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하니 떠오르는 장면을 무시하지 마라
사람들은 거짓말을 한다. 괜찮다고 말하면서 괜찮지 않다. 화 안 났다고 말하면서 부글부글 끓는다. 원하는 게 없다고 말하면서 온갖 것을 원한다. 말은 믿을 게 못 된다.
그런데 공상은 거짓말을 못한다.
멍하니 있을 때 떠오르는 장면. 잠들기 전 흘러가는 상상. 회의 중에 문득 스치는 이미지. 거기에 그 사람의 진짜가 있다. 본인도 모르는 욕망과 두려움이 거기에 숨어 있다.
공상을 읽을 줄 알면 사람이 보인다. 내 공상을 읽으면 내가 보이고, 상대방의 공상을 읽으면 상대방이 보인다.
접수 직원에게 끌린 남자의 진짜 문제
한 정신과 의사가 있었다. 그는 자신을 매우 좋아하고,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어하는 여자와 결혼했다. 부인은 그가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오면 느낌이 어떤지, 자신이 어떻게 하면 그가 행복한지를 물었다. 그는 부인을 사랑했고, 함께 시간 보내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데 결혼 생활에서 성관계 횟수가 점점 줄고 있었다. 그는 이것이 일이 많아져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일을 끝내고 책상에 잠깐 머물러 있는 사이에, 그는 같은 층 접수 직원과 성관계를 갖는 환상을 가졌다. 실제로는 당사자에게 말 한마디 건넨 적 없다. 통로에서 만나 인사하는 것이 전부였다.
이 환상이 모든 것을 드러냈다.
성적인 환상에서는 피곤함이 없었다. 그런데 부인과 잘 때는 너무 피곤하다고 느꼈다. 부인은 그를 위해 모든 것을 주고 잘 보살펴 주었지만, 접수 직원은 그에게 거의 관심이 없었다. 그녀와 자신 사이에 거리가 있고, 그녀가 자신에게 무관심한 것이 그녀를 매력적으로 만든다는 것을 이때야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리고 결정적인 연결이 떠올랐다. 그의 어머니는 과잉보호적이고 간섭이 많은 사람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많은 질문으로 성가시게 했다. 부인이 그에게 하는 행동이 어머니가 했던 것과 똑같았다.
칼 쾨니히는 이렇게 말한다. "백일몽이 부부 사이의 갈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과의 갈등은 되도록 억누르려고 하지만 환상의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과 관련이 있다"(쾨니히, 2001, p. 31).
이것이 공상을 활용하는 첫 번째 방법이다. 누군가에게 끌린다면, 왜 끌리는지 물어라. 그 사람의 어떤 점이 매력적인가? 그 매력은 현재 관계에서 무엇이 결핍되어 있는지를 정확히 보여준다. 그리고 그 결핍은 대개 과거의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
상사에게 화나는 진짜 이유
직장에서 상사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같은 상사를 두고 어떤 사람은 분노하고, 어떤 사람은 아무렇지 않다. 왜 그럴까?
쾨니히는 이렇게 설명한다. "전이는 자기의 과거에 의해 어떤 사람을 이해하게 할 수 있고, 모든 전이는 무의식에서 생긴다. 자신이 전이에 대해 모른다는 것이 전이의 중요한 특징이다"(쾨니히, 2001, p. 48).
우리는 현재의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는다. 과거의 누군가를 덧씌워서 본다.
상사를 볼 때 아버지가 보인다. 동료를 볼 때 형제가 보인다. 부하직원을 볼 때 어린 시절의 자기가 보인다. 본인은 전혀 모른다. 그냥 그 사람이 싫거나, 그 사람에게 끌리거나, 그 사람이 불편할 뿐이다.
어떤 사람이 상사를 부모처럼 이상화하여, 회사가 어려워도 자신을 해고시키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이런 사람은 해고가 되면 매우 놀란다. 마치 부모에게 버림받은 것처럼 느낀다. 상사는 그냥 경영상의 결정을 내린 것뿐인데.
반대의 경우도 있다. 어린 시절 독선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사람은 상사를 볼 때마다 싸우고 싶어진다. 상사가 합리적인 지시를 해도 반항심이 치솟는다. 본인은 "원칙의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아버지와의 미해결 갈등이 작동하는 것이다.
공상으로 관계를 읽는 기술
쾨니히는 실용적인 기법을 제안한다. "전이를 알아보는 데 도움이 되는 기법이 있다. 그것은 현재 관계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가족들과 비교해 보는 것이다"(쾨니히, 2001, p. 50).
지금 당신을 가장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을 떠올려 보라. 그 사람의 어떤 점이 불편한가? 그 느낌이 과거에 누구에게서 받았던 느낌과 비슷한가?
지금 당신이 가장 끌리는 사람을 떠올려 보라. 그 사람의 어떤 점이 매력적인가? 그 매력이 과거에 누구에게서 느꼈던 것과 비슷한가?
