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당신만 이상한 게 아니다: 우리 모두 신경증자다

by 홍종민

우리는 왜 매일 불편할까?


"문제는 나만 그런 게 아니다"


누구나 조금씩 가지고 있는 신경증


15년간 상담을 하면서 수천 명의 내담자를 만났다. 대면 상담, 전화 상담, 온라인 상담 등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들을 만나왔지만, 놀랍게도 그들의 고민은 몇 가지 패턴으로 수렴된다. 마치 서로 다른 강물이 결국 같은 바다로 흘러가듯이.

그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두 개의 렌즈를 번갈아 끼고 바라본다. 하나는 정신분석의 렌즈, 또 하나는 사주명리의 렌즈다. 처음엔 이 두 가지가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 의구심도 들었다. 서양의 무의식 탐구와 동양의 운명 해석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놀라운 일치점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라캉이 말하는 신경증의 구조와 사주의 십성(十星)이 그리는 인간 심리의 지도가 묘하게 겹쳐지는 것이었다.

상담을 하다 보면 사람들이 가진 고민의 무게를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목소리의 떨림, 침묵의 길이, 한숨의 깊이까지도. 특히 처음 상담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긴장한다. 무슨 말부터 꺼낼지 망설이고,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을 어려워한다. 그럴 때면 나는 차를 권한다. 따뜻한 차 한 잔이 긴장을 풀어주는 마법 같은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

"나만 이상한 걸까?" - 우리 모두가 품고 있는 신경증의 세 얼굴

어느 목요일 오후였다.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었는데, 30대 여성 K씨와의 온라인 상담이 시작되었다. 화면 너머로 보이는 그녀의 표정은 지쳐 보였다. 그녀는 상담을 시작하기도 전에 한숨부터 내쉬었다.

"선생님, 저는 왜 이렇게 매일 불안할까요? 남들은 다 괜찮아 보이는데 저만 이상한 것 같아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떨리는 목소리, 초점 없는 눈빛, 불안하게 움직이는 손끝. 모든 것이 그녀의 마음 상태를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차분히 그녀의 생년월일시를 받아 사주를 펼쳐보았다. 예상대로였다. 상관(傷官)이 가득했다. 년주에도, 월주에도, 일주에도 상관이 보였다. 표현하고 싶은 욕구는 넘치는데 정작 그것을 받아줄 그릇이 부족한 구조였다. 마치 큰 강물이 좁은 수로를 통과하려다 범람하는 것처럼, 그녀의 감정은 늘 넘쳐흘렀다.

"어제도 남자친구한테 똑같은 질문을 열 번은 했어요. '나 사랑해? 정말이야? 내가 없으면 어떻게 될 것 같아?' 저도 제가 한심해요. 왜 이렇게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지... 남자친구는 처음엔 다정하게 대답해주다가 요즘은 짜증을 내요. '또야? 아까도 말했잖아'라면서요."

K씨는 말을 하다가 목이 메었다. 화면으로도 그녀의 눈가가 촉촉해지는 게 보였다. 나는 잠시 기다렸다. 온라인 상담의 정적은 대면 상담과는 또 다른 무게를 가진다. 각자의 공간에서 느끼는 고독이 그 침묵을 더 깊게 만든다.

"어릴 때부터 그랬어요. 엄마한테도 '나 예뻐? 나 착해?' 하루에도 수십 번 물었대요. 친구들한테도 '우리 친하지? 나 좋아하지?' 계속 확인했고요. 그러다 보니 오히려 관계가 멀어지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부담스러워하는 게 느껴져요. 제가 물으면 물을수록 더 멀어지는 것 같은데, 그래도 안 물으면 더 불안해요."

그녀는 휴지를 꺼내 눈물을 닦으며 말을 이어갔다.

"가장 힘든 건 제가 이런 걸 알면서도 못 고친다는 거예요. '오늘은 안 물어봐야지' 다짐하는데, 어느새 또 '나 사랑해?'라고 묻고 있어요. 그리고 남자친구가 짜증내면 '역시 날 사랑하지 않는구나' 싶어서 더 물어보게 돼요. 악순환이에요."

"그 질문을 할 때 정말로 원하는 답이 뭔가요?"

내 질문에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화면 속에서 그녀가 깊은 숨을 들이쉬는 게 보였다. 손가락으로 화면 밖 어딘가를 만지작거리며 답을 찾는 듯했다.

"사실... 답은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냥 계속 묻고 싶어요. 질문을 멈추면 뭔가 끝날 것 같아서요. 관계가 끝날 것 같고, 사랑이 식을 것 같고... 제가 버려질 것 같아요."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마지막 말은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다. '버려질 것 같다'는 말에 담긴 두려움이 화면을 통해서도 전해졌다.

바로 이것이다. 라캉이 말하는 히스테리적 구조의 핵심이 여기 있다. 끊임없이 타자에게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으려는 욕망, 하지만 결코 만족할 수 없는 그 갈증. 히스테리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아니라 "나는 너에게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살아간다. 타자의 욕망 속에서만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사주의 상관이 과다한 사람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패턴이기도 하다. 상관은 표현하고 드러내고 싶은 에너지인데, 그것이 과하면 끊임없이 자신을 확인받으려 한다. 마치 무대 위의 배우가 관객의 박수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고 믿는 것처럼.

"그런데 선생님, 저만 이런 건가요? 다른 사람들은 안 그런 것 같은데..."

K씨의 질문에 나는 미소를 지었다. 이 질문을 얼마나 많이 들었던가.

"아니에요. K씨만 그런 게 아니에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 모두 비슷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단지 표현 방식이 다를 뿐이죠."

