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는 '더 호스트'. '베르민느 독거미'도 그렇고 '레릭 유물의 저주'도 그렇고 우리나라 배급사는 부제 안 붙이면 죽는 병이라도 걸렸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는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왜 사람들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일까? 거기에 롤러코스터가 있어서? 는 아닐 것이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섭잖아~ 스릴 있고.' '재밌어서.' 등등으로 답하리라.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감정인 공포를.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순간의 아찔함을.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이 끝났을 때의 쾌감을 느끼기 위해서.
뭐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과학적으로 설계된 곡선의 미학을 분석한다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요. 추락이라는 행위를 통해 원초적 해방감을 느끼겠다는 사람도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 롤러코스터를 탄다는 행위의 일차적 목적은 아닐 것이다.
그런 사람들조차 '그런데 왜 굳이 롤러코스터를 타시죠 곡선의 설계. 추락. 다 보려면 롤러코스터 안 타고 롤러코스터 타이쿤만 해도 충분하지 않습니까!'라 묻는다면 똑같이 답하리라. '직접 타면 무섭잖아요, 쫄깃하고 재밌잖아요!'
롤러코스터 타이쿤으로도 느낄 수 있는 곡선의 아름다움과 추락의 해방감
결국 롤러코스터를 타는 근본 목적은 '공포와 스릴,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서.'가 아닐까.
공포영화도 마찬가지다.
공포영화를 보는 근본적인 이유도 '공포와 스릴,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서'라는 이야기이다.
물론 앞서 롤러코스터를 예시로 들었듯이, 공포영화에서 다른 미학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있을 터다. 장면장면을 분석하여 내재된 메시지를 파악한다던지. 영화 속 기이한 현상 속에 숨겨진 내러티브를 읽어낸다던지. 기괴하고도 아름다운 미장센을 감상한다던지.
하지만 그런 이들에게도 '굳이 왜 공포영화를 왜 보십니까? 아예 저런 분야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영화들도 있을 텐데요 '라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리라.
"공포영화는 무서우니까요!'
그러나 바야흐로 2010년대 이후. 소위 싸게 먹히는 공포영화를 찍어내는 시절을 지나 '아트'적인 공포영화가 수면 위로 등장하기 시작하였으니. 나름 작가주의적 공포영화가 양지로 거침없이 고개를 내밀매 '공포'만을 주겠다는 영화들이 오히려 서서히 숨을 죽이기 시작했다.
쏘우 1이나 인시디어스1같은 공포영화들이 로튼토마토에서 썩토(로튼토마토지수 60퍼센트 미만인 영화를 뜻함)를 받던 암흑기를 지나, 서양권에서는 강력한 메시지를 주제삼은 공포영화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공포영화가 주제의식도 있고, 피와 살이 튀지 않아도 아름다운 미장센도 있고. 이 얼마나 좋으냐! 싶겠지만... 이러다 보니 정작 공포를 놓치는 경우가 많아졌다. 최근 몇몇 공포영화를 감상하며 '메시지는 좋군... 많이 발전했다. 그런데 공포는???' 했던 적이 한둘이 아니었으니. 당장 전에 리뷰했던 바바리안, 와쳐, 웨어울프 바이 나이트 이 셋만 해도 공포요소는 몇몇 장면 제외하면 크지 않았다. 특히 웨어울프 바이 나이트의 경우 12세 이용가인만큼, 그리고 고전영화미를 내세운 만큼 전혀 무섭지 않았다.
이외에도 많은 영화들이 장르에 '공포' 달아놨으면서 무섭기보단 불쾌감, 영상미 등에 집중하였다. 영화를 보며 분석하고, 숨겨놓은 의미를 찾고... 그런데 정작 공포영화의 원초적인 목적이라 할 공포가 보이지 않는다. 훌륭한 만듦새의 공포영화를 감상하다가도 종종 아쉬움을 느끼게 되는 이유다.
하지만 오늘 소개할 영화는 간만에 '공포'자체에 집중한 영화다. 온갖 요소들-캐릭터, 서사 등등-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까지 화끈하게 날려 버리고 오로지 짧은 러닝타임 내 '공포스러움. 긴장감.'만을 최대한 우겨넣은 영화.
'호스트 접속금지'를 리뷰해보고자 한다.
만악의근원 그자체 한국에 좀 들어와라
원제 '더 호스트'. 우리나라에서는 조금 늦은 2021년에 개봉하였지만, 외국에서는 코로나 한창이던 시대에 딱 맞춰 공개되었다. '셔더'라는 외국 공포영화 전문 스트리밍 사이트를 통해서.
이 영화가 택한 전략은 아주 명확했는데, 바로 '코로나 시대 가장 근접한 물건을 공포의 대상으로 삼자!'란 것이었다.
코로나 시대 이전에 비해 현격하게 많이 접하게 된 대상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줌'이었다.
코로나 자가격리 기간 이 로고 안 본 사람 없을듯
현실세계에서 직접 만나지 못하니 줌이라는 영상회의 시스템을 통해 서로를 연결하는 사람들. 단순 화상 대화뿐 아니라 면접, 교육 등 다방면에서 활용되었다. 줌은 친숙하다 못해 익숙해졌다.
