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 마리아도 우리랑 비슷하게 생기셨을 거야.
<The Death of the Virgin, 1601-1605/1606>
- Michelangelo da Caravaggio
평소 옛날 사람들의 모습이 어땠을지에 대해 호기심이 많다. 이와 관련하여 미술관에서 종교화를 볼 때도 비슷한 궁금증이 생긴다. 실제 성서 속 인물들은 어떻게 생겼을까. 특히 성모 마리아는 수많은 종교화에서 보듯 단아하고 품위있어 보이기만 하는 모습이었을까.
라파엘로 그림 속 성모 마리아도,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성모 마리아도 모두 품격있고 우아해 보인다. 사람이 보일 수 있는 가장 성스러운 표정과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 정도 아우라가 있어야 인류를 구원하러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낳은 엄마 자격이 있을 것 같다. 르네상스 시기가 도래하면서 인간이 역사의 중심으로 등장했지만 아직 종교의 힘은 막강했다. 당연히 성모 마리아는 당시 인간들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우아한 얼굴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솔직히 저 정도로 거의 신의 반열에 오른 성스러운 얼굴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성모 마리아의 얼굴이 실상은 보통 사람들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종교적 뽀샵'을 제거하면(즉 계급장 떼고 보면) 당시 젊은이들이 늘 만날 수 있는 '친구네 엄마' 얼굴이 아니었을까. 마리아를 실제 동네 아줌마처럼 그린 화가가 있다. 바로 카라바조다.
한 여인이 침대에 누워있다. 주변 사람들이 슬퍼하는 것으로 보아 이 여인은 죽었나 보다. 아랫배도 약간 볼록한데다 맨발이다. 약간 '쩍벌' 상태이기까지 하다. 모르고 봤다면 동네 아주머니가 돌아가셔서 마을 사람들이 와서 슬퍼하는 걸로도 보일 수 있겠다. 하지만 작품 속 돌아가신 여인은 이웃집 아줌마가 아니라 성모 마리아이고, 옆에서 울고 있는 사람들은 저잣거리 아저씨들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도들이다.
이 작품에서 카라바조는 성모 마리아를 지극히 인간적이고 평범하게 그렸다. 기존 종교화에서 볼 수 있는 성스러운 존재가 아니다. 심지어 마리아의 모델이 카라바조의 애인이었던 매춘부였다고 한다. 16세기에 성모를 이렇게 그릴 때는 분명히 '후환'을 예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름다워 보이든 추해 보이든 있는 그대로 그리려고 했던 카라바조는 본인 생각대로 밀고 나갔다. 실제 이 그림을 주문했던 교회는 불경하다는 이유로 인수를 거부했다고 한다. 배짱이 대단한 화가다.
이 작품에서도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키아로스쿠로 기법(명암법)이 잘 나타나 있다. 이렇게 빛과 그림자의 대조를 통해 연극무대처럼 더 극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을 테네브리즘(Tenebrism)이라고 한단다(이것도 외워두자).
카라바조가 종교적 인물을 이처럼 사실적으로 그린 건 성모 마리아 뿐만이 아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마태(Mattew)도 복덕방 아저씨처럼 그렸다(좌). 곰브리치 <서양미술사>에 따르면, 카라바조는 늙고 가난한 노동자이며 단순한 세리(稅吏)였던 마태가 갑자기 앉아서 책을 쓰게 된 광경을 생각하느라 고심했다. 결국 대머리에 먼지 묻은 맨발로 책을 어색하게 거머쥐고, 익숙하지 않은 글을 쓴다는 긴장감 때문에 걱정스럽게 이마를 찌푸리고 있는 마태를 그렸다. 하지만 성인(聖人)에 대한 존경심이 결여되어 있다는 이유로 거부당하자, 성인에 대한 기존 관념에 따라 새로 '있어 보이게' 그렸다(우). 사람들의 인식 속 성인의 모습은 후자이지만, 전자가 더 현실적인 건 분명하다.
예나 지금이나, 분야를 막론하고 기존 관습을 깨는 건 어려운 일이다. 조롱과 왕따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자칫 시기와 질투의 희생양으로 몰리기도 한다. 카라바조는 실력 면에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신의 솜씨'를 가졌기에 남 눈치 안보고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성인이라고 해서 뭐 다르게 생겼을까. 다 똑같지.
키아로스쿠로 기법을 이용한 드라마틱한 구성을 미술사에 도입한 데 대해 카라바조에게 경의를 표함과 동시에, 무려 16세기에 성모 마리아와 마태를 뽀샵 안쓰고 사실적으로 그린 배짱과 기개에 또 한 표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