그런데 놀라운 건, 이런 사람이 K씨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상담을 하다 보면 비슷한 패턴을 가진 사람들을 수없이 만나게 된다. 그 다음 날 만난 40대 남성 L씨는 정반대의 고민을 안고 있었다. 그는 깔끔한 정장 차림으로 화면에 나타났고, 정확한 시간에 접속했다. 배경도 깔끔하게 정리된 서재였다.

"저는 질문하지 않아요. 대신 혼자 답을 만들죠. 그런데 그 답이 늘 확실하지 않아서 또 확인하고, 또 확인합니다. 어제도 현관문을 잠갔는지 기억이 안 나서 세 번이나 돌아갔어요. 가스 밸브도 마찬가지고요. 분명 확인했는데도 불안해서 또 확인하게 돼요."

L씨의 목소리에는 피로감이 묻어났다. 그는 자신의 행동이 비합리적이라는 걸 알면서도 멈출 수 없다고 했다. 화면 속 그의 표정은 굳어 있었고, 말하는 내내 이마를 찌푸리고 있었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예요. 보고서를 작성하면 열 번은 다시 읽어요. 오탈자가 있을까 봐, 논리가 맞지 않을까 봐. 이메일 하나 보내는 데도 30분씩 걸려요. 보내고 나서도 다시 열어보고... 정말 피곤해요. 제 부하직원들도 저 때문에 힘들어해요. 한 번 결재한 서류도 다시 가져와서 확인하니까요."

L씨는 말을 하면서도 자신의 넥타이를 계속 만지작거렸다. 똑바로 매어져 있는데도 자꾸 고쳐 매는 모습이 그의 강박적 성향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아내도 불평해요. 외출할 때마다 문단속 확인하느라 30분씩 걸리고, 여행 갈 때는 짐 싸는 데만 일주일이 걸려요. 뭘 빠뜨릴까 봐 리스트를 만들고 또 만들고... 아내는 그냥 가자고 하는데, 저는 못 참겠더라고요. 혹시 뭔가 놓치면 어떡해요?"

L씨의 사주에는 비겁(比劫)이 넘쳐났다. 비견과 겁재가 세 개씩이나 있었다. 자아가 너무 강해서 오히려 스스로를 가두는 구조였다. 라캉의 표현을 빌리면 강박적 구조다. 완벽을 추구하지만 완벽은 없고, 그래서 끝없이 반복하는 시지프스의 신화 같은 삶.

강박증은 "충분히 했는가?"라는 질문에 갇혀 있다. 아무리 확인해도 충분하지 않고, 아무리 완벽하게 해도 빈틈이 보인다. 그래서 다시 시작하고, 또 다시 확인한다. 이것은 단순한 꼼꼼함과는 다르다. 꼼꼼함은 한 번 확인하면 안심하지만, 강박은 확인해도 안심하지 못한다.

"가장 힘든 건 제가 이게 무의미하다는 걸 알면서도 못 멈춘다는 거예요. 문 잠갔는지 확인하러 가면서도 '아, 또 이러네' 싶어요. 근데 안 하면 불안해서 일을 못해요.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정말 지쳐요."


지난주에 만난 20대 대학생 M씨는 또 다른 패턴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편인(偏印)이 과다한 사주를 가지고 있었는데, 늘 시작을 망설였다. 화면에 나타난 그녀는 후드티를 입고 있었고, 카메라를 정면으로 보지 못하고 자꾸 시선을 피했다.

"졸업을 앞두고 있는데 취업 준비를 못하겠어요. 이력서를 쓰다가도 '이런 스펙으로 어디 붙겠어?' 싶어서 포기하고,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다가도 '이거 따서 뭐해?' 싶어서 그만두고... 혹시 시작했다가 망하면 어쩌죠? 차라리 안 하는 게 나을 것 같아요."

M씨의 목소리에는 체념이 섞여 있었다. 그녀는 무언가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실패를 상상하고 있었다. 편인은 기회를 스스로 차버리는 에너지다. 무언가를 시작하려 하면 '그래봤자...'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친구들은 다 취업했는데 저만 이러고 있어요. 부모님도 걱정하시고... 근데 정작 저는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어요. 시작하면 끝까지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너무 커서 아예 시작을 못하겠어요. 토익 학원도 등록했다가 한 번 가고 안 갔어요. 운전면허 학원도 마찬가지고요."

그녀는 말을 하면서도 계속 한숨을 쉬었다. 어깨는 축 처져 있었고,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제일 무서운 건 실패가 아니라 시작하는 거예요. 시작하면 기대가 생기잖아요. 그 기대가 무너지는 걸 견딜 자신이 없어요. 차라리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도 없으니까... 근데 이렇게 살다가는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아서 그것도 무서워요."

불안형 신경증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이들은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한다"는 압박에 짓눌려서 차라리 시작하지 않는 걸 선택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해야 하는데'라는 부채감이 사라지지 않는다. 이 모순 속에서 불안형은 점점 지쳐간다.

"부모님은 '뭐라도 해봐라' 하시는데, 그게 더 부담스러워요. 뭐라도 하면 실패할 텐데... 차라리 아무것도 안 하면 실패할 일도 없잖아요. 근데 그렇게 생각하는 제 자신이 한심해요."


이들을 만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우리가 겪는 불편함과 갈등은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는 것. 우리는 모두 신경증이라는 구조 속에서 살아간다. 다만 그것이 히스테리로 나타나느냐, 강박으로 나타나느냐, 불안으로 나타나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상담을 하다 보면 마치 거대한 인간 극장을 보는 것 같다. 각자 다른 무대에서 비슷한 연극을 하고 있는 것처럼. 히스테리형은 "나를 사랑해?"라고 끊임없이 묻고, 강박형은 "완벽해야 해"라며 반복하고, 불안형은 "시작하면 안 돼"라며 망설인다. 모두 다른 대사를 하지만, 결국은 같은 불안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 - 우리가 살아가는 세 가지 세계


라캉은 이런 신경증의 구조를 설명하기 위해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라는 세 가지 차원을 제시했다. 15년간 상담을 하면서 이 이론이 얼마나 정확한지 매일 확인하고 있다. 우리는 이 세 가지 세계를 모두 안고 살아간다. 사람마다 어디에 더 오래 머무느냐가 다를 뿐, 누구도 그 중 하나만 가지고 살지는 않는다.

