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진짜 사랑은 너를 위해 울 수
있는 마음이다

대상 a와 함께하는 성숙한 사랑의 여정

by 홍종민


"나는 이제 누군가의 잉여 자리에서 나를 증명하는 사랑이 아니라, 내가 나로서 머물 수 있는 자리에서 사랑을 시작하고 싶다."


"왜 사랑을 말하는데, 환상과 정신분석 이야기가 필요할까?"


사랑이란 단순히 가슴 설레는 감정이나 운명적 끌림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할 때, 그 뒤에는 훨씬 복잡한 심리적 메커니즘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종종 우리는 상대를 전부 이해하고 소유하고 싶어 하면서도, 막상 실제 생활에서는

뜻대로 되지 않아 큰 좌절을 겪는다. **"이 사람이라면 내 결핍을 전부 채워 줄 거야"**라고 믿었는데,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역시 나를 만족시켜 줄 사람은 없어"**라고

극단적으로 실망해 버리기도 한다.

이처럼 사랑을 둘러싼 희열과 상실, 그리고 그 기이한 변화를 분석해 보면, 그 속에는 우리의 무의식적 욕망과 환상이 깊이 얽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정신분석학은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드는 학문 분야다. 사랑이 왜 그렇게 황홀하면서도 고통스러운지, 왜

사랑에서 오는 상처가 우리를 성숙하게 만들 수 있는지, 그 심리적 과정을 보다 명료하게 설명해 준다.


사랑과 환상의 교차로, 그 아릿한 지점


우리는 대개 사랑을 환상으로부터 시작한다. 상대에게 환상적인 기대를 걸며, **"이

사람과 함께라면 모든 것이 해결될지도 몰라"**라고 무의식적으로 믿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현실이 깨어날 때, 그 환상은 깨지고 고통이 찾아온다.

애초에 완벽한 구원자는 존재하지 않기에, **"대체 왜 이렇게 힘들고 실망스러운

걸까?"**라는 질문과 함께, 우리는 스스로를 자책하거나 상대를 원망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글은 바로 그 환상이 깨어지는 과정에 주목한다. 환상은 헛된 착각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인간 심리의 핵심적 장치다. 결핍을 안은 우리가 어떻게 상대를 이상화하고, 또 그 이상화가 무너질 때 무엇을 느끼는지를 살피다 보면, 비로소 **"사랑이

주는 환희와 상처"**를 좀 더 주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권택영 교수가 말하는 진정한 사랑의 의미


권택영 교수의 《라캥, 장자, 태극기》에는 이런 문장이 실려 있다.


"사랑이란 나를 지키려는 두려움이 아니다. 진짜 사랑은 너를 위해 울 수 있는 마음이다."


사람들은 사랑을 통해 안정과 확신을 얻고자 하지만, 사랑은 결코 소유하거나 독점하는 감정이 아니라고 교수는 덧붙인다. 사랑을 잃을까 두려워 움켜쥐는 순간, 그것은 이미 사랑이 아니라 불안이 된다.

사랑은 우리를 안전한 곳에 가두는 감옥이 아니라, 불확실함 속에서도 서로를 바라보며 함께 걸어가는 과정이다. 삶에서 소중한 것들은 언제나 변하고 흘러간다. 깊은 사랑 또한 언젠가 잃을 수 있다는 사실 앞에서 가슴 아파할 준비가 되어 있을 때 비로소 우리에게 다가온다.

우리는 언젠가 이별할 것을 알면서도 사랑한다. 그리고 그 사실이 사랑을 더욱 소중하게 만든다.

이 문장에 숨은 핵심어 하나가 있다. 라캉이 말한 '대상 a(petit a)'―쉽게 말해 아무리 채워도 또 생각나는 **'허전한 구멍'**이다.


대상 a: 말랑카우 봉지 속 마지막 사탕


어릴 적 말랑카우(또는 추억의 캔디)를 먹다 마지막 한 알이 사라지면, 우리는 "딱 하나만 더 있었으면!" 하고 아쉬워한다. 그런데 막상 새 봉지를 뜯어도 금세 다시 허기를 느낀다. 대상 a는 바로 이 **"끝없이 더"**를 부르는 빈칸이다.


'a'는 왜 알파벳 첫 글자일까?


프랑스 정신분석가 라캉은 **'타자(autre)'**의 프랑스어 첫 글자 a를 빌려 왔다. 타자의 세계에서 온 결핍이라는 뜻이다.


일상에서 만나는 대상 a


스마트폰 알림: 모든 메시지를 확인해도 "혹시 또?" 하며 잠금 화면을 켜 보게 만드는 충동.

넷플릭스 다음 화: 시즌을 끝까지 달려도 "보너스 에피소드 없을까?"를 검색하게 하는 마음.

첫사랑의 향기: 비슷한 향수를 뿌려 봐도, 그때 그 느낌은 돌아오지 않는 아련함.

대상 a는 **'없으면 큰일'**이지만, 막상 손에 넣어도 만족을 보증하지 않는다. 이 모순이 욕망의 엔진을 돌린다.


사랑과 대상 a: 가까워질수록 멀어지는 '고무줄 효과'


연애 초기에 **"네가 전부야!"**라며 24시간 메시지를 주고받던 커플을 떠올려 보자. 서로가 무척 가까워졌는데도 마음속 허기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왜일까?

라캉식으로 보면, 상대라는 구체적 사람 뒤편에서 '대상 a'—즉 채워지지 않는 빈칸—이 계속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은 대략 이렇게 흘러간다.