지금 당신이 가장 돌봐주고 싶은 사람을 떠올려 보라. 왜 그 사람을 돌봐주고 싶은가? 혹시 어린 시절 돌봄받지 못한 자기 자신을 그 사람에게서 보는 것은 아닌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이 공상의 형태로 떠오른다. 장면이 보이고, 감정이 느껴지고, 오래된 기억이 스친다. 그것을 무시하지 마라. 거기에 진짜가 있다.
호텔을 사는 환상
한 남자가 호텔에서 짐 나르는 사람에게 불친절한 대접을 받았다. 그는 이 생각을 확장하여 자신이 부자가 되어 이 호텔을 사고 그 사람을 해고한다는 환상을 가졌다.
겉으로 보면 단순한 복수 환상이다. 무례한 사람에게 당했으니 갚아주고 싶은 것. 그런데 쾨니히는 다르게 해석한다. "여기서 호텔은 부인을, 짐 나르는 사람은 부인의 아버지를 나타낼 수 있다"(쾨니히, 2001, p. 31).
이 남자는 장인에게 무시당한다고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직접 표현할 수 없었다. 부인과의 관계 때문에. 그래서 무의식은 다른 무대를 빌려왔다. 호텔과 짐꾼이라는 무대를.
공상은 이렇게 작동한다. 직접 표현할 수 없는 갈등을 다른 장면으로 옮겨서 보여준다. 공상 속 인물들은 실제 인물들의 대역이다.
그러니까 당신의 공상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자세히 보라. 그들이 실제로 누구를 대신하고 있는지 물어라. 공상 속에서 당신이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그것을 실제로 누구에게 하고 싶은 것인가?
우리는 평생 같은 영화를 반복한다
쾨니히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항상 과거의 관계를 재현한다. 우리는 내부의 대상과 맞는 사람을 찾고 있다"(쾨니히, 2001, p. 72).
사람들은 비슷한 유형의 연인을 반복해서 만난다. 비슷한 유형의 친구를 반복해서 사귄다. 비슷한 유형의 상사 밑에서 반복해서 일한다. 우연이 아니다. 우리가 그런 사람을 찾아다니는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왜? 과거의 관계를 다시 살아보기 위해서. 어린 시절 해결하지 못한 것을 지금 해결하려고. 그때 받지 못한 것을 지금 받으려고. 그때 하지 못한 것을 지금 하려고.
문제는 이것이 대부분 실패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사람은 과거의 사람이 아니니까. 현재의 상황은 과거의 상황이 아니니까. 우리는 잘못된 무대에서 잘못된 배우와 옛날 대본을 연기하고 있다.
쾨니히는 경고한다. "과거의 재현은 관찰하는 힘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여 우리의 관계들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것을 간과하게 한다"(쾨니히, 2001, p. 72).
현재를 제대로 살려면 과거의 대본을 인식해야 한다. 내가 지금 어떤 영화를 반복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공상을 활용하는 실전 기술
첫째, 강한 감정이 올라올 때 그것을 분석하라. 쾨니히는 말한다. "모든 강한 감정을 잘 생각해 보는 것이 좋다. 어떤 강한 감정들은 현실적인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이 현실적인지 아닌지 알려면 그것들을 분석해야 한다"(쾨니히, 2001, p. 48).
누군가에게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오른다면, 잠깐 멈춰라. 이 분노가 이 사람에게 적절한 양인가? 아니면 다른 누군가에게 느꼈던 분노가 이 사람에게 옮겨붙은 것인가?
둘째, 반복되는 환상에 주목하라. 같은 유형의 공상이 반복된다면 그것은 해결되지 않은 무언가가 있다는 신호다. 복수 환상이 반복된다면 분노가 쌓여 있는 것이다. 구출 환상이 반복된다면 무력감이 쌓여 있는 것이다. 성적 환상이 특정 유형을 향한다면 현재 관계에서 결핍된 것이 있는 것이다.
셋째, 타인의 공상을 들어라. 상대방이 무심코 던지는 "요즘 이런 생각이 들어"라는 말에 귀를 기울여라. "어젯밤 이런 꿈을 꿨어"라는 말을 그냥 넘기지 마라. 거기에 그 사람의 무의식이 말하고 있다.
공상은 무의식의 언어다
말은 거짓말을 한다. 행동도 위장할 수 있다. 하지만 공상은 거짓말을 못한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장면들. 멍하니 있을 때 흘러가는 이미지들. 잠들기 전 펼쳐지는 시나리오들. 그것이 무의식의 언어다. 무의식은 말로 소통하지 않는다. 장면으로 소통한다.
그 장면들을 읽을 줄 알면 자기 자신이 보인다. 왜 이 사람에게 끌리는지, 왜 저 사람이 불편한지, 왜 같은 패턴을 반복하는지. 답은 이미 공상 속에 있다.
타인의 공상을 읽을 줄 알면 타인이 보인다. 그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가 진짜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가 어떤 과거를 반복하고 있는지. 말로는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이 공상 속에 다 드러나 있다.
공상을 무시하지 마라. 거기에 진짜가 있다.
참고문헌
쾨니히, 칼/ 이귀행 역(2001). 『자기분석』. 서울: 하나의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