상상계는 내가 나를 보는 방식이다. 거울 앞에 선 아이가 "저게 나구나!"라고 깨닫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세계다. 우리는 평생 이 거울 이미지와 씨름한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실제의 나 사이의 간극, 그 틈새에서 우리는 늘 불안하다.


사주로 보면 비견, 겁재 같은 비겁성이 이 영역을 담당한다. 자아의 성(城)을 쌓고 그 안에서 나를 지키려는 에너지다. 비겁이 강한 사람은 자기 확신이 강하지만, 동시에 그 확신이 흔들릴까 봐 늘 긴장한다.

지난달에 만난 35세 프리랜서 N씨가 딱 그랬다. 그는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상담을 시작했지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 자신감 뒤에 숨은 불안이 보였다.

"저는 제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실력도 있고, 인정도 받고 있죠. 근데 누군가 저를 비판하면 참을 수가 없어요. 마치 제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것 같아서... 최근에 클라이언트가 제 작업물에 수정 요청을 했는데, 며칠 동안 잠을 못 잤어요. '내가 이것밖에 안 되나', '실력이 없나' 이런 생각만 들더라고요."

N씨는 비판을 자신의 전체 존재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였다. 이것이 상상계에 갇힌 사람의 특징이다. 부분적인 지적을 전체적인 부정으로 확대해석한다.

"사실 그 클라이언트는 아주 사소한 수정을 요청한 거였어요. 색상 톤을 조금 바꿔달라는 정도? 근데 저는 그게 제 전체 작품을, 아니 저라는 사람 자체를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래서 답장도 며칠 동안 못했고요. '이 일을 계속해도 되나', '내가 재능이 있나' 이런 생각에 빠져서..."

그의 사주는 비견이 세 개나 있었다. 자아의 성이 너무 높아서 작은 돌멩이 하나에도 무너질까 봐 전전긍긍하는 구조였다. 상상계에 깊이 빠져 있는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어릴 때부터 그랬어요. 부모님이 '공부 좀 더 해라' 하시면 '나는 공부도 못하는 바보구나' 이렇게 받아들였고, 선생님이 '여기는 이렇게 하는 게 좋겠다' 하시면 '내가 다 틀렸구나' 이렇게 생각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작은 지적도 전체 부정으로 느껴져요."

상징계는 말과 규칙의 세계다. 이름을 받고, 역할을 부여받고, 사회의 일원이 되는 순간 들어서는 세계다. 우리는 이 세계에서 '아들', '딸', '학생', '직원', '부모' 같은 역할을 수행하며 살아간다.

사주의 관성(官星)이 바로 이 영역이다. 정관은 규칙과 질서를, 편관은 도전과 극복을 상징한다. 관성이 강한 사람은 사회적 역할에 충실하지만, 동시에 그 역할의 무게에 짓눌리기도 한다.

얼마 전 상담받으러 온 28세 신입사원 O씨는 정관이 과다한 사주였다. 그녀는 항상 시간에 쫓기는 것처럼 불안해 보였다.

"저는 늘 규칙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요. 1분이라도 늦을까 봐 30분 일찍 출근하고, 상사가 뭐라고 하면 밤새 그 말만 생각해요. '내가 뭘 잘못했나?', '어떻게 해야 더 잘할 수 있을까?' 주말에도 회사 생각만 해요. 친구들 만나도 회사 얘기만 하고..."

O씨는 상징계에 너무 깊이 빠져서 숨쉬기 힘들어하는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사회가 요구하는 '좋은 직원'의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하려다 정작 자신은 놓치고 있었다.

"최근에 과장님이 '수고했어'라고 하셨는데, 그게 진심인지 아니면 '더 잘해야 한다'는 뜻인지 며칠을 고민했어요. 남자친구가 '너무 예민한 거 아니냐'고 하는데, 저는 그게 예민한 게 아니라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회사에서 인정받지 못하면 제가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요."

그녀는 회사의 규칙과 상사의 기대에 자신을 완전히 맞추려고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자신은 사라지고 있었다.

"친구들은 저보고 로봇 같다고 해요. 감정도 없고, 재미도 없다고... 근데 저는 회사에서 실수하면 안 되니까 늘 긴장하고 있어야 해요. 집에 와서도 내일 할 일 생각하고, 주말에도 월요일 준비하고... 이게 정상인가 싶으면서도 안 그러면 불안해요."

그런데 가장 흥미로운 건 실재계다. 라캉은 이를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했다. 우리가 아무리 말하고 표현해도 결코 다 담아낼 수 없는 그 무엇, 그것이 실재계다.


사주로 보면 식상(食傷)의 영역과 가깝다. 식신과 상관은 표현하고 창조하고 싶은 에너지인데, 그것이 과하면 오히려 표현의 한계에 부딪힌다. 말하고 싶은데 말할 수 없고, 만들고 싶은데 만들 수 없는 그 답답함.

50대 예술가 P씨를 만났을 때의 일이다. 그는 상관이 넘치는 사주를 가지고 있었다. 화상 통화로 보이는 그의 뒤편에는 미완성 작품들이 가득했다.

"제 안에는 뭔가 거대한 게 있는데, 그걸 밖으로 꺼낼 수가 없어요. 그림을 그려도, 글을 써도, 음악을 만들어도 늘 부족해요. 제가 정말 표현하고 싶은 건 이게 아닌데... 마치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뱉지 못하는 것 같아요."

