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캉으로 읽는 남녀의 엇갈린 욕망: 프롤로그

운명의 지도와 마음의 지도, 두 세계를 넘나드는 통찰

by 홍종민

"또 심리학 책이야?"

친구가 내 책상 위에 쌓인 책들을 보며 한숨을 쉰다. MBTI, 애착이론, 인지행동치료...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눈에 띄는 대로 사들인 책들이다.

"이번엔 진짜 답을 찾을 것 같아서..."

하지만 친구의 표정이 씁쓸하다. 나도 안다. 아무리 읽어도 여전히 관계는 힘들고, 여전히 나를 설명하기엔 뭔가 부족하다는 걸.

"너도 알잖아. MBTI로 나를 INFJ라고 규정해봤자, 왜 매번 연애에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지는 설명이 안 돼. 애착이론으로 내가 불안형이라는 걸 알아도, 왜 자꾸 상대방에게 '날 정말 사랑해?'라고 백 번씩 묻는지는 여전히 모르겠어."

친구의 말이 맞다. 우리는 답을 찾고 있지만, 정작 찾는 건 더 많은 질문뿐이다.

왜 라캉인가?


오늘날 심리학은 대중문화가 되었다. 온라인 서점 베스트셀러 코너만 봐도 심리학 서적들이 한가득이다. 유튜브를 켜면 '심리학 박사', '마음 분석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내세운 수많은 채널이 쏟아진다. 사람들은 이제 스트레스가 쌓이면 운동이나 음악이 아닌 심리학 콘텐츠를 찾는다. 나를 더 알고 싶어서, 사람들과 덜 부딪히고 싶어서, 내 마음이 왜 이리 복잡한지 풀어보고 싶어서 심리학을 공부한다.

가장 인기 있는 심리학은 MBTI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자신의 유형을 알아보고, 그걸로 자신을 설명하려 한다. "나는 INFJ니까", "나는 ESTP니까" - 마치 나를 이해하는 열쇠를 찾은 듯하다. 또 애착이론도 유행이다. 나는 불안형일까? 회피형일까? 안정형일까? 내 연애가 왜 이렇게 힘든지, 관계가 왜 이렇게 엇갈리는지 설명을 찾는다.

하지만 MBTI나 애착이론을 아무리 알아도 왜 여전히 관계는 힘든 걸까? 왜 여전히 나를 설명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걸까?

행동을 바꾸라고 말하는 인지행동치료도 있다. 생각과 행동을 고치면 삶이 달라질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생각을 바꾸려 해도, 행동을 고치려 해도, 어느 순간 다시 돌아가 버리는 나를 보면 좌절감이 밀려온다.

'왜 나는 또 이러지?' '왜 고쳐지지 않지?'

감정코칭도 해보고, 자존감 높이기 훈련도 해본다. 하지만 내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는 허전함은 여전히 설명되지 않는다. 문제는 이렇게 열심히 심리학을 찾아도 결국 나의 진짜 자리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나는 이렇고, 왜 저 사람은 저런지. 왜 우리는 이렇게 엇갈리고, 왜 이렇게 자꾸 부딪히는지.

이 모든 것을 풀어줄 하나의 지도가 있을까?

그 지도가 바로 라캉이다


자크 라캉(Jacques Lacan).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정신분석가. 프로이트 이후 가장 논쟁적인 인물. 단순한 정신분석 학자가 아니라, 프로이트가 시작한 정신분석을 언어와 구조의 관점에서 다시 풀어낸 해석자이자 혁명가다. 그래서 어떤 이는 그를 "프로이트의 재해석자"라고 부르고, 또 어떤 이는 "프로이트보다 더 난해한 철학자"라고도 말한다.


라캉은 정신분석을 기술이나 처방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말한다.

"병을 고치려 하지 말고, 네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보라." "그 자리를 읽어내는 게 진짜 치료다."


