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인가 시작인가, 미지의 경계
인생에서 절대 피할 수 없는 두 가지, 죽음과 세금 "Death and taxes"
언젠가 어느 영미권 영화에서 처음으로 '인생에서 죽음과 세금을 절대 피할 수 없다'는 인용구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이 말이 인상깊어 잊지 않고 있었고, 그 후로도 이 표현은 꽤나 자주 들을 수 있었다. 누가 한 말인지, 어디에서 유래된 것인지, 이것이 속담인지 무엇인지 알지 못했으나, 이번에 검색을 통해 벤자민 프랭클린이 1789년 작성한 글임을 확인하였다.
Our new Constitution is now established, everything seems to promise it will be durable; but, in this world, nothing is certain except death and taxes.
우리의 새 헌법이 확립되었다. 모든 면으로 보아 이 헌법은 지속성을 지닐 것이 확실해 보인다. 그러나 이 세상에 죽음과 세금을 빼고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피하고 싶으나 피할 수 없고 마주하고 싶지 않지만 맞닥들일 것이 확실한:
'죽음과 세금'
이 표현은 이 후로도 여러 저명한 사람들과 일반인들 입에 인용되었다.
일례로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Death, taxes and childbirth! There's never any convenient time for any of them. 죽음, 세금과 출산! 이것들을 위한 편리한 시간은 단 한순간도 없다."
나는 아버지에게 임박한 죽음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인간은 어쩔 수 없이 누구나 예외 없이 죽는 한없이 작은 존재라는 점을 깊이 인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 얼마나 보잘것없는가. 그 아무리 사는 동안 부귀영화를 누렸다 한들, 죽음 앞에서 이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하지만 분명 죽음 앞에 '삶이 헛되다' 고백하는 자도 있겠지만, 하나님과 동행하며 산 자신의 삶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기쁨으로 나아가는 자도 있다. 기독교 신앙을 한 사람들 중에도 누구는 죽음을 두려워하고 더 살기를 처절히 원하는 자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소천할 그날을 주 안에서 평안하게 기다리는 자도 있다. 그 차이는 어디에서 올까.
우리가 흔히 '지혜의 왕'으로 알고 있는 솔로몬 왕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아니 어쩌면 전 세계에서 그와 같이 부귀와 영화를 누린 자가 없을 것이다. 그의 아버지 다윗왕은 손에 피를 많이 묻힌 죄로 인해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 성전을 짓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힘들었던 어린 시절을 겪고 왕이 된 후에도 가슴 아픈 가정사를 겪으면서도 죽는 순간까지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천하를 호령하는 왕이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한없이 작은 자였다. 그는 자신에게 허락되지 않은 성전 짓기를 다음 대에 이루기 위해 성전을 짓는데 필요한 온갖 귀한 자재를 준비해 두었던 것이다. 이스라엘을 통틀어 최고의 왕, 믿음의 왕은 논란의 여지없이 다윗왕이다. 그의 아들 솔로몬은 다윗왕이 탄탄하게 다져놓은 기반 덕분에, 그리고 그 역시도 하나님을 향한 신실한 믿음으로 출발이 매우 좋았다. 그 복잡하고 힘이 드는 번제를 천 번이나 드리니 하나님도 감동하셔서 그에게 원하는 것을 물었고 그는 지혜를 달라하였는데, 하나님은 지혜뿐만 아니라 부와 명성도 함께 주셨다.
솔로몬 왕은 세계에서 제일가는 부와 지혜와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끝이 좋지 못하였다. 700명의 후궁과 300명의 첩을 얻었던 탓에 결국에는 이방여성들로 인해 이방신에게 절하고 하나님에게 등을 돌리게 되고 말았다. 그 죗값으로 솔로몬 아들 대에 이르러 이스라엘이 북-이스라엘, 남-유다로 분열하고 만다. 하나님이 솔로몬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시려 두 번이나 그에게 나타나셔서 회유하시지만 솔로몬은 끝끝내 회개하지 않는다. 그렇게 솔로몬은 젊어서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지혜가 가득한 상태에서 잠언서(Proverbs)를 썼고, 말년에는 전도서(Ecclesiastes)를 작성하였다. 전도서 12장에는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2)라는 말로 하나님의 뜻을 떠나 살았던 자신의 삶이 얼마나 허망한 것이었는지를 고백했다.
그에 반해 다윗의 인생회고록이라 할 수 있는 시편 23편에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시작하며, 비록 굴곡이 많았던 자신의 삶이었지만 하나님께서 동행하신 승리한 삶임을 잔잔히 고백하였다.
아버지는 죽음 앞에서 어떤 모습이셨는가.
