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홍종민 Jan 30. 2026 brunch_membership's
상담을 마치고 나면 늘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제대로 본 건가?' '저 사람한테 도움이 됐을까?' '실력이 부족한 게 아닐까?'
특히 힘들 때가 있다. 사주를 펼쳐놓고 봐도 명확한 답이 안 보일 때. 내담자가 "제 사주에 뭐가 보이세요?"라고 물을 때. 그 눈빛에서 간절함이 느껴질 때. 나는 뭔가 확실한 걸 말해줘야 한다는 압박을 느낀다.
그래서 더 공부한다.
책을 더 읽는다. 고전을 뒤진다. 선배 상담가들의 강의를 듣는다. 하지만 공부하면 할수록 알게 된다. 사주는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는 걸. 해석은 늘 여러 갈래로 갈라진다는 걸.
그런데 신기한 건, 내가 이렇게 불안해하는데도 내담자들은 계속 찾아온다는 것이다. "선생님, 지난번에 말씀하신 게 맞았어요." "선생님 덕분에 결정할 수 있었어요."
그 순간 번쩍 깨달았다. 바로 이거다. 내가 고민하는 것과 내담자가 원하는 것 사이에 엄청난 간극이 있다는 걸.
같은 동네의 두 상담가
같은 동네에 두 명의 사주상담가가 있었다.
A 선생은 실력이 대단했다. 고전을 줄줄 외우고, 사주 풀이가 정교했다. "당신 사주에는 식상이 강하고 재성이 약하니 사업보다는 직장이 맞습니다. 대운을 보면 3년 뒤에 좋은 기회가 올 겁니다." 명쾌했다. 확신에 차 있었다. 그런데 내담자들이 한 번 오고 다시 안 왔다.
B 선생은 달랐다. 사주를 보다가 물었다. "사업을 하고 싶으신 이유가 뭔가요?" "지금 마음이 어떠세요?" 내담자가 말하기 시작하면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사주 풀이는 짧았다. 하지만 내담자들이 줄을 섰다. 예약이 한 달씩 밀렸다.
나는 A 선생처럼 상담했다. 열심히 공부했다. 정확하게 풀이했다. 그런데 B 선생만큼 손님이 오지 않았다. 왜 그럴까?
그때 브루스 핑크라는 정신분석가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알았다. 내담자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그들이 왜 다시 찾아오는지. 바로 이거다. 사주상담가의 진짜 비밀.
당신은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다
한 30대 여성이 상담실을 찾았다. 결혼을 앞두고 있다고 했다. 사주를 펼쳐놓고 보는데, 솔직히 명확하지 않았다. 합궁도 나쁘지 않고, 그렇다고 아주 좋지도 않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음... 사주만 보면 큰 문제는 없어 보이는데, 그래도 결혼은 신중하게 결정하셔야죠."
그녀가 물었다. "그럼 선생님, 제가 결혼해도 될까요?"
나는 당황했다. '내가 뭘 알겠어. 당신 인생인데.' 하지만 그녀는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간절하게.
그때 브루스 핑크의 말이 떠올랐다. "라캉은 분석의 원동력이 '알고 있다고 가정된 주체'에 있다고 주장했다"
[1]
내담자는 상담가가 처음부터 특별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한다는 것이다
.
딱 이거다. 분명하다.
내담자는 상담실 문을 여는 순간부터 이미 당신에게 전지전능한 지식을 부여한다. 운명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인생의 정답을, 미래를 꿰뚫어보는 능력을.
당신이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다. 실력이 부족하다고 느끼든, 아직 공부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내담자에게 당신은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다. 예외가 없다.
그 여성은 내 대답을 기다렸다. 나는 천천히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데요?"
그녀가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 "사실... 저도 결혼하고 싶어요. 그런데 선생님이 안 된다고 하시면 어쩌나 싶어서요."
바로 그거다. 그녀는 답을 구하러 온 게 아니었다. 이미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렸다. 다만 그 결정에 대한 승인을 구하러 온 것이다. 사주상담가라는 권위자의 승인을. 그게 현실이다.
그들이 진짜 원하는 건 답이 아니다
사주상담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있다.