P씨는 계속해서 새로운 작품을 시작했지만, 하나도 끝내지 못했다. 시작할 때는 '이번엔 정말 내가 원하는 걸 만들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조금 진행하다 보면 또 실망한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것을 시작한다.

"30년 동안 이렇게 살았어요. 사람들은 제가 다작이라고 하는데, 사실 완성작은 거의 없어요. 다 미완성이죠. 완성하면 그게 제가 표현하고 싶던 게 아니라는 걸 인정해야 하니까... 차라리 미완성으로 두면 가능성은 남아있잖아요."

실재계의 공허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고백이었다. 우리는 모두 이 공허함을 안고 산다. 채우려 하지만 채워지지 않고, 표현하려 하지만 표현되지 않는 그 무엇. 그것이 우리를 계속 움직이게 만든다.

"가끔은 그냥 포기하고 싶어요. 뭘 해도 만족스럽지 않으니까. 근데 또 며칠 지나면 '이번엔 다를 거야' 하면서 새로운 걸 시작해요. 제가 봐도 미친 것 같은데, 안 하면 죽을 것 같아요. 표현하지 않으면 제가 사라질 것 같아요."

라캉은 이 세 가지 세계가 '보로매오 매듭'처럼 서로 얽혀 있다고 했다. 세 개의 고리가 맞물려 있어서 하나가 끊어지면 나머지도 무너진다. 상담을 하다 보면 정말 그렇다는 걸 느낀다. 자아상(상상계)이 흔들리면 사회적 역할(상징계)도 흔들리고, 그러면 내면의 공허함(실재계)이 더 크게 느껴진다.

지난달에 만난 45세 중년 남성 Q씨의 사례가 그랬다. 그는 대기업 부장으로 겉으로는 성공한 삶을 살고 있었지만, 내면은 공허함으로 가득했다.

"20년 동안 열심히 일했어요. 좋은 대학 나와서, 좋은 회사 들어가서, 승진도 빨리 했죠. 그런데 요즘 문득 '이게 다인가?' 싶어요. 제가 정말 원했던 삶이 이건가 싶고... 아침에 눈뜨기가 싫어요. 회사 가는 게 지옥 같고, 집에 와도 별로 할 게 없고..."

Q씨의 사주를 보니 대운이 바뀌는 시기였다. 지금까지는 관성 위주로 살았는데, 이제 식상의 시기로 들어가고 있었다. 사회적 역할에 충실했던 삶에서 자기 표현을 원하는 삶으로 전환되는 시점이었다.

"요즘 갑자기 기타를 배우고 싶어졌어요. 대학 때 밴드 했었는데, 취업하면서 다 정리했거든요. 근데 유튜브에서 우연히 옛날에 좋아했던 노래를 듣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살았나' 싶어서..."

그는 20년 동안 상징계의 규칙에 충실하게 살았다. 좋은 회사원, 좋은 가장의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상상계의 자기 이미지와 실재계의 진짜 욕망은 억압되었다. 이제 그 억압된 것들이 터져 나오려 하고 있었다.

"아내는 이해를 못해요. '이 나이에 무슨 기타냐'고... 근데 저는 지금이라도 하고 싶은 걸 해보고 싶어요. 회사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근데 또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니까 더 답답해요."


남자는 상상계, 여자는 상징계? - 성별로 다른 심리 구조의 비밀


여기서 더 흥미로운 발견이 있다. 남녀가 이 세 가지 세계를 사용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남자, 모든 여자가 그런 건 아니다. 하지만 15년간 상담을 하면서 발견한 뚜렷한 경향성이 있다.

남자들은 대체로 상상계에 오래 머문다. 자기 이미지를 지키는 데 에너지를 쏟는다. 얼마 전 만난 42세 IT 회사 팀장 R씨가 전형적인 예다.

"저는 팀에서 인정받는 리더예요. 실력도 있고 성과도 좋죠. 그런데 최근에 신입사원이 제 결정에 이의를 제기했어요. 회의 시간에 다른 방법이 더 효율적일 것 같다고... 그 순간 얼굴이 확 달아오르더라고요. 마치 제 권위가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R씨는 신입사원의 의견을 자신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사실 그 신입사원은 단순히 업무에 대한 의견을 낸 것뿐인데, R씨는 그것을 자신의 존재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해석했다.

"그 이후로 그 신입사원이 너무 밉더라고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다 건방져 보이고... 사실 제가 생각해도 그 친구 의견이 맞는 부분도 있었어요. 근데 그걸 인정하면 제가 무능한 팀장이 되는 것 같아서... 결국 제 의견대로 밀어붙였죠."

R씨의 사주를 보니 비견과 겁재가 강하고 인성이 약했다. 자아는 강한데 지지받는 느낌이 부족한 구조. 그래서 더욱 자기 이미지에 집착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는 팀장이라는 역할보다 '유능한 나'라는 이미지를 지키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었다.

"집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아내가 뭔가 조언을 하면 '내가 못해서 그러는 거 아니야?'라고 받아들여요. 아이들이 '아빠 이건 이렇게 하는 거야'라고 하면 기분이 나빠요. 마치 제가 무시당하는 것 같아서..."

반면 여자들은 상징계에 더 많이 머무는 경향이 있다. 타자의 욕망을 확인하고, 관계 속에서 자신을 찾으려 한다. 38세 주부 S씨의 고민이 그랬다.

"결혼 10년차인데 아직도 남편이 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늘 궁금해요. '오늘 괜찮았어?', '내가 잘하고 있는 거 맞아?' 하루에도 수십 번 묻게 돼요. 남편은 피곤하다고 하는데, 저는 확인하지 않으면 불안해요."

S씨는 남편의 반응을 통해서만 자신이 '좋은 아내'인지 확인할 수 있다고 믿었다.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평가에 의존하는 것이다.

