는 사회가 그렇게 만들었다. 여자는 나이가 들면 끝난다는 남사장. 웃을 상황도 아닌데 웃으라는 역겨운 주주들. 코 대신 가슴이나 달려 있음 낫겠다는 심사위원... 엘리자베스를 둘러싼 모든 것이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게 만든다.
이는 수의 몸을 얻고 하는 게 고작 에어로빅 다시 하러 가는 일이란 점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자신에게 모멸적인 말을 내뿜은 남자에게 사랑받기 위해서. 주주들에게 웃어주며 예쁨받기 위해 돌아간다. 얼마나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의식하는지 피부가 따가울 정도다.
그의 DIY실력을 생각하면 은퇴기념 도배업 차려도 만족감 높을 것 같은데. 다이소 거울처럼 사방을 둘러싼 시선에 굴복하고 마는 모습은 미련하기보다는 슬프게까지 느껴진다.
그래서 이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쾌감이 느껴지는지도 모른다. 몬스트로엘리자수는 쇼 의상을 그대로 입고 뉴이어쇼에 참석한다. 괴물이 나타났다고 비명지르는 관객들. 엘리자수는 그들에게 피터밤(워터밤+피)을 선사한다.
피의 홍수 속에 남사장도. 주주들도 흠뻑 젖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모습. 니 좋아하는 가슴 여기있다는 양 가슴덩어리를 뱉어내는 장면은 그토록 자신을 혐오하게 만든 시선들-그 원흉들-에게 자기 자신을 고스란히 내뱉고 물들이는 것처럼 보여 후련함을 준다.
그렇다면 결국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앞에서 말했던 대로 - 다이소 거울에 비친 자신도 사랑해야지! 란 것이다.
물론 사회가 그렇게 마음갖기 어렵게 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당장 엘리자베스도. 수도 극복하지 못했고. 현실에서 천만개의 눈동자가 자신을 주시하고, 평가하는 것만 같이 느껴지니까.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영화 막판, '몬스트로 엘리자수'로 변한 주인공은 어떠한 방해도 없이 뉴 이어 쇼에 진입한다. 물론 영화적 허용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만 돌이켜보면 재미있는 일이다. 지금까지 중 가장 추한 모습인데. 그저 뉴 이어 쇼 옷을 입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극장에 들어섰으니.
그 장면을 보며 예전 모 방송국(아마 EBS였을 거다)에서 진행했던 실험이 떠올랐다. 실험대상자에게 쪽팔리는 전신 쫄쫄이를 입힌다. 그리고 농구경기장을 마구 돌아다니라고 지시했다.
실험대상자는 처음에는 엄청나게 쪽팔려한다. 다들 농구팬답게 팀 셔츠 입고 응원하는데, 자기만 올챙이처럼 입고 나다니라니! 실제로 대상자를 보고 웃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정작 실험이 진행되고 나니 전신 쫄쫄이를 입은 사람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보고 웃었던 사람들조차 말이다.
실험의 요지는 '남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가 없다. 사람들은 의외로 당신이 어떻게 생겨먹었고. 어떻게 입었으며 어떤 행동거지를 지녔는지 관심이 없다.'였다. 당신을 평가하는 천만개의 눈동자는 사실 당신이 상상한 결과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엘리자베스도. 수도. 몬스트로엘리자수도 매한가지가 아닐까. 사실 쇼 담당자는 쇼에 참석하는 누군가만 있으면 되지. 옷은 입었으니까 보내준 거다. 그 내부에 있는 누군가에겐 큰 관심이 없다. 엘리자베스든. 수든. 심지어 몬스트로엘리자수든 그 옷을 입고 있으면 다 보내줬을 거다. 실제로도 보내줬고.
우리를 보는 시선이 무섭고 따갑고 고통스러우니, 나 자신을 끊임없이 꾸며야 한다고. 사회는 우리가 그리 생각하라고 지치지도 않고 계속해서 부추긴다. 하지만 한 걸음 멀어져 생각해보면, 의외로 사람들은 '추해보일지도 모르는 당신'에게 큰 관심이 없다. 사람의 기억은 한정적인데다 휘발되기까지 하나니. 자기 일 하느라 바쁜 와중 누가 남을 그 정도까지 재단하겠는가?
다이소 거울에 비친 모습이 좀 고통스러우면 어떠랴. 정작 다이소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들은 자기가 살 천원짜리 물건에 더 관심이 있다. 편의점 직원들은 그날 업무 시간이 빨리 끝나기나 기다릴 것이며 인스타그램 피드를 내리는 사람들도 당신의 사진을 일초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보고 잊어버릴 터다.
즉, 어디까지나 마음먹기 마련이다.
엘리자베스가 자신을 사랑해 '서브스턴스'라는 기묘한 키트를 주문하지 않았더라면. 와인 한 잔 홀짝이며 눈부신 새해를 맞이하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여기까지는 개인이 할 수 있는 영역이다. 조금이라도 덜 힘들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노력.
그리고 사회가 나서야 할 부분이 따로 있다.
엘리자베스가 혐오감에 빠진 근본적인 원인은 사회다. 저질에 역겹기까지 한 남사장과 주주들이 엘리자베스를 이지경까지 몰아넣지 않았나. 만약 저들이 없는 세상이었다면 엘리자베스가 서브스턴스에 손을 댈 이유도 없었다. 아니, 아예 서브스턴스라는 제품 자체가 만들어지지도 않았을 터다.
남사장이 몬스트로엘리자수보다도 역겹게 느껴지는 것도. 그가 마지막에 피칠갑이 되는 모습을 보며 자못 통쾌함을 느끼는 것도. 여성을 둘러싼 사회 자체가 부조리하고 더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내내 아무도 그게 잘못되었다고 일갈하지 않는다. 만약 남사장으로 대표되는 존재를 '잘못되었다'라고 지적하고. 끌어내리는 사회였다면 영화 장르도 달랐으리라.
미시적으로는 다이소 거울에 비친 나 자신을 인정하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거시적으로는 여성을 옭아매는 진정한 원인인 사회가 변할 필요가 있다.
영화는 외친다.
다이소 거울에 비친 상도 자신이다!
그리고 또 외친다.
거울에 비친 자신을 혐오하게 만드는 사회를 규탄한다!
라고. 영화를 감상하는 모든 여자들을 향하여.
총평 : 2025년 시작 이후 영화관에서 본 첫 공포영화. 관람시에도 매우 즐거웠지만, 관람 이후 찬찬히 곱씹을수록 더욱 의미가 깊어지는 맛이 있다. 표값 1만6000원의 개창렬 시대임에도 돈이 아깝지 않았다.
P.S. 1. 영화 러닝타임이 140분에 육박하는데도 군더더기가 없고 질리지 않는다. x리x스터나 x르고스x티모스같은 감독들과는 차원이 다르시다. (상기 두 감독들 최근 작들 쓸데없이 러닝타임은 길면서 불필요한 컷이 많다. 둘 다 초심을 찾을 필요가 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이다.)
P.S.2. 예상보다 고어하지 않다. 쏘우보다 고어하다는 이야기 듣고 좀 긴장했는데 예상보다 잔인하지 않았다. 덕분에 가볍게 즐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