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마음을 움직이는 은밀한 기술

일상 속 대화최면

by 홍종민

어느 날 한 내담자가 정말 인상적인 말을 하더라. "선생님과 이야기하고 나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져요. 뭔가 특별한 기술이 있으신가요?" 그 순간 밀턴 에릭슨의 대화최면 이론이 떠올랐다. 내가 무의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던 것들이 사실은 체계적인 심리 기법이었다는 깨달음 말이다.

밀턴 에릭슨의 대화최면이라고 하면, 왠지 특별한 심리 치료나 무대 최면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에릭슨이 강조했던 대화최면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의사소통 방식"**이다. 사실 그가 탁월했던 이유도, 무언가 마술적인 비밀 기술보다는 상대방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은유와 부드러운 제안을 통해 무의식을 깨우는 법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방법을 일상 속 대화에 어떻게 녹여 낼 수 있을까? 회사에서 동료나 상사를 설득할 때, 가깝거나 멀게 알던 사람을 위로할 때, 가족이나 친구에게 동기를 불어넣어 주고 싶을 때, 에릭슨적 접근법을 조금만 더 의식적으로 활용해 본다면 이전과 전혀 다른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대화최면의 일상적 가능성: 정말 통할까?


"정말 일상에서도 대화최면이 통할까?"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 최면이라는 단어만 듣고, **"상대에게 시계추를 흔들고, '졸린다, 졸린다' 주문을 외워야 하나?"**라고 생각한다면 완전한 오해다.

에릭슨은 대화만으로도 사람의 무의식을 건드릴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이 대화는 우리가 평소 쓰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다만, 몇 가지 중요한 요소가 추가된다.


에릭슨식 대화의 4가지 핵심 요소


-상대의 감정, 상태를 먼저 인지하고 공감한다 (페이싱)


-은유나 이야기로, 혹은 간접적인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간접 제안)


-상대 스스로 "아, 그렇구나!"를 깨닫도록 배려한다 (자발적 통찰)


-작은 동의, 긍정적 기대를 통해 저항을 줄인다 (Yes Set, 긍정적 시나리오)


이 네 가지 요소가 적절히 어우러지면, 형식은 일상적인 대화인데도, 상대의 내면 깊은 곳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논리적 설득이 아니어도, "왠지 이 말이 와 닿네" 혹은 **"나도 모르게 '그래, 해볼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와 같은 반응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라캉의 무의식 이론과의 연결점


라캉이 말한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는 명제를 생각해보면, 에릭슨의 접근법이 더욱 명확해진다. 우리가 주고받는 언어는 의식적 정보 전달뿐만 아니라 무의식적 기표들의 연쇄이기도 하다.

에릭슨은 바로 그 무의식적 언어의 구조를 활용해서 치료적 변화를 일으켰던 것이다. 은유나 간접 제안이 기표의 전치나 압축 과정을 통해 무의식에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는 셈이다.


설득의 기술: 논리를 넘어선 마음의 문 열기


왜 논리만으로는 설득되지 않을까?


흔히 우리는 누군가를 설득할 때, 논리와 근거, 데이터를 들이민다. 하지만 상대는 **"음, 말은 맞는데, 난 못 하겠어"**라든지, **"알겠는데 왠지 찜찜해"**라고 반응하곤 한다.

이는 사람이 단순히 '이성'만으로 움직이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깊은 감정과 무의식적 두려움, 혹은 다른 욕구들이 얽혀 있어서, 아무리 논리가 맞아떨어져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정신분석학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행동은 의식적 자아보다는 무의식적 욕동에 의해 더 크게 좌우된다. 따라서 무의식의 저항을 줄이고 자연스러운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 핵심이다.


설득에 쓰일 수 있는 에릭슨식 기법들


1. 은유와 비유의 마법


직장에서 **"새로운 방법을 써봅시다!"**라고 말해도, 동료나 상사는 **"귀찮은데", "그동안 잘해왔는데 굳이?"**라고 반응할 수 있다.

이때 간단한 이야기를 들어 **"예전에 어떤 회사가 이런 변화를 시도하다가 큰 기회를 잡았다고 들었는데, 그것도 예상치 못한 결과였대요. 혹시 우리가 그런 사례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제안하면, 직접적 압박이 아니라 은근한 가능성 제시가 된다.