말기암으로 치료를 할 수 없으며 호스피스의 케어를 바로 받게 된 아버지는, 첫 사흘 정도는 충격의 상태에 계셨던 것 같다. 하지만 어떤 손도 쓸 수 없으며, 그저 나빠지다가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을 직시하셨다. 그리고 가족들에게 말씀하셨다. 자신의 남은 시간 동안에 침울한 분위기는 원하지 않으니, 모두 밝게 웃으면서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누자고. 앞으로 우리의 인사는 두 팔을 올리고, '할렐루야!'라고 외치는 거라고 하시면서 몸소 잊지 않고 실천하셨다.
아버지는 '나 정도의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겠냐, 나 정말 천국 갈 수 있겠냐'와 같은 믿음 없는 질문을 하시지 않았다. 물론,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는 나 같은 죄인이 구원받고 천국 가는 것이 정말 말도 안 돼! 하지만 그런 죄인을 구하러 오신 예수님이 있잖아! 나는 정말 죄인이었고 죄 많은 삶을 살았어. 나는 예수님 아니면 아무런 방법이 없는 죄인이야.' 이런 회개의 고백이 나오는 사람이라면, 나는 그 사람의 구원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평생을 교회에서 보낸 장로나 권사라 하더라도 막상 자신의 죽음 앞에서는 두려워하기 일쑤다.
"목사님, 저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임종을 앞둔 장로가 했다는 질문이다.
아, 얼마나 믿음 없는 소리란 말인가. 그동안 교회에서, 신앙생활에서 무엇을 한 사람의 고백이란 말인가. 저런 질문에 목사님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 것인가. 시간이 있다면 빠른 속도로 기독교 기본 교리를 한번 훑고 진짜 회개하고 믿음에 이르게 되는 기적이 있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기독교 신앙이 처음부터 끝까지 회개와 믿음밖에 없는데, 믿음 없이는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이 무너져 내린다. 안타깝지만, 저런 말씀을 하시는 분들은, 진짜 믿음이 없으신 분들이다. 그런데 구원받을 수 있겠는가. 믿음이 없으니 불안한 것이다. 어쩌면 자신 내면 깊은 곳에서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구원받지 못하리란 것을.
아버지가 불과 작년에 '교회를 다니고 있으며 하나님 잘 믿고 있다, 너희 엄마도 교회 나오고 믿음 갖게 해달라고 기도도 하고 엄마에게 얘기도 좀 해다오'라고 고백과 부탁을 하셨더랬다. 사실 이런 확언을 듣기 전 나는 작년 2023년 한 해동안 다른 잡생각을 다 끊어내고 오직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레마(Rhema- 주시는 말씀)를 붙잡고 부모님의 구원을 위해 기도를 하고 있었었다. 그리고 이 기쁜 기도응답을 타우랑가한인교회 담임목사님과 나누었다.
아버지가 말기암 진단을 받은 이튿날, 담임목사님이 병원으로 방문을 와주셨다. 물론 아버지가 믿음을 갖게 되신 것은 아셨지만, 그래도 전도지를 갖고 오셔서 기독교 교리를 단 몇 분 안에 정리해 주시며 아버지가 진짜 예수 믿고 구원받는다는 것을 입으로 시인하게 하시고, 아버지 마음을 평안하게 해 주셨다.
아버지가 퇴원하여 집에서 호스피스 케어를 받기로 하고 기다리는 동안 나는 고민이 들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하지? 교회에는 어떤 기도를 부탁드려야 하나.
하나님, 우리 아버지 살려주세요. 병을 싹 다 낫게 해 주세요. 조금만 더 오래 살게 해 주세요.
아니면,
하나님, 우리 아버지를 구원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날까지, 이**성도, 저희 아빠가 믿음 안에서 주님의 평안을 누리다가 고통스럽지 않게 소천하도록 도와주세요.
고민하는 중에 또다시 왈칵 눈물이 났다. 나도 마음이 왔다 갔다 했다.
하나님이 능히 하지 못하실 일이 없어. 완치라는 기적을 만드실 수 있는 분이시지.
하지만 생각해야 했다. 주님의 뜻은 무엇인가요?
이미 너덜해지고 낡은 신체의 생명을 잠시 몇 년 더 연장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그것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있을까. 죽음의 시간표를 뒤로 미루는 것. 어차피 오게 되어있는 것을, 조금 더 미룬다고 더 좋은 걸까?
그때 이런 생각이 들어왔다.
주님, 다 아셨죠? 아니, 너무 당연하죠. 당연히 아시죠. 그런데 저는 몰랐어요. 새까맣게 몰랐어요.
우리 아빠 불쌍해요. 인생을 누려보지도 못했어요. 그래도 자신의 죄를 다 해결해주셨다는 것에 감격해했으니, 아빠는 성공한 인생인거죠? 아버지가 데려가실거잖아요. 헤어짐은 힘들어요. 아파하고 고통받는 것, 주님도 아시죠. 그건 좀 덜어주세요. 너무 아프지 않게 해 주세요.
