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을 쓴 마음들 - 우울이 숨는 일상의 풍경

by 홍종민

성안길을 걸으며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면서도 어딘지 공허해 보일까? 그런데 이상했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히라야마를 보면서 느꼈던 그 묘한 기분이 일상에서 자꾸 떠오르는 것이었다. 히라야마는 분명 성실하고 차분한 청소부였는데 관객들은 모두 그의 깊은 외로움과 체념을 알아챘다. 바로 그거다. 우울은 더 이상 눈물의 얼굴로만 오지 않는다는 것 말이다.

김병수는 "마흔 이후의 우울증은 우울하지 않은 게 특징입니다"(김병수, 2020: 129)라고 했다. 영화는 픽션이지만, 그 속의 심리는 현실 그 자체다. 히라야마의 그 규칙적인 일상처럼, 우리 주변의 사람들도 다양한 가면을 쓰고 우울과 함께 살아간다.


일 중독이라는 가면 - 도피의 심리학


동네에서 자주 가던 카페 사장님이 있었다. 항상 웃는 얼굴로 손님들을 맞이하시던 50대 초반의 분이었는데, 어느 날부터 매장에서 나오지 않고 계속 일만 하고 계셨다.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 쉬는 날도 없이 매장을 지키는 모습이 점점 이상해 보였다. "요즘 일이 많아서요"라고 하셨지만, 그 표정 어딘가 허전해 보였다.

사람들은 견디기 어려운 감정을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활동으로 바꾸려 한다. 지그문트 프로이드는 이런 현상을 '승화'라고 불렀다. 억압된 충동이 예술이나 일 같은 건설적 활동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일에 몰두하는 것도 그런 승화의 한 형태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일 뒤에 숨어 있는 진짜 감정이다. 사장님의 경우 최근 아내와의 갈등이 있었다는 소문이 들렸다. 집에 가기 싫어서, 혹은 혼자 있는 시간이 두려워서 일에 매달리는 것은 아닐까.

김병수가 제시한 우울증의 다양한 얼굴 중 하나가 바로 "일에 지나치게 빠져든다"는 것이다. 퍼펙트 데이즈의 히라야마도 비슷했다. 그는 매일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똑같은 루틴을 반복했다. 그 뒤에는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는 체념과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욕구가 숨어 있었다. 일상의 반복이 자신의 공허함을 잊게 해주는 유일한 수단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려면 진짜 자신과 가짜 자신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도널드 위니코트는 이를 '참자아'와 '거짓자아'라고 불렀다. 사회가 요구하는 모습에 맞추려다 보면 진짜 자신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카페 사장님의 그 억지스러운 미소와 과도한 성실함도 어쩌면 거짓자아의 표현일 수 있다. 히라야마가 완벽한 청소부라는 정체성에 매달렸듯이 말이다. 진짜 하고 싶은 말은 "힘들다"였을 텐데 말이다.


몸이 말하는 진실 - 억눌린 감정의 출구


버스에서 매일 만나는 한 분이 있다. 4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회사원인데, 항상 같은 자리에 앉아서 목과 어깨를 주무시곤 했다. 처음엔 단순한 근육통인 줄 알았는데 몇 달째 계속되는 걸 보니 이상했다. 어느 날 우연히 나눈 대화에서 알게 된 사실은 최근 회사에서 팀장으로 승진했는데 부담이 크다는 것이었다.

"병원에서는 아무 이상 없다고 하는데 계속 아파요"라고 하시는 그분의 말에서 뭔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김병수는 "감정은 억누른다고 없어지지 않거든요. 우리 몸 어딘가에 박혀 버립니다"(김병수, 2020: 130-131)라고 했다. 바로 이런 것이다. 말로 표현하지 못한 우울은 몸의 언어로 나타난다.

퍼펙트 데이즈의 히라야마를 보면 이런 현상을 더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 히라야마는 겉으로는 건강해 보였지만, 매일 똑같은 루틴에 갇혀 살아가는 모습 자체가 일종의 강박 증상이었다. 감정을 억누르고 무감각하게 살아가려는 것도 마음이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방어기제였다. 버스 아저씨의 목 통증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어른이 되어서도 우리에게는 안전감을 주는 존재가 필요하다. 직장이나 가정이 그런 역할을 해왔는데 그것이 흔들릴 때 원시적 불안이 찾아온다. 버스 아저씨의 목 통증도 어쩌면 "나는 지금 너무 힘들다"는 마음의 외침일 수 있다. 승진의 기쁨보다는 책임감과 압박감이 더 컸던 것 같은데, 그런 복잡한 감정들을 어디다 털어놓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가면을 벗고 마주하기 - 우울을 인정하는 용기


그런데 신기한 건, 시간이 지나면서 카페 사장님과 버스 아저씨 모두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었다. 사장님은 어느 날부터 직원에게 일을 맡기고 가끔 매장 밖으로 나오셨고, 버스 아저씨도 목 통증을 호소하는 대신 "요즘 스트레스가 많아서"라고 솔직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가 가능한 이유는 뭘까? 김병수는 "우울이라는 감정은 숨기려 하거나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두려워할 필요도 없습니다"(김병수, 2020: 131-132)라고 했다. 그렇다. 우울은 부끄러운 감정이 아니다. 오히려 마음이 보내는 정직한 신호다.

퍼펙트 데이즈의 히라야마는 결국 자신만의 작은 행복을 찾아갔다. 카메라로 나무를 찍고, 음악을 들으며 소소한 기쁨을 느끼는 모습이 바로 그것이었다. 우리에게도 다른 선택이 있다. 바로 우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아, 내가 요즘 우울하구나" 하고 인정하는 순간부터 치유가 시작된다.

위니코트가 말한 '충분히 좋은 환경'이란 완벽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의미한다. 우울함을 느끼는 자신도 충분히 괜찮은 존재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카페 사장님도, 버스 아저씨도 모두 열심히 살다가 잠시 지친 사람들일 뿐이다. 그들이 조금씩 자신의 마음을 인정하고 표현하기 시작하면서 진짜 회복의 길로 접어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울에게 "너 왜 나에게 왔니?"라고 물어보는 것이다. 답은 생각보다 단순할 수 있다. 너무 오랫동안 혼자 버텨왔거나, 진짜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단순히 쉬고 싶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우울을 숨기지 말고 내보이는 것, 그것이 활력을 되찾는 첫걸음이다.


김병수(2020). 마흔 마음 공부를 시작했다. 서울: 더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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