"친정엄마도 그러셨어요. 아빠한테 늘 '오늘 반찬 괜찮았어?', '내가 살림을 잘하고 있나?' 물으셨대요. 저도 모르게 엄마를 닮은 것 같아요. 근데 요즘은 남편이 대답도 잘 안 해줘요. 그러면 더 불안해져서 더 많이 물어보게 되고..."

S씨의 사주에는 상관이 많고 정관이 약했다. 표현욕구는 강한데 안정적인 기둥이 부족한 구조. 그래서 끊임없이 타인의 반응을 통해 자신을 확인하려 하는 것이었다.

"시어머니한테도 그래요. '어머니, 오늘 음식 괜찮으셨어요?', '제가 며느리 역할을 잘하고 있나요?' 계속 물어요. 시어머니는 '그만 물어봐라' 하시는데, 안 물으면 불안해요. 혹시 마음에 안 드는데 말 안 하시는 거 아닐까 싶어서..."

이런 차이가 관계에서 갈등을 만든다. 지난달에 상담받으러 온 30대 부부의 대화가 아직도 생생하다. 화상으로 진행한 부부 상담이었는데, 두 사람은 각자의 공간에서 접속했다.

남편: "왜 자꾸 물어봐? 사랑한다고 백 번 말해도 또 물어. 그냥 믿으면 안 돼?" 아내: "왜 먼저 말을 안 해? 내가 물어봐야만 대답해. 무슨 생각하는지 어떻게 알아?"

화면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남편은 답답해하고, 아내는 서운해했다.

"저는 사랑한다는 걸 행동으로 보여주잖아요. 매일 일찍 들어오고, 월급 다 갖다 주고, 집안일도 도와주고... 그런데도 자꾸 말로 해달라고 하니까 답답해요." (남편)

"행동도 좋지만 말로 표현해주는 게 그렇게 어려운가요? 저는 당신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듣고 싶은데... 물어보지 않으면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안 해요." (아내)

두 사람의 사주를 보니 그 이유가 명확했다. 남편은 비견 위주로 자기완결적 성향이 강하고, 아내는 상관 중심으로 소통과 확인을 필요로 하는 구조였다.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으니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상담을 진행하면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이 부부가 처음 만났을 때는 바로 이 차이 때문에 서로에게 끌렸다는 것이다.

남편: "처음엔 이렇게 관심 가져주는 게 좋았어요. 저를 특별하게 생각해주는 것 같아서... 다른 여자들은 제가 먼저 다가가야 했는데, 이 사람은 먼저 관심을 보여줬거든요." 아내: "저도 이 사람의 과묵함이 좋았어요. 듬직하고 믿음직스러워 보였거든요. 말이 많은 남자들과 달라서 끌렸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끌렸던 바로 그 점이 갈등의 원인이 되었다. 이것이 관계의 아이러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없는 것에 끌리지만, 결국 그 차이 때문에 힘들어한다.

"연애할 때는 제가 물어보면 다 대답해줬어요. '사랑해?'라고 물으면 '당연하지'라고 했는데, 결혼하고 나서는 '또?'라고 해요. 제가 변한 게 아니라 그때도 지금도 똑같이 확인하고 싶은데..." (아내)

"연애할 때는 그게 애교로 보였어요. 귀엽다고 생각했죠. 근데 매일 듣다 보니 지치더라고요. 제가 사랑하지 않으면 같이 살겠어요? 굳이 말로 안 해도 아는 거 아닌가요?" (남편)


50대 이후의 대반전 - 남자는 의존적으로, 여자는 독립적으로


더 놀라운 건 나이가 들면서 이 패턴이 뒤바뀐다는 것이다. 50대를 전후로 남자는 점점 의존적이 되고, 여자는 점점 독립적이 된다. 이것은 단순한 성격 변화가 아니라 인생의 흐름에 따른 자연스러운 전환이다.

58세 은퇴자 T씨의 고백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30년간 대기업에서 임원까지 올라간 전형적인 성공한 남자였다.

"젊었을 땐 혼자 다 해결했어요. 아내한테 의논하는 일도 거의 없었죠. '내가 가장이니까 내가 결정한다' 그런 마음이었어요. 집안일은 아내가, 바깥일은 내가, 그렇게 역할이 명확했죠. 그런데 은퇴하고 나니 모든 게 달라졌어요. 아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겠어요. 밥도 차려줬으면 좋겠고, 옆에 있어줬으면 좋겠고... 마치 어린아이가 된 것 같아요."

T씨는 자신의 변화가 당황스럽다고 했다. 평생 독립적이고 주도적으로 살았는데, 갑자기 의존적이 된 자신이 낯설다는 것이다.

"아내가 친구들 만나러 나가면 불안해요. '몇 시에 와?', '어디 가?', '누구 만나?' 자꾸 묻게 돼요. 예전엔 아내가 저한테 그랬는데, 이제는 제가 그러고 있네요. 아내는 '왜 이제 와서 이러냐'고 하는데, 저도 왜 이런지 모르겠어요."

T씨의 사주를 보니 대운이 바뀌면서 인성이 강해지는 시기였다. 인성은 의존하고 보호받고 싶은 에너지다. 그동안 억눌렸던 의존 욕구가 은퇴와 함께 터져 나온 것이었다.

"회사 다닐 때는 제가 중심이었어요. 모든 결정을 제가 했고, 책임도 제가 졌죠. 근데 은퇴하고 나니 갑자기 제가 누구인지 모르겠더라고요. 아내가 없으면 하루 일과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도 모르겠고... 밥 먹는 시간도 아내가 정해주길 바라요."

반대로 55세 주부 U씨는 정반대의 변화를 겪고 있었다.

"30년 동안 남편과 아이들만 바라보고 살았어요. '좋은 아내', '좋은 엄마'가 되려고 제 모든 걸 희생했죠. 친구 만나는 것도 포기하고, 하고 싶은 일도 포기하고... 그런데 이제야 제 삶을 살고 싶어요. 제 이름으로 뭔가를 시작하고 싶고, 저만의 공간이 필요해요."

