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영화리뷰9)덕질도 정도껏 합시다

더블블라인드(2024) 리뷰

by 홍단
돈 너무 많이 주는 임상실험은 참여하지 말자는 교훈


*스포일러가 포함된 주관적 리뷰입니다.


좀 많이 예전(대락 십몇 년 전쯤?)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던 괴담. '신일의과대학'을 아는 사람이 있으련지 모르겠다.


괴담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신일의과대학이라는 곳에서 임상실험자를 모집하는데, 뭘 실험하냐면 고통의 단계를 1부터 28까지로 나누어 실험한댄다. 그리고 대가로 무려 5천만원을 지급한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최저시급이 4,110원인 시절이었다는 게 더 무섭다

이 기묘한 구인글은 뭇 인터넷 유저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건장한 남성을 뽑는 걸로 보아 장기매매다부터 시작해서 신일의과대학이란 곳은 없다는 점이 지적되기도 했고. 관련하여 팬(?)만화도 등장하고 TV에도 소개가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진실이 밝혀지는 일은 없었으니. 아무래도 저 구인글 공고시기가 2010년인 만큼 미디어가 지금보다는 덜 발달한 게 컸으리라.


어찌 되었든지간에, 아주 찜찜한 실험인 것은 사실이다. 임상실험 참여만으로 5천만원이나 준다는 점 자체가 상상력을 돋우는 것이다. 아무래도 위험이 따를 수록 돈을 많이 주는 법인데, 5천만원이라니... 그렇다면 얼마나 위험한 실험을 진행하는 것일까? 하고.


이번에 리뷰할 영화인 '더블 블라인드' 역시 이러한 상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제약회사에서 극비리에 진행하는 임상실험. 통신도 차단되는 밀폐공간 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피험자들. 그저 약 먹는 실험 치고는 수상할 정도로 많은 돈이 제시된다. 이 실험. 과연 안전할까?


다만 흔히 생각하는 '신일의과대학'류 괴담과는 살짝 다른 점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신일의과대학'을 덕질하는 미친놈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진짜 이런 미친ㅅㄲ가 나온다

영화의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이중맹검(신약(新藥)의 임상 시험에서 가약(假藥)을 투여하는 대조군(對照群)을 두는데 어느 것이 가약인지 의사 또는 피검자(被檢者)가 모르게 하는 시험법. 피검자만 모르는 단순 맹검법과 의사와 피검자 모두 모르는 이중 맹검법이 있다. 출처 표준국어대사전) 임상에 참여한 피험자들. 임상이 진행되는 시설은 통신도 되지 않는 밀실이다.


정량대로 약을 복용하며 시설에서 머무르는 가운데, 주인공 클레어를 포함한 피험자들에게 잠이 오지 않는 등 기묘한 현상이 나타난다. 그만두어야 하나 고민의 기로에 선 가운데 제약회사에서 거액의 실험비를 제시한다.


한편 실험을 진행하는 버크 박사는 피험자들의 뇌에 이상현상이 일어나고 있음을 악고 제약사에 문의하지만 약사는 오히려 복용량을 늘릴 것을 종용한다.


문제는 이상기류를 눈치 챈 피험자가 있었다는 것. 그것도 앞서 말한 '회사 덕후'가! 본 실험을 진행하는 제약사인 '블랙우드'에 들어가고 싶어 임상실험까지 참여한 이 미친놈은 실험에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눈치채고 실험 데이터를 몰래 빼내려는 짓을 벌인다.

하지만 제약사의 방어시스템이 가동하며 24시간동안 열리지 않는 격벽이 움직인다. 버크 박사는 긴급히 탈출하려다 격벽에 박혀 꼬치구이가 되어버리고 만다.

그리고 밝혀지는 진실. 이 임상실험에서 사용된 약이 뇌의 면역체계를 엉망으로 만드는 바람에 잠이 들면 죽고 만다는 충격적 사실이었다.


이미 피험자 중 한 명이 잠들었다가 눈코입에서 피를 뿜으며 사망한 상황. 나머지 피험자들은 쏟아지는 졸음을 감내하며 격벽이 열릴 때까지 24시간을 버텨야 하는데...


만악의 근원은 이런 끔찍한 임상실험을 아무렇지도 않게 진행하는 제약사 '블랙우드'다. 부작용으로 사람이 칠공분혈을 하며 죽을 수도 있는 실험을 눈 깜짝 않고 진행하는 회사. 일부러 피험자를 '죽어도 신경 안 쓸 사람'으로 뽑는 치밀함까지 보인다.


거기다 24시간이 지나고 풀어주는 게 아니라, 탈출한 회사덕후 '아미라'를 총으로 쏴 죽이고 진실을 의폐하기까지 하니. 전형적인 악덕기업 그 자체라 할 수 있겠다. 무슨 새천년건강체조에나 나올 것 같은 홍보영상으로 인류를 위하는 양 가장하는 오프닝을 되새기다 보면 아이러니함의 극치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악덕기업의 무리수보다도 더 이해가 안 가는 인물이 한 명 있으니. 바로 앞서 계속 언급한 회사 덕후 아미라이다.


