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슬픔이 자녀에게 흘러가는 방식

by 홍종민

감정의 대물림과 투사


초가을 비가 내리는 오후, 동네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테이블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이렇게 우울한지 모르겠어. 별일도 없는데..." 젊은 여성이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었다. 전화 너머 어머니의 답변은 들리지 않았지만, 여성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엄마도 그래? 우리 집안이 원래 그런 거야?"

그런데 이상했다. 감정도 유전되는 걸까? 바로 그런 거다. 부모의 우울이나 불안이 자녀에게 그대로 전해진다. 김형경은 "부모가 해결하지 못한 감정의 문제들이 고스란히 자녀에게 대물림된다는 사실은 이제 누구나 알고 있다"(김형경, 2017: 145) 했다. 카페에서 들은 대화가 바로 이런 대물림의 현실이었다. 일상의 진실이다.


말로 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것들


젊은 여성의 질문이 며칠째 머릿속을 맴돌았다. "우리 집안이 원래 그런 거야?" 정확한 질문이다. 집안의 감정 패턴이라는 분명히 있다. 융이 말한 '그림자' 바로 이런 식으로 작동한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어둠의 영역이 다음 세대로 고스란히 흘러간다. 무의식의 법칙이다.

동네 세탁소 사장님을 보면 현상이 명확해진다. 손님이 와서 옷을 맡기려 해도 " 얼룩 빠질지 모르겠어요" 하며 부정적인 말부터 한다. 그런데 어느 그분의 어머니가 오신 봤다. 똑같은 말투였다. "그거 거야", "힘들 텐데" 같은 부정적 전망부터 내놓는 습관. 멜라니 클라인이 발견한 '투사적 동일시' 바로 이런 거다. 부모가 자신의 불안을 자녀에게 무의식적으로 떠넘긴다. 자녀는 그것을 자신의 성격으로 받아들인다. 대물림의 메커니즘이다.

며칠 세탁소에 다시 갔을 , 사장님과 대화를 나눴다. "저도 모르겠어요. 자꾸 된다는 말부터 하게 되는지." 바로 그거다. 본인도 모른다. 그분의 어머니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조심해라, 위험해" 같은 말만 하셨다고 했다. 표현되지 않은 불안이 고스란히 아들에게 전해진 것이다. 융이 말한 '집단 무의식' 바로 이런 식으로 작동한다. 개인을 넘어 세대 전체가 공유하는 감정 패턴. 그게 현실이다.


자신도 모르는 감정을 물려주는 사람들


김형경이 책에서 소개한 후배 여성의 사례가 충격적이다. 아버지의 전쟁 트라우마가 딸에게 그대로 전해진 케이스다. "지금 내가 느끼는 슬픔은 방금 네가 회피한 것이다. 그리고 내면에 간직되어 있으면서 흥남이라는 단어조차 제대로 읽지 못하게 만드는 슬픔은 아버지가 외면해온 것이다"(김형경, 2017: 145). 바로 그런 투사적 동일시의 실체다. 분명하다.

윌프레드 비온이 정신분석 현장에서 발견한 현상은 가족 관계에서 더욱 강력하게 작동한다. 부모의 처리되지 않은 감정이 자녀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자녀는 그것이 자신의 감정인 착각하며 평생을 산다. 남의 감정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며 사는 거다. 대물림의 무서운 점이다.

동네 빵집 사장님의 경우가 더욱 극명하다. 처음 빵집에 갔을 때의 기분을 지금도 기억한다. 빵을 고르는데 " 별로 달아요", "이거 딱딱할 수도 있어요" 하며 부정적인 말부터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며칠 그분의 어머니를 만났는데, 똑같은 패턴이었다. "그거 맛없을 텐데", "저거 비싸기만 하고" 하며 뭐든 일단 부정부터 하는 습관. 윌프레드 비온이 말한 '수용(containment)'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벌어지는 일이다. 감정을 제대로 받아주고 소화시켜주는 사람이 없으면, 감정은 독이 되어 다음 세대로 흘러간다. 현실이다.

카페에서 통화하던 젊은 여성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머니의 어떤 처리되지 않은 감정을 대신 짊어지고 사는 거다. 어머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딸에게 떠넘긴 무언가. 그래서 딸은 자신이 우울한지 이유를 모르는 거다. 대물림의 실체다.


대물림을 끊을 있는 하나의 방법


그렇다면 이런 악순환을 어떻게 끊을 있을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자각이다.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이 정말 것인지 돌아보는 것이다. 융은 개성화 과정에서 자신의 그림자를 인정하고 통합해야 한다고 했다. 안의 어둠을 부정하지 말고,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김형경은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내면에서 일어나는 느낌을 알아차리는 , 감정이 내면에 뿌리 감정인지 외부에서 전해진 감정인지 구분해보는 , 내면의 무의식이라면 근원을 찾아내 에너지를 제거하고, 외부에서 감정이라면 반응하지 않으면서 다만 지켜보는 "(김형경, 2017: 141). 이게 바로 심리적 자기 경계를 확립하는 일이다.

멜라니 클라인이 강조한 것도 마찬가지다. 투사된 감정을 다시 돌려주는 . 것이 아닌 감정은 내가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깨닫는 것이다. 부모의 미해결된 상처를 내가 대신 아파할 이유는 없다. 그들의 슬픔을 내가 대신 짊어질 필요도 없다.

빵집 사장님이 좋은 예다. 빵집에 다시 갔을 놀라운 변화가 있었다. ", 이게 우리 엄마 말투구나" 하고 어느 깨달았다고 하셨다. 후부터는 의식적으로 긍정적인 말을 하려고 노력한다고 한다. " 정말 맛있어요", "오늘 구웠어요" 하면서 말이다. 그분의 변화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희망이 느껴졌다. 대물림은 끊을 있다는 증거였으니까.

초가을 비가 그치고 나면 맑은 하늘이 드러나듯, 대물림된 감정의 안개가 걷히고 나면 진짜 마음이 보인다. 그때야 비로소 진짜 이야기를 시작할 있다. 카페에서 통화하던 젊은 여성도, 세탁소 사장님도, 빵집 사장님도, 그리고 우리 모두도 말이다.


김형경(2017). 소중한 경험. 서울: 사람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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