라캉에게 중요한 건 증상을 없애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 왜 그렇게 말하고, 그렇게 행동하고, 그렇게 고통받는지 그 구조를 읽어내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라캉이야말로 정신분석학파들의 정답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은 정답이 아니라, 구조를 보는 시선을 보여주려 한다. 왜냐하면 라캉처럼 인간의 마음을 구조로 읽어내는 방식은 다른 심리학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라캉은 인간의 심리를 세 개의 지도로 설명했다.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 그리고 우리는 모두 이 세 가지 차원을 오가며 살아간다. 이 책은 그 지도 위에 당신의 일상을 올려두고, 히스테리형, 강박형, 불안형이라는 세 가지 심리의 얼굴로 다시 읽어보려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흔히 이런 질문으로 스스로를 몰아세우기 때문이다: "나는 왜 이렇게 예민할까?" "나는 왜 이렇게 불편할까?" "나는 왜 자꾸만 망설일까?"

하지만 라캉은 말한다. 그건 네 잘못이 아니라고. 그건 누구나 빠질 수밖에 없는 심리적 구조의 문제라고. 히스테리형처럼 질문을 멈추지 않거나, 강박형처럼 끝까지 매달리거나, 불안형처럼 시작조차 하지 못하는 건 모두 인간이 가진 공통된 심리의 틀일 뿐이라고.

그걸 알게 되면 우리는 스스로를 덜 탓하게 된다. "아,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이게 내 성격이 아니라 구조였구나." 그렇게 이해하기 시작하면 갈등이 풀리고, 관계가 다르게 보이고, 삶이 조금은 가벼워진다. 그게 이 책이 하고 싶은 일이다.

프로이트를 계승하고 뒤집은 정신분석의 혁명가


오늘날 대부분의 심리학은 프로이트에서 출발했다. 심리학을 조금이라도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그 이름, 지그문트 프로이트. 그는 인간의 마음속에는 의식보다 더 큰 무의식이 있다고 말했다. 사람은 자기 생각과 의지로만 움직이는 게 아니며, 말로 다 설명되지 않는 욕망과 충동, 억압된 기억이 사람을 움직인다고 했다. 프로이트는 이 무의식을 처음으로 학문적으로 다룬 사람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그를 정신분석의 창시자라 부른다.

하지만 프로이트의 이론은 시간이 흐를수록 비판을 받았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성적 욕망, 억압된 기억 같은 개념들이 너무 고전적이거나, 너무 남성 중심적이거나, 현대 심리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그래서 많은 심리학자들이 프로이트를 지나간 역사로 취급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기서 멈추지 않고 프로이트를 다시 꺼내 들고 새롭게 해석한 사람이 바로 라캉이다.

라캉은 프로이트를 그대로 따르지 않았다. 그는 "프로이트를 읽되, 프로이트보다 더 프로이트적으로 읽어야 한다"고 선언했다. 라캉이 보기에 사람들이 프로이트를 오해하고, 단순한 치료 매뉴얼처럼 소비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프로이트가 진짜 말하고 싶었던 무의식의 구조를 다시 풀어내기 시작했다.


라캉은 무의식을 단순한 본능이나 억압된 기억이 아니라 언어의 구조라고 보았다. 무의식은 말로 표현되지 않는 게 아니라, 오히려 말로 만들어진 구조 안에 숨어 있다고 말이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언어의 세계에 갇힌다. 이름이 붙고, 말이 주어지고, 규칙이 주어진다. 그렇게 언어는 나를 설명하고, 나를 규정하며, 나를 제한한다. 그리고 그 언어가 만들지 못한 빈자리, 말로 다 닿지 않는 욕망의 자리가 바로 무의식이다.

이렇게 라캉은 프로이트가 말한 무의식을 언어와 구조의 시선으로 재해석했다. 그는 사람의 마음을 단순한 심리 상태가 아니라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라는 세 개의 차원으로 풀어냈다. 이 세 개의 차원이 바로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심리적 지도이자, 무의식이 작동하는 구조라는 것이다.