블랙우드를 너무 사랑하여 들어가고자 했으나 실패하자, 수상한 임상실험에까지 참여하는 의대생이라니... 매우 초현실적으로까지 느껴지는 설정이다. 심지어 임상실험을 진행하면서도 버크 박사에게 자신을 어필하지를 않나. 데이터를 복사하려다 사단을 내지를 않나... 이쯤되면 그의 덕후력에 두려움까지 느껴진다.


물론 덕분에(?) 잠들면 죽는다는 사실이 밝혀지긴 하지만, 각성제의 힘을 빌려도 졸음을 참기 힘든 극한상황 속에 다른 피험자들의 정신이 제대로 돌아갈 리 만무하다. 24시간동안 갇히게 한 만악의 근원이라 여겨지는 건 필연이었으니. 피험자들에게 묶이고 죽을 위기까지 처하고. 그 개고생을 하다 자기도 정신이 나가 버크 박사의 환영을 보고 사람을 죽이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블랙우드에 대한 기대감을 못 버렸는지. 사람 대놓고 죽게 만든 회사에서 24시간 지난다고 '짜쟌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치료해드릴게요!' 하고 나올 리가 있겠는가. 하지만 이게 현실인지 꿈인지 불확실한 감각 속에 정문으로 당당히 나가고. 결국 블랙우드에서 파견한 직원들에게 총을 맞아 사망에 이르기까지 한다. 어찌 보면 성공한 덕후라 할 만하다.

흔히 덕질을 할 땐 정도껏 하라는 표현을 쓰곤 한다. 그 대상이 아이돌이든, 연극이든, 만화캐릭터든지간에 너무 몰입하지 말라는 의미에서다.


도껏 하지 않으면 자기 자신도 파괴하고 남에게도 폐를 끼치는 게 덕질이다. 밥을 굶어가며 아이돌 음반 사재기에 매진하기도 하고. 연극에서 옆 사람이 자길 거슬리게 한다며 sns에다가 글을 써서 공론화하거나 그 사람을 괴롭히기도 한다. 정도를 지나치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하물며 회사 덕질이면 무엇하랴. 저런 회사는 덕질을 할 일고의 가치조차 없는 곳일진대.


이 영화의 아미라도 정도가 지나쳐 블랙우드의 마수에 희생되고 말았다고 생각하면, 덕질이란 참으로 무섭구나를 다시금 느끼게 해 준다.


이런 일을 없어야하지 않겠는가

사실 영화에서 오타쿠 이야기가 중점이 아니긴 하다만, 다른 인물들 중 크게 서사가 있는 인물이 없다 보니 특이한 인물에 주목하게 되는 점도 있다. 주인공인 클레어만 해도 과거가 아주 조금 나오지만 영화 내에서 과거를 극복한다던지. 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다 보니 크게 와닿지가 않는 편이다. 그저 누가누가 잠을 더 잘 참나. 누가 덜 미친 짓 하나. 이 두 가지를 가지고 차력쇼를 할 뿐이다.


영화가 좀더 긴장감있고 스릴있게 만들어졌다면. 혹은 주인공이 과거를 극복하고 성장하는 과정이 중점적으로 다루어졌다면 좋았겠다만 영화는 영 그 둘 다 맥을 추지 못한다.


영화의 주제의식이 당최 무엇인지 잘 모르겠는 탓이다. 악덕 회사 규탄? 가정폭력 극복? 공포영화에서 교훈 타령하는 게 조금은 우습지만 표면 그대로 '잘 모르겠는 임상실험에 함부로 참여하지 마세요'가 교훈이라고 생각하면 맥이 빠진다.


그렇다고 '더 호스트 접속금지'처럼 공포에 집중한 것도 아닌지라. 잠을 자지 않기 위해 노력하다 환각을 보고. 환각은 또 쓸데없이 '스마일'에 나오는 웃음귀신을 닮았을 뿐 그닥 무섭지도 않다. 상황 자체가 '영화를 보고 있는 내가 겪을 일이 없다'보니 몰입감이 굉장하지도 않다. 평범한 사람이 임상실험 참여했다고 죽을 일이 어디 있겠는가. 여러모로 영화가 애매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러다보니 회사 덕후 놈에게 계속 주목하게 되고, 지나친 덕질이란 역시 지양해야 하는 것이구나 하는 괴상한 감상에 도달하지 않았나 싶다.


조금 우스개소리 섞어 쓴 리뷰지만, 전체적으로 흐리멍덩해서 아쉬웠던 영화. '더블 블라인드'였다.


총평 : 로튼에 속은 영화. 로튼 100%일 때부터 이상함을 눈치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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