2. 간접 제안의 위력


"당장 이걸 하세요!" 대신 **"이런 방법을 시도해 보면, 의외로 재미있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요?"**라고 말한다.

사람은 "하라"고 하면 반발하지만, **"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제안에는 **"그래, 그럴 수도 있지"**라며 문을 열게 된다.


3. Yes Set: 작은 동의부터 쌓기


"우린 지금 상황이 어렵다 → 네(맞아요). 그래도 뭔가 바꿔야 한다는 건 동의하시죠? → 네. 그럼 한번 시도해 보는 게 어떨까요?"

먼저 상대가 쉽게 동의할 수 있는 사실을 언급해 작은 **"네"**를 몇 번 받아 놓으면, 설득의 흐름이 부드러워진다.


실제 사례: 동료 설득하기


상황: 동료 A가 기존 방식을 고수하려고 한다. 새로운 업무 방식을 제안하고 싶은데, 그가 **"지금도 잘 돌아가는데 뭘"**이라며 귀찮아 한다.

기존 방식: "이 방법이 효율성이 15% 높습니다. 다른 회사에서도 다 이렇게 해요. 우리도 바꿔야 합니다."

에릭슨식 접근:

나(페이싱): "A님, 요즘 일도 많은데 새로운 방식 얘기 들으면 솔직히 귀찮고 부담스러우실 것 같아요. 저라도 처음엔 '아, 또 일거리 늘어나나?' 했을 거예요."

나(이야기·간접 제안): "근데 제가 다른 부서 사례를 들어 보니까, 작은 변화를 시도했는데 그게 의외로 큰 효율을 만들어 냈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처음엔 그분들도 회의적이었대요. 시간이 걸리고 익숙하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한 번 자리를 잡으니까 업무량이 확 줄었대요."

나(Yes Set): "우리도 지금 업무가 많고(네), 시간 부족하잖아요(네). 일이 줄어들면 좋겠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잖아요(네)."

나(결론 제시): "그렇다면 우리도 '혹시' 이런 변화를 작게라도 시도해 보면 어떨까요? 저도 도와드릴 테니까, 최대한 덜 번거롭도록 신경 써 보려고 해요. 생각보다 괜찮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렇게 하면, 동료 A는 **"아, 그럴 수도 있겠네"**라는 생각을 스스로 하게 된다. 논리적으로만 접근했다면 반발이 컸을지 모르지만, 감정을 인정하고 → 성공 사례를 이야기로 들려주며 → 작게라도 시도해 보자는 흐름을 만들면 훨씬 자연스럽게 설득이 가능하다.


위로의 예술: "힘내!"를 넘어선 깊은 공감


"힘내!"가 역효과를 낳는 이유


친구가 슬픔이나 우울, 상실감에 빠져 있을 때, 우리는 보통 "힘내!" "잘될 거야!" 같은 직접적 위로를 건넨다. 그러나 이것이 오히려 상대에게 **"날 쉽게 위로하려고 하네"**라는 거부감을 줄 때가 있다.

특히 상대가 진짜 힘든 상태라면, "힘내"라는 말 자체가 공허하게 들리고, 어떤 사람은 **"내 마음을 제대로 이해도 못하면서 쉽게 말하네"**라고 반발하기도 한다.

비온의 레버리 이론으로 생각해보면, 진정한 위로는 상대의 무의식적 상태와 **공명(resonance)**할 때 일어난다. 표면적인 격려보다는 깊은 차원에서의 이해가 먼저 필요한 것이다.


에릭슨이 쓴 위로법: 공감 + 은유 + 긍정적 기대


1. 공감(페이싱): 감정을 무조건 인정하기


상대의 슬픔, 힘듦, 어려움을 무조건 괜찮다고 덮어버리지 않는다. **"정말 많이 힘들었겠네. 요즘 잠도 잘 못 자겠다며?"**라고 말한다. 이는 상대 감정을 정당화해 주어 방어 기제를 낮춘다.


2. 은유나 간접 비유: 희망의 씨앗 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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