U씨는 최근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했다. 젊었을 때 미대를 가고 싶었지만 집안 사정으로 포기했던 꿈이었다.

"남편이 '이 나이에 무슨 그림이냐'고 해요. '그럴 시간에 집안일이나 더 하라'고... 서운하면서도 화가 나요. 30년 동안 당신을 위해 살았는데, 이제 좀 제 삶을 살면 안 되나요? 아이들도 다 컸는데..."

U씨의 사주는 대운이 바뀌면서 관성과 재성이 강해지는 시기였다. 사회적 역할과 자립에 대한 욕구가 커지는 때였다. 그동안 가족을 위해 억눌렀던 자기실현의 욕구가 이제야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처음엔 죄책감이 들었어요. 남편 밥 차려주고 가야 하나, 집안일 다 하고 가야 하나... 근데 이제는 '왜 내가?' 싶어요. 남편도 손발이 있는데 자기 밥 정도는 차려 먹을 수 있잖아요. 저도 제 시간이 필요해요."

이런 변화를 모르면 서로를 오해하게 된다. "왜 당신은 변했어?", "예전엔 안 그랬잖아?" 하지만 이건 변한 게 아니다. 인생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심리적 전환일 뿐이다.


최근에 상담받으러 온 60대 부부의 이야기가 기억난다. 그들은 결혼 35년 만에 처음으로 부부 상담을 받으러 왔다.

남편: "아내가 너무 차가워졌어요. 예전엔 제 말을 다 들어주고 챙겨줬는데, 요즘은 자기 일만 해요. 밥도 대충 차려주고, 제가 어디 아파도 별로 관심이 없어요." 아내: "남편이 너무 의존적이 됐어요. 예전엔 듬직했는데, 요즘은 하나부터 열까지 다 물어봐요. '뭐 먹을까?', '뭐 입을까?', '어디 갈까?' 마치 큰 아이 같아요."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35년을 함께 살았는데 지금이 가장 힘들다고 했다. 하지만 사주를 보니 두 사람 모두 자연스러운 변화를 겪고 있을 뿐이었다.

남편은 사회적 갑옷을 벗고 진짜 자신을 찾아가는 중이었고, 아내는 타인을 위한 삶에서 자신을 위한 삶으로 전환하는 중이었다. 문제는 이 변화가 동시에 일어나면서 서로를 당황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상담을 진행하면서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두 분은 지금 인생의 새로운 장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남편분은 그동안 억눌렀던 감정과 의존 욕구를 표현하는 법을 배우고 있고, 아내분은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찾아가고 있죠. 이건 잘못된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성장입니다."

두 사람은 처음엔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35년 동안 유지해온 관계의 틀이 흔들리는 것이 불안했던 것이다. 하지만 차츰 서로의 변화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남편: "그러고 보니 저도 평생 강한 척하느라 힘들었던 것 같아요.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늘 책임져야 했고... 이제는 좀 기대고 싶은데, 그게 나쁜 건 아니겠죠?" 아내: "저도 평생 남 눈치만 보고 살았어요. 남편 눈치, 시어머니 눈치, 아이들 눈치... 이제는 제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더라고요. 그림을 그리면서 처음으로 '나'를 찾는 기분이에요."

이들의 변화는 단순한 개인의 변덕이 아니다. 인생 전반기에 억눌렸던 것들이 후반기에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남자는 의존성을, 여자는 독립성을 되찾아가는 것이다.


15년간 상담을 하면서 매일 만나는 사람들을 보면서 깨닫는다. 우리는 모두 같은 구조 속을 살아간다. 히스테리든, 강박이든, 불안이든, 그것은 병이 아니라 인간의 조건이다. 상상계든, 상징계든, 실재계든, 우리는 그 세 가지 세계를 오가며 살아간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상담을 마치고 나면 진이 빠진다. 사람들의 고통과 갈등을 듣고 또 들으면서 때로는 나도 지친다. 하지만 동시에 인간이라는 존재의 경이로움을 느낀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하고, 불안하고, 갈등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간다. 사랑하고, 미워하고, 화해하고, 또 싸우면서.

중요한 건 그 구조를 이해하는 것이다. 내가 왜 이런지, 상대가 왜 저런지를 구조적으로 이해하면, 적어도 쓸데없는 자책과 원망은 줄일 수 있다.

지난주에 만난 내담자 V씨의 말이 아직도 귀에 맴돈다. 그녀는 상담을 마치고 화면을 끄기 전에 이렇게 말했다.

"이제야 알겠어요. 제가 이상한 게 아니었네요. 그냥 인간이라서 그런 거였네요. 남편도 이상한 게 아니고 그냥 다른 방식으로 인간인 거였네요. 우리가 싸우는 것도, 사랑하는 것도, 다 인간이라서 그런 거였네요."

그녀의 말에는 깊은 안도감이 담겨 있었다. 자신이 이상한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 안도감, 상대를 이해할 수 있게 된 안도감.

그렇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인간이다. 그리고 그 불완전함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든다. 완벽하지 않아서 질문하고, 확실하지 않아서 확인하고, 불안해서 망설인다. 그것이 인간이다.

상관이 많아서 끊임없이 확인하는 K씨도, 비겁이 과해서 반복 확인하는 L씨도, 편인이 강해서 시작을 망설이는 M씨도, 모두 자신만의 방식으로 인간임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나만 이상한가?"라는 질문에 이제는 답할 수 있다. 아니다, 당신만 그런 게 아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다. 다만 각자 다른 무대에서 비슷한 연극을 하고 있을 뿐이다. 어떤 사람은 히스테리라는 대본을 들고, 어떤 사람은 강박이라는 대본을 들고, 또 어떤 사람은 불안이라는 대본을 들고 무대에 선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의 연극을 보면서 때로는 박수를 보내고, 때로는 눈물을 흘리고, 때로는 함께 웃는다. 누군가는 상상계라는 무대에서 자아를 지키려 애쓰고, 누군가는 상징계라는 무대에서 인정받으려 노력하고, 누군가는 실재계의 공허함 앞에서 무언가를 창조하려 몸부림친다.