주님, 감사해요. 아버지가 80 가까이 주님과 무관한 삶을 살다가, 말년에 마지막 4년 동안 이곳 뉴질랜드에서 복음을 제대로 듣게 하셨어요. 코로나로 국경이 봉쇄되기 직전에 뉴질랜드로 입국시키셔서, 저와 남편이 있는 여기 타우랑가 집에서 코로나 락다운 기간을 보내게 하셨고, 그 기간동안 주님의 은혜로 복음의 씨앗이 자라게 하셨어요. 주님, 아버지를 데려가셔도 될 시간이 되니 데려가시는 거죠? 준비되지 않은 채로 구원에서 낙오되지 않도록, 아버지 기다려주셨죠. 감사합니다. 이 모든 것을 계획하시고,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가정이 구원을 얻으리라'하신 언약을 지켜주셨어요. 신실하신 주님, 감사합니다. 영광 받으시옵소서. 주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크시고, 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시고, 살아계시며, 저희와 함께하시며, 저희를 이토록 사랑하십니다. 죄 많은 저희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사랑합니다. 저희가 사랑스럽지 않을 때 저희를 택하시고 사랑하신 하나님, 그 크신 사랑 넘치게 부어주시니 감사합니다.
아버지는 기도대로 흔들리지 않는 믿음 안에서 (약물의 도움으로) 큰 고통 없이 이 세상과 작별하셨습니다.
인사말로 '할렐루야!'를 외치며 환하게 웃으시던 아버지
한국에 있던 작은언니와 영상통화를 할 때 환하게 웃으시던 아버지
그 모습이 눈앞에 선해서,
아버지 돌아가신 지 두 달이 지난 지금도 가슴이 아려옵니다.
이미 낙원에서 평안과 기쁨을 누리고 계실 아버지를 상상합니다.
이곳에서 보다 더 환하게 웃고 계실 것만 같아...
아빠의 존재를 못느끼는 이곳이 좀 썰렁하지만, 아빠를 위해서는 행복합니다.
울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누구는 자신의 아버지가 떠올라 울었다고 합니다. 끝내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과 후회 같은 것이었겠죠.
죽음만큼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 인간은 모두가 죽습니다. 우리의 죄 때문에 그 죗값으로 다 죽는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니... 죄없는 인간이 없으므로 모든 인간은 죽습니다.
성경 66권을 통틀어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들려 올라간 단 두 명 에녹(Enoch)과 엘리야(Elijah)를 빼고는 모두 죽었습니다. 죄가 없으신 예수님은 우리의 죗값을 대신 치르시기 위해 죽임을 당하신 다음,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흠없는 양 산제사를 드리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가운데 죽은 자는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새 부활의 옷을 입게 됩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살아있다가 구원받는 사람 또한 썩지 않는, 영원히 사는 부활의 옷을 입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첫 열매이십니다. 우리의 큰 맏형. 우리가 이뤄 갈 본모습, prototype이 되십니다.
우리도 그렇게 성화를 이뤄가야 합니다. 우리가 달리 할 것은 없습니다. 그저 예수님 꼭 붙잡고 있는 것, 그것 하나뿐입니다. 복잡한 게 없어요. 그분의 말씀을 받아먹고, 그 양분으로 자라는 것 밖에 없어요. 그러면 죽어서도 살고, 사는 것도 영생으로 살게 됩니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비밀입니다. 그렇다면 죽음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됩니다. 죽은 후 영의 세계로 돌아가면, 두 가지의 길이 있을 뿐입니다.
고타르마 싯다르타는 죽음을 보고 충격을 받고 깨우침을 얻으려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예수를 알지 못했어요.
진시황은 불로초를 찾으며 영생을 꿈꿨습니다. 하지만 그는 예수를 알지 못했어요.
예수를 알지 못하면, 그저 어둠에 있을 뿐입니다.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아요.
빛이시고
길이시고
진리이신
예수님께 닿아야 죽음의 비밀을 풀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아시나요?
저는 이미 정답을 드렸습니다. 풀이과정은 어렵지 않아요. 성경에서 먼저 네 복음서를 읽어보세요.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을 읽어보세요.
오늘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전도로 끝마침을 합니다.
예수를 믿으시는 분도, 아직 안 믿는 분들도... 모두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하시길, 부어지시길 기도합니다.
예수님을 진짜로 믿으면
죽음 앞에 담대해집니다.
우리에겐 죽음 앞에 담대할 힘도 능력도 없어요.
그 능력은 예수님으로부터 옵니다.
죽고 나면 기회가 없어집니다. 기회가 있을 때 야무지게 현명하게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죽고 나서 후회해도 기회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렇다고 합니다.
다시 한번, 하나님의 은혜가 당신과 가정에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