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 촉을 잡는다는 것
내 머릿속이 털리는 순간
by 홍종민 Oct 5. 2025 brunch_membership's
청원도사의 혁명적 감각론
조용헌 선생이 인터뷰한 청원도사의 증언은 충격적이다.
"사주가 그림으로 들어와요. 냄새로도 오고, 소리로도 와요."
이것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실제 체험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청원도사는 무등산 규봉암에서 30년 넘게 구령삼정주 염불 수행을 통해 이런 능력을 개발했다고 한다.
"어떤 사람 사주를 보면 군홧발 소리가 들려요. 쿵쿵쿵 행진하는 소리. 그런 사람은 대부분 군인이나 경찰 쪽으로 가더라고요. 또 어떤 사주에서는 소독약 냄새가 나요. 병원 특유의 그 냄새. 그런 사람들은 의사나 간호사가 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도 반신반의했다. 사주를 냄새로 맡고 소리로 듣는다니. 말이 되나.
그런데 이상한 건,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한다는 거다.
어떤 내담자를 만나면 갑자기 답답한 느낌이 온다. 가슴이 막히는 것 같다. 또 어떤 사람을 만나면 시원한 바람이 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게 뭘까.
청원도사는 이를 "우주는 에너지이고 파장"이라는 관점으로 설명한다. 문자가 빛과 파장으로 변환되어, 자신의 '감각적 스크린'에 투영되는 현상을 통해 인간의 운명을 예측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거다. 사주나 명리학은 단순한 논리적 분석이 아니다. 심층 감각 체험이다.
조용헌 선생은 같은 암자의 정인 스님 사례도 소개한다. 30년 이상을 이 암자에 머물며 하루하루를 치열한 정진으로 채운 정인 스님은 신도들에게 사업, 직장, 결혼 등 세속적 주제도 상담해주는데, 그 내용이 마치 '마음을 꿰뚫어보는' 듯 정교하다는 평을 듣는다.
이는 염불과 고지대 수행을 통해 얻은 초감각적 통찰이다. 사심이 없는 맑은 관찰. 그게 바로 촉의 핵심이다.
신수훈 선생의 마음속 그림 이론
신수훈 선생은 명리학을 '마음 읽기' 과정이라고 정의한다.
생년월일시를 숫자로만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숨어 있는 개개인의 독특한 에너지를 발견하여, 그것을 긍정적 방향으로 전환해주는 작업이라는 것이다.
특히 "물이 많은 사주가 왔을 때, 상상을 통해 그림을 그려라"라는 조언이 인상적이다.
물은 명리학에서 '흐름, 감정, 의식의 깊이'를 상징한다. 이때 단순히 '물이 많으니 감정기복이 크다'로 끝나지 않고, "그 물이 어떤 그림을 만들어낼까?"라고 확장해보는 거다.
예를 들어보자.
물이 많은 사주를 보면서 잔잔한 호수가 떠올랐다면, 그 사람은 겉으로는 차분해 보이지만 내면에 깊은 감정을 품고 있는 사람일 수 있다. 만약 거센 폭포가 떠올랐다면, 감정 표현이 강렬하고 역동적인 사람일 수 있다.
신수훈 선생은 상담자의 핵심 역할로 "마이너스 에너지를 플러스 에너지로 전환해준다"는 책임감을 강조한다.
내담자는 대개 걱정, 고민, 불안감 등을 안고 상담실에 들어온다. 이런 심리적 상태는 마이너스 에너지를 형성한다. 상담자는 이를 "이 에너지를 어떻게 하면 전환해줄까?"를 고민해야 한다.
그게 현실이다. 상담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게 아니다. 에너지를 변환하는 작업이다.
나지오의 무의식적 동영상 이론
프랑스의 정신분석가 장 다비드 나지오(Jean-David Nasio)는 충격적인 주장을 한다.
"분석가는 내담자의 무의식적 동영상을 본다."
정신분석 장면이 단순한 말의 교환이나 문제 해결이 아니라, 내담자 무의식의 깊은 심연에서 만들어진 이미지와 메시지를 함께 재구성하는 작업이라는 거다.
나지오에 따르면, 이 '무의식적 동영상'을 보기 위해서는 분석가가 자신을 어느 정도 해리(dissociation) 상태에 두어야 한다.