영화의 줄거리는 오로지 이 '줌'이라는 대상물에서 공포감을 불러일으키겠다! 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줄거리는 아주 간단하다.
코로나 자가격리가 한창인 시절. 우리의 주인공들은 심심함을 이기지 못하고 줌 화상채팅을 통해 강령술을 시도한다. 하지만 강령술 과정에서 장난을 치는 바람에 생각지도 못한 진짜배기 '악령'을 불러들이고. 악령은 화상채팅에 참여한 친구들을 하나하나 죽여나간다.
딱 이 정도가 줄거리의 전부이다. 더도 덜도 말고 딱 저 다섯 줄로 요약이 가능한 스토리. 친구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 서사조차 미미하다. 딱 '화상채팅'이라는 한정된 상황에서 한정된 스토리로 영화는 끌고 나간다. 다만 '줌'이라고 하는 도구를 사용해 할 수 있는 모든 장치를 활용해서 말이다.
줌 화상채팅에 임할 때 흔히 까는 배경필터부터, 얼굴 모션에 반응하여 떠오르고 움직이는 스노우 필터. 화상캠으로 진행하느라 이동할 때는 노트북을 직접 들고 가야 하는 부분에 이르기까지.
특히 악령이 왔다는 것을 허공에 떠오르는 스노우 필터로 인식하는 장면에선 대략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짐작은 하면서도 깜짝 놀라게 된다. 거기다 전적으로 노트북 화면을 통해 극이 이루어지다 보니, 노트북이 움직이면 화면이 같이 이동하면서 더욱 몰입감을 부여한다.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들이 직접 화상 채팅에 참여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거기다 사람이 노트북에 달린 캠으로부터 일정 범위 밖으로 나가면 인물은 보이지 않고 배경 필터만 보인다는 점까지도 영리하게 활용한다. 다들 악령에게 공격받는 상황 속. 갑자기 나타나지 않는 친구. 그저 그 친구가 영화 첫 부분부터 깔아 둔 배경 필터만 지속될 뿐이라 어떤 일을 겪고 있는 것인지 걱정이 되게 만든다. 그러다 갑자기 배경 화면 필터를 뚫고 피범벅이 된 채 노트북에 머리를 반복적으로 들이박는 모습이란... 노트북에 박을 때만 얼굴이 나타났다가 다시 배경 필터 속으로 사라졌다가를 반복하는 모습은 줌이라는 도구를 최대한 효과적으로 사용한 좋은 예시라 할 수 있겠다.
영화는 이러한 생동감을 마지막까지 끌고 가는데 - 무료 줌 화상채팅에는 제한시간 40분이 있다는 점까지 알뜰하게 써먹는다. 마지막에 노트북을 들고 다른 친구네 집으로 향하는 생존자. 아래에 시간이 거의 다 되어 간다는 알람이 보인다. 그러다 40분이 되는 순간 화면 가득히 들이닥치는 악령의 얼굴. 그리고 그대로 강제 종료되는 줌으로 영화의 말미를 장식하기까지 한다. 그야말로 한정적인 도구를 극한까지 써먹어, 보는 사람들의 몰입감과 공포를 극대화하였다고 볼 수 있겠다.
주제의식이라고 해 봐야 '하지 말라는 건 하지 말자'는. 공포영화가 만들어진 극초반부터 존재하였던 교훈을 되풀이한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미약한 주제의식을 부각하는 대신, 영화는 '공포' 하나는 확실하게 극대화한다. 너희가 항상 사용하는 그 도구. 마구잡이로 튀어나오는 점프스케어(공포 영화 등에서 갑작스럽게 깜짝 놀라게 하는 장면을 의미함)로 칠해 주지! 하는 포부로 중무장한다.
마치 롤러코스터가 관객을 무섭게 하고자 각도를 높이고 발판을없애고 허공에서 회전케 하는 것처럼. 오로지 공포감으로만 승부를 보겠다는 의지까지 느껴진달지.
간만에 고찰 따위 없이 한 편 즐겁게 감상하고 노트북을 딱 접을 수 있는 그런 영화였다. 노트북으로 감상하면. 특히 줌 서비스를 사용하던 노트북으로 감상하면 더욱 즐거운 영화.
'호스트 접속금지'였다.
p.s.1. 이 영화의 감독 롭 세비지 씨는 이후 비슷한 콘셉트의 영화인 '대시캠'을 제작하였으나, 가열차게 말아먹고 만다. 아무래도 대시캠이란 소재 자체가 줌보다는 덜 사용되기도 하고, 대시캠을 단 한 명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보니 보여줄 수 있는 장면도 한정적이라 그런 듯. 대시캠 단 놈이 짜증 유발자일 수밖에 없는 것도 더더욱.(그래야 영화 전개가 되니까)
소재만으로 무언가를 보여주는 건 아직 어려운 영역이다.
p.s.2. 평이 후한 건 영화가 짧아서도 있다. 줌 컨셉에 맞추느라 그랬겠지만 공포만 주는 영화가 늘어지면 지루해질 수밖에 없으니. 롤러코스터도 오래 타면 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