이 구조는 인간이 말하는 방식, 사랑하는 방식, 상처받는 방식, 욕망하는 방식을 모두 지배한다. 그래서 라캉은 병을 고치는 기술보다, 그 구조를 읽어내는 힘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라캉은 단순히 프로이트를 계승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프로이트를 다시 열고, 다시 해석하고, 다시 전복시킨 사람이다. 그래서 라캉은 프로이트 이후 가장 영향력 있고, 가장 논쟁적인 정신분석가가 되었다. 사람들은 그를 두고 "프로이트보다 더 난해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난해함을 뚫고 나면, 우리는 전혀 다른 시선으로 인간을 보게 된다.

그는 병을 치료하는 대신 구조를 읽으라고 했다

심리학은 대체로 '치료'라는 말을 좋아한다. 고통을 줄이고, 불안을 없애고, 괴로움을 덜어주는 것. 그래서 많은 심리학이 '해결법'을 제시한다. 당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진단하고, 그걸 없애는 기술을 알려준다. 생각을 바꾸세요. 감정을 조절하세요. 행동을 바꾸세요. 상처를 치유하세요. 그렇게 하면 더 행복해질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왜 우리는 그렇게 바꾸려 해도 또 제자리로 돌아오는 걸까? 왜 잠깐은 나아진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 다시 무너지는 걸까? 라캉은 바로 그 지점에서 질문을 던졌다.

"문제를 없애는 게 진짜 해결일까? 증상이 사라지면 정말 괜찮아진 걸까?"

라캉은 그 대답이 '아니오'라고 말했다. 그는 병을 없애는 게 아니라 병이 왜 생기는지 읽어야 한다고 했다.

"병은 없앨 수 있는 게 아니다. 병은 네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보여주는 신호다."

라캉이 말한 '치료'는 병을 제거하는 작업이 아니라, 나를 읽어내는 작업이다.

예를 들어보자. 누군가는 일만 하면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린다. 일을 미룰 때보다 차라리 밤을 새워서라도 다 끝내야 마음이 놓인다. 이걸 많은 심리학은 '완벽주의'라는 말로 진단하고, 그 완벽주의를 고치라고 말한다.

하지만 라캉은 이렇게 묻는다. "왜 너는 그렇게까지 끝장을 봐야만 하는 걸까?" "왜 너는 그렇게까지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걸까?" "그 강박 뒤에 숨겨진 네 진짜 욕망은 무엇일까?"

라캉에게 중요한 건 그 행동 자체를 없애는 게 아니라, 그 행동이 어떤 심리적 구조 위에서 반복되고 있는지 읽어내는 것이다. 그는 증상을 해석의 열쇠로 삼았다.

"증상은 사라져야 할 게 아니다. 증상은 네 무의식이 보내는 말이다."

그래서 라캉은 병을 없애지 않는다. 오히려 병을 들어준다. 왜 이렇게 말하게 됐는지, 왜 이렇게 행동하게 됐는지, 왜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지, 그걸 말하게 하고, 읽어내게 하고, 듣게 한다.

그리고 그 읽기의 도구가 바로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라는 구조다. 그 구조 위에 히스테리형, 강박형, 불안형이라는 심리의 얼굴이 올라온다.

라캉은 "너를 바꾸려 하지 말라"고 말한다. "네가 누구인지, 어디에 서 있는지, 너의 구조를 읽어내라." 그것이 진짜 시작이다.

히스테리·강박·불안을 풀어내는 라캉식 진단의 힘

라캉은 사람의 심리를 하나하나 따로 떼어 보지 않았다. 사람의 행동, 말, 감정, 사고는 모두 구조의 패턴을 따라 움직인다고 보았다. 그 구조의 이름이 바로 히스테리형, 강박형, 불안형이다. 라캉은 이 세 가지를 단순한 성격이나 기질이 아니라 신경증의 하위구조라고 보았다.