젊은 남자는 상상계에서 자신의 이미지를 지키려 애쓰고, 젊은 여자는 상징계에서 타인의 사랑을 확인하려 애쓴다. 그러다 나이가 들면 역할이 바뀐다. 늙은 남자는 의존하고 싶어하고, 늙은 여자는 독립하고 싶어한다. 이 모든 것이 인생이라는 긴 여정의 자연스러운 리듬이다.

그것이 바로 인간이 인간인 이유일지도 모른다. 완벽하지 않지만 계속 나아가고, 확실하지 않지만 계속 찾아가고, 불안하지만 계속 사랑하는 것.

상담을 마치고 혼자 남은 시간, 나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오늘 만난 사람들도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서 여전히 불안하고, 여전히 갈등하겠지. 하지만 적어도 그들은 이제 안다. 그것이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그렇게 살아간다는 것을.

밤하늘의 별들을 보면서 생각한다. 저 별들도 각자 다른 빛을 내지만, 결국은 같은 우주에 속해 있다. 우리도 그렇다. 각자 다른 신경증을 가지고,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지만, 결국은 같은 인간이라는 조건 속에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는 것 아닐까. 불완전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아름다운, 그것이 우리 인간의 모습이다.

어떤 날은 상담을 마치고 나면 내담자의 이야기가 내 안에서 계속 울린다. 그들의 불안이 내 불안이 되고, 그들의 갈등이 내 갈등이 된다. 상담자도 결국 같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때로는 히스테리처럼 확인하고 싶어하고, 때로는 강박처럼 반복하고, 때로는 불안처럼 망설인다.


지난달 어느 날, 특히 힘든 상담이 있었다. 70대 노부부가 찾아왔는데, 50년을 함께 살았지만 이제야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남편은 치매 초기 증상을 보이면서 극도로 의존적이 되었고, 아내는 평생의 헌신에 지쳐 이제라도 자유를 찾고 싶어했다.

"평생 이 사람 뒷바라지만 했어요. 시어머니 모시고, 아이들 키우고, 남편 내조하고... 이제 제 인생도 얼마 안 남았는데, 마지막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요?" (아내)

"나도 이렇게 되고 싶어서 된 게 아니야. 평생 당신과 아이들 위해 일했는데, 이제 와서 짐 취급하면 어떡해?" (남편)

두 사람의 사주를 보니 모든 게 설명되었다. 남편은 노년에 인성이 극강해지는 운이었고, 아내는 반대로 관성과 재성이 강해지는 운이었다. 한 사람은 극도로 의존적이 되고, 한 사람은 극도로 독립적이 되는 시기가 겹친 것이었다.

나는 두 사람에게 말했다. "두 분이 지금 겪는 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인생의 계절이 만든 자연스러운 변화입니다. 봄에 피는 꽃과 가을에 피는 꽃이 다르듯이, 인생의 계절마다 우리의 마음도 다른 꽃을 피웁니다."

그 순간 아내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럼 이게 제 잘못이 아니라는 거죠? 저도 제가 왜 이렇게 차가워졌나 싶어서..."

"네, 잘못이 아닙니다. 두 분 모두 자연스러운 변화를 겪고 있을 뿐입니다."

그날 상담이 끝나고 두 사람이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모두 시간이라는 강을 건너고 있다. 그 강을 건너면서 우리의 모습도 변한다. 젊을 때 강했던 사람이 늙어서 약해지고, 젊을 때 의존적이었던 사람이 늙어서 독립적이 된다. 이것은 잘못된 게 아니라 삶의 리듬이다.


며칠 전에는 20년 전 내담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당시 30대였던 그녀는 극심한 히스테리 증상으로 찾아왔었다. 연인에게 하루에도 수십 번씩 사랑을 확인하고, 조금이라도 반응이 늦으면 버려질까 봐 공황 상태에 빠지곤 했다.

"선생님, 저 기억하세요? 20년 전에 상담받았던... 그때 선생님이 해주신 말씀이 아직도 기억나요. '당신만 그런 게 아니다'라고 하셨잖아요. 그 한마디가 저를 살렸어요."

그녀는 이제 50대가 되어 있었다. 목소리에는 예전의 불안함 대신 차분함이 묻어났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어요. 여전히 가끔 불안하긴 하지만, 이제는 그 불안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웠어요. 그리고 신기한 건, 50대가 되니까 오히려 혼자 있는 시간이 좋아졌어요. 예전엔 상상도 못했는데..."

그녀의 변화는 나에게도 큰 가르침이 되었다. 우리는 변한다. 하지만 그 변화조차도 큰 흐름 속의 일부다. 히스테리가 강했던 사람도 나이가 들면서 점점 자기 안으로 들어간다. 강박이 강했던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느슨해진다. 불안이 강했던 사람도 언젠가는 시작하는 용기를 낸다.

상담을 하면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다. 사람들은 자신의 신경증을 없애고 싶어한다. 히스테리를 버리고 싶어하고, 강박을 고치고 싶어하고, 불안을 극복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답한다. "없애려고 하지 마세요. 대신 이해하세요.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세요."

왜냐하면 신경증은 우리의 적이 아니라 우리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히스테리는 사랑받고 싶은 마음의 표현이고, 강박은 완벽하고 싶은 마음의 표현이고, 불안은 실패하고 싶지 않은 마음의 표현이다. 이것들을 없애려고 하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일부를 부정하는 것이 된다.