"제 사주에 재물운이 있나요?" "저 이 사업 해도 될까요?" "이 사람이랑 결혼하면 잘 살 수 있을까요?"
처음엔 나도 열심히 사주를 봤다. 재성의 위치를 보고, 용신을 따지고, 대운을 계산했다. 그리고 최대한 정확하게 답하려고 애썼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내가 "재물운이 좋습니다"라고 말하면, 그들은 기뻐하며 돌아갔다. "재물운이 약합니다"라고 말하면, 그들은 실망하며 돌아갔다. 그런데 며칠 뒤 다시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선생님, 그래도 방법이 없을까요?" "선생님, 제가 뭘 조심하면 될까요?" "선생님,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들은 계속 물었다. 끊임없이 물었다. 그때 깨달았다. 피부로 실감했다. 그들이 진짜 원하는 건 사주 풀이가 아니었다는 걸.
핑크는 이렇게 지적한다. "의미는 본질적으로 다의적인 것이다"
[2]
우리가 내뱉는 말은 결코 하나의 의미만을 담지 않는다는 것이다
. "
제가 이 사업 해도 될까요
?"
라는 질문 하나에도 수십 가지 의미가 중첩되어 있다
.
겉으로는 운명에 대한 질문 같지만, 실제로는 이럴 수 있다. "제가 이 사업을 시작해도 괜찮다고 말해주세요." "제가 돈을 못 버는 게 제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세요." "제 선택을 승인해주세요."
바로 그거다. 정확히 그거다. 그들이 원하는 건 운명의 해석이 아니다. 자신의 선택, 자신의 고민, 자신의 괴로움을 누군가 알아주기를 바란다. 그게 전부다.
답을 주는 순간, 대화는 끝난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오지 않는다.
판결을 내리는 순간 그들은 입을 닫는다
그 일 이후로 나는 상담 방식을 바꿨다. 사주를 보고 바로 해석을 말하는 대신,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이 사업을 하고 싶으신 이유가 뭔가요?" "결혼을 고민하시는 진짜 이유가 뭘까요?" "재물운을 물어보시는데, 지금 어떤 상황이신가요?"
처음엔 두려웠다. 사주상담가가 오히려 질문을 던지면, 내담자들이 당황하지 않을까? 내가 실력이 없어 보이는 건 아닐까? 그들이 다시 안 찾아오는 건 아닐까?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질문을 받은 내담자들이 말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고민을, 두려움을, 욕망을. 사주 풀이를 듣고 돌아갈 때보다 훨씬 편안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시 찾아왔다. 계속 찾아왔다.
핑크는 정확히 이 지점을 짚어낸다. "내담자는 분석가에게서 부모의 이미지나 그와 유사한 권위적인 형상을 찾으려 한다. 그는 분석가에게 승인, 거부, 인정, 처벌 등과 같은 판결을 요구하게 된다"
[3]
딱 이거다. 틀림없다. 그들은 판결을 구하러 온다. "이 사업 해도 돼요?" "이 사람이랑 결혼해도 돼요?" 부모에게 허락을 구하듯, 상담가에게 승인을 구한다. 1밀리미터도 다르지 않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게 있다. 핑크는 경고한다. "분석가가 실제로 그런 문제를 심의할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능력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그렇게 판단을 내리는 것 자체가 이미 분석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4]
무슨 뜻일까? 만약 상담가가 "네, 하세요" 혹은 "아니요, 하지 마세요"라고 판단을 내린다면? 내담자는 그 순간부터 진짜 속마음을 감추기 시작한다. 상담가가 듣고 싶어 할 만한 말만 골라서 하게 된다. 그리고 답을 얻었으니 다시 안 온다. 절대 그래선 안 된다.
하지만 질문을 던지면? 내담자는 스스로 말하기 시작한다. 자신도 몰랐던 욕망을, 감춰뒀던 두려움을. 그 과정에서 스스로 답을 찾아간다. 그 과정은 한 번에 끝나지 않는다. 그래서 다시 온다. 계속 온다. 그게 진짜 치유다.
타자의 욕망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
주위를 보면 천지다. 상담실에 오는 사람들은 너나없이 타자의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 부모가 원하는 것, 배우자가 원하는 것, 사회가 원하는 것. 정작 자신이 뭘 원하는지는 모른다.