신경증이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삶의 불편함, 마음의 꼬임을 가리키는 말이다. 정신병이나 심각한 장애가 아니라, 지극히 일상적인 불안, 갈등, 고통의 뿌리가 바로 신경증이다. 라캉은 모든 사람이 이 신경증의 구조 안에서 살아간다고 보았다. 그 신경증이 히스테리형, 강박형, 불안형이라는 세 가지 얼굴로 나타날 뿐이다.

흔히 우리는 '히스테리'라는 말을 감정적으로 흥분하거나 소리 지르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로 오해한다. 하지만 라캉에게 히스테리는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히스테리형은 끝없이 질문을 던지는 구조다. "나는 네게 어떤 존재야?" "정말 나를 사랑해?" "넌 왜 그렇게 말해?"

이렇게 끊임없이 묻는 사람. 하지만 그 질문에 답이 돌아와도 그들은 또 묻는다. 왜냐하면 답을 듣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질문을 이어가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질문이 끊기면 관계가 끝날까 봐 두렵기 때문에, 그들은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 이것이 히스테리형이다.


강박형은 히스테리형과는 정반대처럼 보인다. 이들은 질문 대신 확실한 결과를 원한다. "이건 확실히 끝났어." "이건 제대로 마무리됐어." "이건 실수 없이 완벽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때까지 매달린다. 일도, 관계도, 말도, 행동도 끝장을 봐야 마음이 놓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아무리 끝까지 가도 마음은 놓이지 않는다. 그래서 또 다시 확인하고, 또 다시 점검하고, 또 다시 시작한다. 강박형은 끝장을 봐야 안심이 되지만, 끝장에 도달해도 다시 불안해지는 무한 반복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불안형은 히스테리형이나 강박형처럼 질문을 던지지도 못하고, 끝장을 보지도 못하는 사람이다. 이들은 차라리 아예 시작하지 않는 쪽을 선택한다. 왜냐하면 시작하면 실패할 것 같고, 시작하면 끝까지 가야 할 것 같고, 시작하면 다 무너질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안형은 계속 머뭇거리고, 미루고, 멈춘다. "차라리 시작하지 않는 게 낫지." 이 말이 그들의 전략이다.

라캉은 이 세 가지를 심리적 '병'이 아니라 구조라고 말했다. 누구나 이 구조를 따라 살아간다. 누구나 질문하고, 매달리고, 머뭇거린다. 다만 사람마다 더 자주 드러나는 얼굴이 다를 뿐이다.

그리고 라캉은 이 구조를 단순히 학문적으로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이 구조가 사람의 말, 행동, 관계, 일상 전부를 지배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이 구조를 읽어내는 것이야말로 사람을 이해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가 된다고 말한다.


이 책이 그 구조로 당신의 일상을 다시 읽어주려는 이유


누구나 마음이 복잡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

나는 왜 이렇게 예민할까? 나는 왜 자꾸 사람들 눈치를 볼까? 나는 왜 끝까지 하지 않으면 안심이 안 될까? 나는 왜 시작도 못 하고 머뭇거리기만 할까?

이런 고민은 누구나 하지만, 대개는 성격 탓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나는 좀 유난스러워. 나는 게을러서 그래. 나는 마음이 약해서 그래.


그렇게 스스로를 탓한다.

하지만 이 책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건 네 성격이 아니라 구조라고 말한다. 너만 그런 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그런 구조를 따라 살아간다고 말한다.

이 책은 바로 그 구조를 당신의 일상에서 보여주려 한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 우리가 일상에서 부딪히는 갈등, 우리가 반복하는 불편함, 그 모든 장면을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라는 지도 위에 펼쳐 보여주려 한다. 그리고 그 지도 위에 히스테리형, 강박형, 불안형이라는 심리의 얼굴을 하나씩 올려 놓으려 한다.