해리 상태. 평소의 논리와 이성을 완전히 내던지는 게 아니다. 오히려 이성의 한 부분은 투명하고 깨어 있으면서, 다른 한 부분은 자유연상처럼 무의식의 흐름과 결합해 '상상적 상태'로 들어가는 거다.
동시에 명료한 판단을 유지해야 한다.
분석가는 내담자의 메시지를 "있는 그대로 공감"해야 하지만, 그 공감에 빠져 전부 '동화'되어 버리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한편으로는 내면에 펼쳐지는 영상에 푹 몰입하되, 또 한편으로는 냉철히 "이것이 내담자의 욕망과 갈등에서 비롯된 이미지"임을 자각해야 한다.
피부로 실감한다. 내가 사주를 볼 때도 이런 상태가 된다. 내담자 이야기를 들으면서 갑자기 어떤 장면이 펼쳐진다.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그 장면이 내담자의 과거일 수도 있고, 미래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장면에 완전히 빠져서는 안 된다. 한쪽 눈은 영상을 보고, 한쪽 눈은 현실을 봐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상담이 가능하다.
민델의 터칭 명상: 무의식의 동시적 공명
미국의 심리학자 아놀드 민델(Arnold Mindell)은 터칭 명상(touching meditation)이라는 방식을 통해,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서로에게 어떤 식으로 연결되며, 때로는 동일한 이미지를 공유하기까지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민델이 제시한 사례는 충격적이다.
한 여성이 명상 중, 상대방의 등에 조용히 손가락을 얹었을 뿐인데, 갑자기 특정 이미지를 떠올렸고, 같은 시점에 상대방 역시 동일한 이미지를 봤다는 것이다.
민델은 이를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인간 무의식이 집단적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민델은 춤을 예로 든다. 함께 춤을 출 때,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몸을 갖고 있지만, 어느새 동일한 하나의 꿈을 꾸는 듯한 동작과 리듬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춤을 추면서 교감이 극에 달하면, 마치 두 명의 뇌가 하나의 시나리오를 상영하는 듯하다. 이는 터칭 명상에서의 "동일한 환상"과 맥락을 같이한다.
민델은 양자역학 개념을 끌어온다. 대표적으로 비국소성(non-locality)과 얽힘(entanglement) 이론이다.
양자역학에서, 두 입자가 한 번 상호작용을 한 뒤에는 거리와 무관하게 즉각적으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다. 민델은 이 개념을 무의식적 공명에 대입한다.
사람들 역시 한 번 교류하면, 물리적 거리와 상관없이 무의식적으로 서로를 인지·공유할 수 있는 상태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거다. 6장에서 다룬 형태장 이론과 정확히 일치한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장을 통해 연결되어 있고, 그 장을 통해 정보와 감정을 주고받는다.
코틀러의 마술적 순간
미국의 심리학자 제프리 코틀러(Jeffrey Kottler)는 감정이입이 최고조에 달하는 순간을 두고 "지각의 일치(perceptual alignment)"가 일어난다고 표현한다.
상담자와 내담자가 서로에게 깊이 몰입하면,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며, 다음에 무엇을 말할지도 예측 가능한 상태가 된다.
이 상태가 지속되는 동안, 두 사람은 서로에게 적극적으로 반응하며, 심리적 안정과 치유를 경험할 수 있다.
이것은 단지 "대화를 잘한다"는 차원이 아니다. **"서로의 무의식이 일시적으로 일치되는 특별한 경험"**이다.
코틀러는 상담 상황에서 이를 흔히 목격하지만, 병원에서 의사와 환자 간에,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 간에, 더 나아가 일상 속 다양한 접점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상한 건, 코틀러가 예로 든 사례들이다.
바텐더와 손님, 택시 운전사와 승객, 미용사와 고객 사이에서도 "작은 치유적 순간"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택시 운전사가 승객에게 "오늘 힘들어 보이네?"라고 말하는 작은 한마디가 큰 위로가 될 수 있고, 미용사가 머리를 다듬으면서 건네는 칭찬이 마음을 환하게 비출 수 있다.
그게 팩트다. 치유는 전문 상담실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일상의 모든 만남에서 일어날 수 있다.
코틀러는 강조한다. "그들이 제공하기로 계약한 서비스와 별개로, 사람들 사이에는 이러한 치료적 관계가 존재한다."
가발드의 무의식적 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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