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아이는 어디로 갔을까

by 홍종민

20 그는 깨달았다. 그때 아들에게 했던 모든 잔소리가 틀렸다는 것을. 영화 '써니' 나미처럼 말이다. 모범생이었던 나미가 갑자기 불량 써니 그룹에 들어가 담배를 피우고 반항하기 시작한 순간을 돌이켜보면 답이 보인다. 나미는 원래 나쁜 아이가 아니었다. 단지 자신의 진짜 모습을 숨기고 살아왔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가장 모범적이던 아이들이 갑자기 가장 반항적으로 변할까? 이유섭은 "부모의 성격과 조부모를 비롯한 가족의 문제 상황, 자라는 환경에 따라 자녀들의 성향이 형성됩니다"(이유섭, 2018: 88)라고 했다. 과잉보호받던 순한 아이가 사춘기에 폭력적으로 변하는 우연이 아니다. 속에는 명확한 심리학적 이유가 있다.


나미의 변신 - 에릭슨이 정체성 혼란


써니의 나미를 보면 사춘기 폭력성의 진짜 원인이 보인다. 전학 오기 전까지 완벽한 모범생이었던 나미가 갑자기 담배를 피우고, 선생님께 대들고,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린다. 관객들은 새로운 환경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정체성의 위기였다.

에릭 에릭슨의 심리사회 발달 이론으로 보면, 청소년기는 '정체성 역할 혼란' 단계다. 나미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직면했다. 부모가 원하는 모범생인가,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은 평범한 10대인가? 공부만 하는 기계인가, 감정을 가진 인간인가?

에릭슨은 시기에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면 역할 혼란에 빠진다고 했다. 나미의 경우, 부모는 계속 "공부하는 나미" 원했지만, 정작 나미는 친구들과 놀고 싶고 자유롭고 싶었다. 자신의 진짜 욕구를 표현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 상황에서 극단적인 반항으로 터질 수밖에 없었던 거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은 나미가 써니 멤버들과 처음 만나 "나도 끼워줘"라고 말하는 순간이다. 그때 처음으로 나미는 부모의 기대가 아닌 자신의 의지를 표현했다. 모범생 가면이 아니라, 또래와 어울리고 싶은 진정한 자기를 드러낸 거다.

이유섭이 언급한 대학생 사례와 비슷하다. 과잉보호받던 학생도 부모의 기대에 맞추려다가 "진정한 자기" 잃었다. 부모가 원하는 모습과 자신의 실제 모습 사이의 괴리가 커질수록 불안과 분노가 쌓였던 것이다. 나미도 마찬가지였다. 부모가 원하는 "완벽한 " 실제로 친구들과 놀고 싶어하는 자신 사이에서 정체성 혼란을 겪었다.


혜진의 분노 - 로저스가 무조건적 수용의 부재


리틀 포레스트의 혜진을 보면 다른 형태의 청소년 문제가 보인다. 혜진은 직접적인 폭력은 보이지 않지만, 도시를 떠나 혼자 살기로 선택 자체가 일종의 반항이었다.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살지 않겠다는 조용한 저항이었던 거다.

로저스의 인본주의 상담 이론으로 보면, 인간은 누구나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 받을 건강하게 성장한다. 혜진에게는 그런 존재가 어머니였어야 했는데, 어머니는 혜진이 어릴 떠나버렸다. 혜진은 계속 "성공해야 한다", "남들처럼 살아야 한다" 조건부 사랑만 받아왔다.

로저스는 사람이 조건부 사랑만 받으면 '가치 조건' 내재화한다고 했다. "좋은 대학에 가야 사랑받는다", "좋은 직장에 다녀야 인정받는다" 식으로 말이다. 혜진도 그런 조건들을 충족하려 노력했지만, 결국 지쳐버렸다. 그래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시골로 내려간 거다.

하지만 시골에서 혜진은 자신만의 속도로 살아가기 시작한다. 계절에 맞는 음식을 해먹고, 자연과 교감하고, 어머니의 흔적을 되짚어가면서 점차 자신을 받아들인다. 로저스가 말한 '자기실현' 과정이었다. 남들의 기준이 아닌 자신만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운 것이다.

이유섭은 "그렇게 되면 아이는 진정한 자기를 서서히 잃게 됩니다. 순간 아이의 마음속에 자기를 잃게 것은 과잉 간섭, 과잉보호를 부모님 때문이라는 불만이 가득 차게 됩니다"(이유섭, 2018: 90)라고 했다. 혜진의 도피도 바로 불만의 표현이었다. 진짜 자신을 잃어버린 상황에서 적어도 혼자라도 진정한 자신을 찾겠다는 의지였던 거다.


진정한 대화가 답이다


영화를 보면서 깨달은 , 청소년의 폭력성이나 반항은 단순한 문제 행동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진짜 나를 봐달라" 절규였다. 나미가 써니 그룹에 들어간 것도, 혜진이 시골로 내려간 것도 모두 진정한 자기를 찾으려는 몸부림이었다.

에릭슨과 로저스가 공통으로 강조한 것은 청소년기에 '자기 일치' 이루는 것의 중요성이다. 부모가 원하는 모습과 자신의 진짜 모습이 일치할 건강한 성장이 가능하다는 거다. 나미는 써니 친구들과의 우정을 통해 진짜 자신을 발견했고, 혜진은 자연 속에서 어머니와의 추억을 되짚으며 자기 자신과 화해했다.

이유섭은 "그러므로 이제부터라도 아이와 진정한 대화를 시작하세요. 부모님의 잘못이 있으면 아이 앞에서 솔직히 고백해야 합니다"(이유섭, 2018: 90)라고 했다. 진정한 대화란 잔소리가 아니라 아이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들어주는 것이다.

영화 나미처럼, 혜진처럼, 우리 모든 청소년들은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행 중이다. 과정에서 때로는 반항하고, 때로는 도망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성장의 신호다. 에릭슨이 말한 정체성 확립과 로저스가 강조한 자기실현, 개념이 만나는 지점에서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할 있다. 순한 아이가 갑자기 난폭해졌다면, 아이는 지금 자신의 목소리를 찾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이유섭(2018). 현대인의 심리분석 에세이. 서울: 박영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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