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는 뇌가 좀 썩었는데도요? 라고 반박하기 십상이나. 사실 공포영화에서 좀비만큼 직업(?)에 충실하신 분들도 없다. 대충 너 좀비야. 하면 뭥뮈억무억무억뭭 하고 이상한 소리 내면서 비틀비틀 걸을지언정 목표물을 향해 충실히 전진하신다. 기어코 사각지대로 몰아넣고 한줌 자비도 없이 물어뜯고. 번식도 알잘딱깔센(맞나?)으로 잘 해서 너무 많이 먹어 잔반없는 날을 실현하지 않는 이상 무조건 성공시킨다. 심지어 현대 빨리빨리 트렌드에 맞추어 요즘 좀비들은 달리기 스킬까지 보유한다. 도저히 돌아가신 분들의 것이라곤 생각도 되지 않는 폐활량과 지구력까지 겸비하였다. 이러니 누가 좀비를 멍청하고 쓸모없다고 하겠는가!
아니 그럼 약쟁이는요? 할 수도 있다. 실제로 공포영화 대다수의 교훈이 '약하지 맙시다'인 것만 봐도 약쟁이는 쓸모없고 비천한 게 맞다. 하지만 약쟁이라고 다 쓸모없고 멍청하지는 않다... 약쟁이 캐릭터여도 극중에서 극복하고 전사로 각성하는 경우도 은근히 있으니.(보통 주인공이 약을 하는 경우 극복의 대상이자, 성장통같은 역할인 경우가 많다) 당장 저번에 리뷰한 '애비게일'의 주인공도 (작중 시점에서는 끊었지만) 약쟁이였음에도 멋진 활약도 하고 성장도 하신다.
하지만 경찰은 어떠한가.
영화에서 경찰이 주인공이 아닌 이상, 경찰이란 직업은 영 쓸모가 없다. 절체절명의 위기. 살인마든 뭐든 공포를 주는 존재의 위협이 거세지는 가운데 드디어 경찰이 등장한다. 관객들은 약간이나마 안도하며 경찰이 상황을 해결해주기만을 바라지만... 보통 경찰이란 놈들은 뭐야 아무것도 없네'하고 정말 빈약한 출동만 하고 돌아가거나. 안 믿어주고 주인공을 머저리 취급하거나. 오히려 살인마 등에게 당해 뚝배기가 터지거나. 아주 한심한 모습만 보여준다. 결국 각성한 주인공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나서야 경찰차가 이용이용~ 소리를 내면서 사건현장을 정리하니. 관객입장에서는 복장이 터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끔찍한 지능 이슈가 생기는 이유는 명확하다. 공포영화에서 경찰은 닌자이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소리냐 하시겠으나, 경찰과 닌자의 공통점을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바로 '상황을 확실히 정리할 수 있다'는 공통분모다.
하이야~!
닌자가 나타나 하이야~! 한 번 해 주면 모든 사건이 해결되듯 경찰도 마찬가지다. 경찰이 똑똑하다면? 경찰이 모든 사건을 다 정리해버린다. 똑똑하게 범인을 유치장에 넣든 머리에 바람구멍을 뚫어주든.
그리고 그러고 나면 주인공이 할 일이 없어지고 만다.
으레 최악의 위기상황. 절체절명의 공포 속에 주인공은 각성하기 마련이다. 기지를 발휘하여 - 보통 극 초반에 언급되었던, 혹은 겪었던 일을 영리하게 활용하는 편이다 - 공포의 대상에게 엿을 먹이고. 위기를 극복하며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맛보게 해 준다. (대표적인 예로 '해피데스데이'의 주인공이 극초반에 등장했던 정전을 활용하는 장면이 있겠다.)
그런데 경찰이 유능하면? 카타르시스는 날아가고 영 재미가 없어지고 만다. 사건 자체야 어이없을 정도로 쉬이 해결되어 맘이야 편하겠지만 관객의 가슴 속은 허전해진다. 극강의 텐션 속에 해소하는 과정이 생략되니까. 마치 닌자가 모든 걸 해결하는 순간 극의 재미도가 반감되듯이.
다만 경찰이 너무나도 멍청하면 극 자체의 현실감을 떨어뜨리는 관계로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 짜증이 카타르시스를 덮어버리는 것이다... 또한 주인공의 각성이 큰 카타르시스를 가져오지 못하는 경우도 매한가지다.
서론이 길었다. 해당 영화도 공포영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멍청한 경찰'클리셰가 그대로 적용된다.
문제는 그 문제점이 심하게 부각된다는 부분이지만!
영화는 어느 사막에서 불법으로 거미를 밀렵하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개중 한 명의 입 속으로 거미가 들어가 고통스러워하자, 다른 일행이 다가와 칼로 목을 쳐버리는 -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화끈한 부분이다 - 오프닝이 인상적이다.
이후 시점은 프랑스의 아주 낡디낡은 아파트로 돌아간다. 이 아파트는 너무나도 낡고 비루하여 빈민층들이 주로 거주하고 있다. 주인공 칼렙 또한 이 아파트에서 친척들과 함께 거주하고 있다. 여느 때처럼 아파트에 전기 문제가 생겨 불이 잘 안 들어오는 상황. 주인공은 오프닝에서 밀매한 거미를 한 마리 구입하여 키우려 한다. 기이한 동물을 키우는 취미 탓인데, 이 거미가 탈출하면서. 그리고 이 거미가 사람의 몸 속에 들어가 알을 낳고 엄청한 속도로 번식하는 종이란 것이 밝혀지며 아파트는 혼돈의 아수라장이 되어 버린다.