핑크는 명확히 말한다. "부모의 욕망은 주체 자신의 욕망의 근원이 된다. 주체는 그들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자 한다"
[5]
(
핑크
, 2021: 101).
우리의 욕망은 처음부터 타자의 욕망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
그래서일까. 상담실에 오는 사람들 대부분은 이렇게 묻는다. "제가 이렇게 해도 될까요?" "이게 맞을까요?" 스스로 판단하지 못한다. 누군가의 허락을 구한다. 누군가의 승인을 기다린다.
나이가 들어도 마찬가지다. 30대는 부모에게 묻는다. 40대는 배우자에게 묻는다. 50대는 자식에게 묻는다. 그리고 모든 세대가 사주상담가에게 묻는다. "제가 이렇게 해도 될까요?"
그럼 사주상담가는 뭘 해야 하는가? 핑크는 답한다. "신경증자의 분석은 타자나 타자의 욕망으로부터 그를 분리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6]
바로 그거다. 당신이 "이 사업 하세요" 혹은 "하지 마세요"라고 판단을 내리는 순간, 내담자는 또 다른 타자의 욕망(당신의 욕망)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당신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물으면, 그들은 조금씩 자신의 욕망을 찾아간다. 그게 진짜 치유의 시작이다.
이게 핵심이다. 사주상담의 진짜 목적은 운명을 알려주는 게 아니다. 그들이 타자의 욕망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것이다.
권위는 유지하되 판단은 하지 마라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게 있다. 질문만 던지면 되는 걸까? 아니다.
내담자는 당신이 '아는 사람'이라고 믿는다. 그 믿음이 없으면 상담실 문을 열지도 않는다. 그래서 권위는 필요하다.
학위증을 걸어라. 경력을 말해라. "저는 이 분야에서 오래 일했습니다"라고 말해도 된다. 그들은 당신이 알고 있다고 믿어야 한다.
하지만, 그 다음이 중요하다. 권위는 유지하되, 판단은 하지 마라.
"선생님은 오래 하셨으니 제 사주를 정확히 아시잖아요. 이 사업 해도 될까요?"
예전 같으면 이렇게 답했을 것이다. "네, 사주를 보니 괜찮습니다. 하세요."
하지만 이제는 이렇게 답한다. "오래 사주를 봤지만, 사주보다 더 중요한 건 당신의 마음입니다. 이 사업을 하고 싶으신 이유가 뭔가요?"
권위는 인정한다. (오래 했다) 하지만 판단은 안 한다. (당신 마음이 중요하다) 그리고 질문을 던진다. (이유가 뭔가요?)
이게 최고의 조합이다. 내담자는 당신을 신뢰한다. (권위) 동시에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질문) 그래서 계속 온다.
여기까지가 내가 수십 년 걸려 깨달은 영업 비밀이다. 질문을 던져라. 판단하지 마라. 들어줘라. 그러면 그들은 다시 온다.
그런데 이 비밀이 안 통하는 상담이 있었다. 두 번이나.
실패 사례 1: 급한 사람에게 질문해서 실패하다
전화 한 통이 왔다
전화사주가 왔다. 여자, 12살 연상의 남자와 헤어졌다. 다시 만날 수 있는지, 서로 잘 맞는지 궁합을 봐달라고 했다.
나는 영업비밀을 적용했다. "오래 사주를 봤지만, 사주보다 더 중요한 건 당신 마음입니다. 왜 헤어진 남자와 다시 만나고 싶으세요?"
그녀가 답했다. "좋아해서요."
"어떻게 헤어지셨어요?"
"차였어요. 남자가 날 버렸어요."
그런데 여기서 분위기가 틀어졌다. 그녀가 발끈했다. "이런 것 물어보지 말고, 서로 잘 맞는지나 봐주세요."
질문을 던졌는데 역효과가 났다. 왜일까?
그녀의 마음 상태를 읽지 못했다
12살 연상의 남자에게 차였다. 버림받았다. 지금 그녀의 마음 상태가 어땠을까?
상처투성이였을 것이다. 자존감이 바닥이었을 것이다. '내가 뭐가 부족해서 버림받았을까?'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