누구는 끝없이 묻고, 누구는 끝까지 매달리고, 누구는 시작조차 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건 누구나 품고 살아가는 신경증의 하위구조일 뿐이다.

이 책은 당신이 그 구조를 나의 것으로 이해하길 바란다. 내가 왜 이렇게 말하고, 왜 이렇게 행동하고, 왜 이렇게 살아가는지 그 흐름을 스스로 읽어낼 수 있도록 돕고 싶다.

구조를 아는 순간, 모든 것이 달라진다

32살 김과장이 회의실에서 또 손을 들었다.

"죄송한데요, 다시 한 번 확인하면..."

동료들의 한숨 소리가 들린다. 김과장도 안다. 자신이 너무 꼼꼼하다는 걸, 때로는 지나치다는 걸. 하지만 확인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다. 집에 가서도 '내가 놓친 게 있을까?' 생각하느라 잠을 못 잔다.

그런데 어느 날, 라캉의 강박 구조를 알게 되었다. '아, 이게 내 성격이 아니라 구조였구나. 나만 이런 게 아니라 강박형이라는 구조를 가진 사람들은 다 이렇구나.' 그 순간 뭔가 달라졌다. 여전히 확인하고 싶지만, 이제는 그 욕구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아, 지금 내 강박이 작동하고 있구나.' 그렇게 한 발 물러서서 자신을 볼 수 있게 되었다.

28살 이대리는 연애할 때마다 똑같은 패턴을 반복한다.

"넌 날 정말 사랑해?"

백 번을 물어도 불안하다. 상대가 "당연하지"라고 대답해도 믿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또 묻는다. 다른 방식으로, 다른 상황에서. 상대가 지쳐서 "너 왜 자꾸 그래?"라고 하면 '역시 날 사랑하지 않는구나'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결국 상대가 떠난다.

히스테리 구조를 알고 나서야 깨달았다. 자신이 원하는 건 답이 아니라 계속 묻는 것 자체였다는 걸. 질문이 이어지는 한 관계가 유지된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제는 그 패턴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다. '아, 내가 또 질문으로 관계를 확인하려 하는구나.' 그 자각이 시작이었다.

30살 박대리는 늘 시작이 어렵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으면 계획만 세우다가 시간이 다 간다. 시작하면 실패할 것 같고,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으면 불안하다. 그래서 계속 미룬다. 마감일이 닥쳐서야 부랴부랴 시작하고, 결과는 늘 아쉽다. 그리고 자책한다. '난 왜 이렇게 게으를까?'

불안형 구조를 이해하고 나서 알았다. 게으른 게 아니라 두려운 것이었다는 걸. 시작의 두려움이 미루기로 나타났던 것이다. 이제는 그 두려움을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시작이 무서운 거구나. 그래도 불완전하게라도 시작해보자.' 그 작은 변화가 큰 차이를 만들었다.

우리는 모두 같은 구조를 살아간다. 그 구조를 아는 순간, 갈등은 조금 덜 억울해지고, 관계는 조금 덜 답답해지고, 삶은 조금 덜 무거워진다.

"아,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이게 내 성격이 아니라 구조였구나." "다른 사람들도 이런 구조 속에서 살아가는구나."

그렇게 이해하기 시작하면 뭔가 달라진다. 자신을 탓하는 대신 이해하게 되고, 남을 비난하는 대신 공감하게 된다.


라캉은 말한다.

"너를 바꾸려 하지 말라. 네가 누구인지, 어디에 서 있는지, 너의 구조를 읽어내라."

그것이 진짜 시작이다.

이제 우리는 그 구조의 세계로 함께 들어가려 한다. 상상계에서 온 남자와 상징계에서 온 여자, 그리고 누구나 마주하는 불안의 자리까지, 당신의 일상과 마음을 새롭게 읽어보는 여행을 시작해보자.

이 여행이 끝날 때쯤, 당신은 자신과 타인을 보는 완전히 새로운 눈을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