거미의 약점은 빛인데, 하필 아파트 전기가 다 나가버리는 바람에 아파트 주민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된다. 거기다 무작정 주민들의 의견은 듣지도 않고 아파트 내에 가둬 두려고만 하는 경찰들은 덤이다. 죽지 않으려면 빛이 있는 밖으로 탈출해야 하는 가운데, 주인공 일행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시놉시스만 보면 꽤 화끈하게 거미가 다 쓸어버리는 장면이 나올 것 같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오프닝이 제일 강렬하다 느껴질 정도로 거미가 아파트를 장악하는 과정은 루즈한 편이다.
문제는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 일행에게 공감하기 어렵다는 점과 경찰이 너무나 무능해서 관객을 돌게 만든다는 점이다.
애초에 관객 입장에서는 주인공이 모든 일의 원흉이나 다름없다. 어디 국적도 모르는 거미를 데려다 키워 아파트를 그 사단을 내버렸으니... 덕분에 친척들이며 친구들이며 거미밥이 되어버리지 않는가.
하지만 그런 원흉이 어떻게든 성장하여 위기를 극복하고. 카타르시스를 부여하면 좋으련만. 영화 내에서 주인공이 '확연하게 성장한다'는 느낌은 영 받기 어렵다. 주인공이 자책하는 장면도 그렇게까지 크지 않을 뿐더러 주인공이 하는 일은 마지막에 경찰들의 트롤링 속에서 도망쳐 문을 여는 것. 이 하나로 끝나버리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차라리 영덕대게로 진화한 대장(?)거미와의 장렬한 싸움이라도 보여줬다면 평이 나았을수도 있겠으나... 장렬한 싸움은 없었다. 영덕대게 거미가 그냥 영덕대게처럼 다리 쫙 벌리고 서 있을 뿐이다.
경찰의 무능함이 클리셰를 충실히 따른다는 점도 영화를 재미없게 만드는 데 한 몫 한다. 무턱대고 위험한 거 격리한다고 아파트에 가둬두고 주민들한테 총 내미는 경찰도 짜증나지만, 마지막 클라이막스 장면에서는 정말 심각한 지능 이슈를 보여준다.
아니 어떤 미친 놈이 거미떼가 기어나오는 건물에서 총으로 상대할 생각을 한단 말인가? 손바닥만한 거미가 수십마리... 아니 족히 수만마리는 기어다니는데 총으로 상대할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하다.
경찰들이 기어나오는 수많은 거미떼를 상대로 가열차게 총질하다 당하는 꼬라지를 보고 있노라면 헛웃음까지 나온다. 총은 가져온 놈들이 살충제 살포기나 화염방사기 가져올 생각을 못한다니...
관객들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복장이 터지는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영덕대게거미떼 vs 거따대고 총질하는 경찰 환장의 콜라보
사실 이러한 묘사가 나온 데는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교훈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되기는 한다. 강압적인 격리. 무능한 정부. 격리를 뚫고 나가고자 하는 사람들... 생각나는 것이 있지 않은가? 바로 코로나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던 시절이 오래되지 않았다. 우리나라야 그럭저럭 격리를 잘 받아들였다. 하지만 서양권 등의 나라에서는 격리에 대한 저항이 거세었다. 나가서 행동할 자유. 입고 먹고 마실 자유를 억압하고 무턱대고 격리하는 정부에 저항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거기다 당시 취약계층에 대한 멸시의 시선 역시 한몫하였으니. 우리나라만 해도 중국인이나 중국 교포들에 대한 시선이 매우 곱지 않았다. 프랑스 역시 비슷했으리라. 난민, 이민자 등 주류와 떨어진 자들에 대한 시선은 더욱 차가워져만 갔다. 주인공 칼렙과 그의 아파트 주민들에 대한 시선처럼.
영화 속 무능하디 무능한 경찰의 행동은 여기서 기인한다. 사실 정말로 거미떼가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으니 총을 들고 왔을 터다. (총은 어디까지나 사람을 상대하는 무기다)
본질은 제대로 꿰지도 못하고 있다 정작 상대해야 하는 것은 제대로 상대도 하지 못하고 무력하게 무너져버리고 마는 경찰들. 그리고 그 문제는 '빛을 쐰다'는 매우 쉽고도 확실한 방법으로 해결되어버리고 만다. 그것도 그 멸시받는 자들에 의해. 영화는 바로 이러한 지점을 비판하고자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의미가 좋다 한들. 결과적으로 재미가 없으니 안타까울 노릇이다. 경찰의 무지능. 그리고 그걸 혁파하는 주인공이란 요소가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했건만. 영화는 그 측면을 잘 살리지 못한다.
그저 영덕대게로 진화한 거미를 상대하는 주인공도 비호감. 경찰도 비호감... 뭔가 영웅적인 면모라도 보여주어야 했는데 그러기엔 또 너무나도 소시민적이다. 덕분에 주인공의 활약은 업보 청산 정도의 의미로밖에 보이지 않고. 경찰의 무능함에 화가 나 비명만 지르게 될 따름이다.
메시지가 좋더라도, 영화가 주는 즐거움이 부족하다면 어떻게 되는가를 보여주는 좋지 않은 예라고 생각된다.
총평 : 메세지가 좋으면 뭐하나 재미가 없는데!
P.S. 저... 감독님 이블데드 신영화 만드신다는 소문이 있던데 제발 잘 만들어주십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