대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들과 대화하는 것이다. 히스테리가 나타나면 "아, 내가 지금 사랑받고 싶구나"라고 인정하고, 강박이 나타나면 "아, 내가 지금 불안하구나"라고 받아들이고, 불안이 나타나면 "아, 내가 지금 두렵구나"라고 알아차리는 것이다.


최근에 만난 40대 여성 W씨가 좋은 예다. 그녀는 심한 강박 증상으로 찾아왔는데, 하루에도 수십 번씩 손을 씻고, 집안 청소를 반복하고, 모든 것을 정리정돈하지 않으면 불안해했다.

"저도 이게 비정상이라는 걸 알아요. 하지만 안 하면 불안해서 못 참겠어요. 가족들도 힘들어하고... 어떻게 하면 이걸 고칠 수 있을까요?"

나는 그녀의 사주를 보면서 말했다. "고치려고 하지 마세요. 대신 왜 그런지 이해해보세요. 비겁이 과다한 당신의 사주는 통제하고 싶은 욕구가 강합니다. 그런데 인생은 통제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하죠. 그 불안을 청소와 정리로 달래려는 거예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청소를 하되, 왜 하는지 알면서 하세요. '아, 내가 지금 불안하구나. 그래서 청소로 마음을 달래려고 하는구나' 이렇게요. 그러면 청소가 당신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 당신이 청소를 선택하는 것이 됩니다."


몇 달 후 W씨에게서 연락이 왔다. 여전히 청소를 자주 하지만, 예전처럼 강박적이지는 않다고 했다. 무엇보다 자신을 이해하게 되니 자책하는 마음이 줄었다고 했다.

이것이 바로 내가 15년간 상담을 하면서 배운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신경증을 없앨 수 없다. 하지만 이해할 수는 있다. 그리고 이해하면 함께 살아갈 수 있다.

라캉은 정신분석의 목표가 증상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증상과 다른 관계를 맺는 것이라고 했다. 사주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타고난 사주를 바꿀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면, 조금 더 자유롭게 살 수 있다.

어떤 이는 묻는다. "그럼 결국 운명론 아닌가요? 정해진 대로 살 수밖에 없다는?"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자신의 구조를 모르면 그 구조에 끌려다닌다. 하지만 구조를 알면 그 안에서 선택할 수 있다. 상관이 강한 사람이 모든 관계에서 "나를 사랑해?"라고 묻는 것은 아니다. 그 욕구를 알면, 다른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 예술로, 글로, 봉사로.


비겁이 강한 사람이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 에너지를 알면, 건설적인 방향으로 쓸 수 있다. 리더십으로, 추진력으로, 창업으로.

편인이 강한 사람이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 성향을 알면, 신중함이라는 장점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 연구로, 분석으로, 깊이 있는 통찰로.

결국 중요한 것은 자기 이해다. 내가 왜 이런지, 상대가 왜 저런지를 이해하는 것. 그것이 갈등을 줄이고 관계를 개선하는 첫걸음이다.

며칠 전 오랜만에 대학 동창을 만났다. 그녀는 나와 같은 일을 하지만 서양 심리학만을 공부했다. 우리는 카페에서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너는 어떻게 정신분석과 사주를 함께 볼 생각을 했어? 너무 다른 것 아니야?"

나는 웃으며 답했다. "처음엔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하지만 15년을 하다 보니 결국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더라고. 인간은 구조 속에서 살고, 그 구조를 이해하면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

"그래도 사주는 너무 운명론적이지 않아?"

"오히려 반대야. 사주를 모르면 '왜 나만 이럴까?' 하면서 자책하지. 하지만 사주를 알면 '아, 이게 내 구조구나. 그럼 이 안에서 어떻게 살아갈까?'를 생각하게 돼. 그게 진짜 자유의 시작이야."

친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맞는 말이네. 결국 'Know Thyself', 너 자신을 알라는 거잖아."

그렇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혜의 시작은 자기 이해다. 라캉이 말하는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도, 사주가 말하는 십성의 작용도, 결국은 우리 자신을 이해하기 위한 도구다.

상담실로 돌아오는 길에 하늘을 올려다봤다. 구름이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구름은 모양을 바꾸지만 여전히 구름이다. 우리도 그렇다. 젊음에서 늙음으로, 의존에서 독립으로, 독립에서 의존으로 변하지만, 여전히 우리다.

오늘도 누군가는 "나만 이상한가?"라고 묻고 있을 것이다. 연인에게 사랑을 확인하다가, 문을 잠갔는지 확인하다가, 시작하기를 망설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 것이다.

그들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만 그런 게 아니라고. 우리 모두가 그렇다고. 그리고 그것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든다고.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불안해도 괜찮다. 확인하고 싶어도 괜찮다. 그것이 당신이고, 그것이 우리다.

중요한 것은 그런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것이 15년간 수천 명을 만나면서 내가 배운 가장 큰 교훈이다. 우리는 모두 신경증이라는 인간의 조건을 공유하고 있다. 다만 각자 다른 색깔로 그것을 표현할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 당신의 히스테리가 나의 강박을 이해하고, 나의 불안이 당신의 히스테리를 이해한다. 우리는 다르지만 같고, 같지만 다르다.

밤이 깊어간다. 오늘 하루도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의 이야기가 내 안에서 울리고 있다. 누군가의 눈물이, 누군가의 한숨이, 누군가의 깨달음이.

그들은 모두 자신만의 방식으로 인간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불완전하지만 아름답게, 불안하지만 용감하게.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리고 그것이 인간이 인간인 이유다.

내일도 누군가가 찾아올 것이다. "나만 이상한가요?"라고 물으면서. 그때 나는 미소 지으며 말할 것이다.

"아니요, 당신만 그런 게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래서 우리는 인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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