상대가 곧바로 답장을 보내지 않을 때


머릿속에 번개처럼 "혹시 마음이 식은 건 아닐까?" 하는 불안이 충돌한다.


빈칸이 '퍽' 하고 커지면서, 대상 a가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 허전함을 달래려고 휴대폰 화면을 반복적으로 확인하거나 **"왜 답이 없어?"**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답장이 도착하는 순간

긴장이 순간적으로 풀리며 **"살았다"**는 안도감이 퍼진다.


빈칸은 잠시 줄어든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구조 자체가 변하지 않는다.


잠깐의 안도 뒤

"이번엔 또 언제 답장이 늦어질까?" 같은 생각이 다시 고개를 든다.


빈칸은 곧바로 새로운 형태로 되살아나고, 원하는 '완전한 충족'은 오지 않는다.


이처럼 대상 a는 **'가까워질수록 더 멀어지는 고무줄'**처럼 욕망을 당겼다가 놓아 버리곤 한다. 잡았다 싶으면 손아귀를 빠져나가고, 놓치면 다시 잡고 싶어지는 딜레마가 계속되는 것이다.

결국 문제는 '답장이 오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답장이 채워 주리라 믿었던 빈칸 자체가 본래 채워질 수 없는 구조라는 점에 있다.


장자의 무위와 '흐르는 사랑'


중국 고전 《장자》에선 **무위(無爲)**를 게으른 방임이 아니라 **"흐름에 스스로를 맞기는 자유(逍遙遊)"**라 설명한다.

강물은 움켜쥘 수 없다. 손으로 건져 올리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지만, 몸을 띄우면 강이 나를 실어 나른다.

사랑도 이와 같다. 상대를 '붙잡아야' 안심될 것 같지만, 실제로는 붙잡을수록 불안이

커진다. 무위적 사랑은 상대를 통제하지 않고, 각자 고유한 리듬으로 흐르도록 공간을 내어준다.

구멍(대상 a)을 억지로 메우지 않고도, 빈칸과 함께 흘러가는 법을 배우는 것―그게

성숙한 사랑이다.


임상에서 본 '대상 a의 그림자'


실제 상담실에서 자주 만나는 사례를 하나 보자.


사례 C(32세 여성)

"연인이 SNS에 '좋아요'를 누르지 않으면 하루 종일 초조해요. 결국 제가 직접 '좋아요 눌렀냐'고 물어보게 되죠."

분석 결과, C의 마음속 대상 a는 **'확인받고 싶은 마음'**이었다. '좋아요'는 구멍을

순간적으로 막아 주지만 오래가지 않는다. C가 빈칸의 정체를 이해하자, 연인을 괴롭히는 메시지는 절반 이하로 줄었다.

대상 a를 타자에게서 떼어낼 때, 집착은 서서히 식어간다.


애도: 슬퍼할 권리를 통해 빈칸과 친해지다

프로이트는 『애도와 멜랑콜리』에서 **"상실은 제대로 슬퍼해야 넘어설 수 있다"**고 했다. 빈칸을 인정하지 않으면 멜랑콜리(병적 우울)로 이어지지만, 울고 나면 빈칸은

더 이상 무서운 구멍이 아니다.


울 수 있는 용기: 눈물을 참지 않는다.

추억 정리: 사진·편지를 바라보며 **"이제 다른 모양으로 기억 속에 남을 거야"**라고 말해 준다.

새로운 서사: **"없어도 나는 살아간다"**는 이야기를 스스로에게 들려준다.

빈칸 자체는 사라지지 않지만, 우리는 이제 그 구멍을 두려움이 아닌 창조성의 여백으로 느끼게 된다.


일상에서 실천하는 '빈칸과 친구 되기'


감정 레이블링: "지금 허전해", **"지금 질투 나"**라고 속으로 또박또박 말한다. 이름을 붙이면 빈칸이 선명해져 다루기 쉬워진다.


알림 끊기 연습: 하루 한 시간씩 휴대폰을 비행기 모드로 두고, 불안이 출렁이는 순간을 관찰한다.


작별 의례: 만남 뒤 "우리 다음에 또" 대신 **"오늘 즐거웠어, 다음은 그때 가서 정하자"**라고 선언한다. 상실 내성이 조금씩 단단해진다.

'흐름' 명상: 강이나 분수대 물소리를 들으며 **"붙잡지 않아도 괜찮아"**를 반복한다.

서사 쓰기: 빈칸 덕분에 시도했던 일, 배운 경험을 글로 적어 본다. 구멍이 의미로 변한다.


빈칸을 품을 때 사랑이 더 깊어진다


돌이켜 보면, 대상 a는 결함이 아니라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동력이다. 손에 넣은 즉시 완전히 충족되는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빈칸이 만들어 내는 갈증이 우리를 탐색하고 성장하게 만든다.

권택영 교수의 문장으로 돌아가 보자.

"사랑이란 나를 지키려는 두려움이 아니다. 진짜 사랑은 너를 위해 울 수 있는 마음이다."

울 수 있다는 것은, 언젠가 잃을 수도 있음을 받아들이는 용기다. 빈칸을 껴안고도 흐름 속에 몸을 맡길 때―사랑은 감옥이 아니라 광활한 강이 되어 우리를 더 넓은 세계로

실어 나른다.

이제 고무줄을 조금 느슨히 놓아 보자. 구멍이 있어도, 아니 구멍 덕분에, 사랑은 더 깊고 자유롭게 흐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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