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제일 중요합니다.
<The Family of Michiel van der Dussen, 1640>
- Hendrick Cornelisz van Vliet
지난 주 간만에 사진관에 가서 가족사진을 촬영했다. 평소에도 집에서나 밖에서나 휴대폰 카메라로 인물 사진을 자주 찍지만, 제대로 각잡고 가족 사진을 남긴 건 아들 돌 이후 거의 20년 만인 듯. 확실히 전문가의 터치는 다르다. 자세와 표정과 배경의 조합이 최고점인 '바로 그 순간’을 포착하더라!
가족사진 찍으면서 네덜란드 Delft에 있는 작은 미술관에서 만났던 한 가족이 떠올랐다. 17세기에 이 동네에 살았던 Michiel van der Dussen이라는 사람의 가족초상화다. 아들 셋에 딸 둘을 둔 다복한 가정이다(엄마가 손잡고 있는 아이는 아들이라고 한다. 당시엔 남자아이가 어릴 때는 여자아이 옷을 입히는 풍습이 있었다고). 아빠랑 작은 아들이 악기 연주를 하고 있고 큰 아들은 악보를 들고 있다. 작은 가족음악회를 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뒷편에 십자가와 마리아상이 보이는 걸로 보아 독실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17세기 네덜란드에는 정육점에도 미술작품들이 걸려 있었다더니, 일반 가정에도 작품들이 여러 점 걸려 있다. 역시 Dutch Golden Age였나 보다.
루벤스가 그린 한 가족초상화도 생각났다. 친구이자 작업 파트너인 얀 브뤼헐(Jan Brueghel) 가족을 그린 작품이다. 얀 브뤼헐은 <농부의 결혼식>, <아이들의 놀이>, <바벨탑> 같은 대작을 남긴 피터 브뤼헐(Pieter Brueghel)의 아들로서 아버지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림으로 밥 먹고 살았던, 나름 ‘꽤 했던’사람이다. 차범근의 아들 차두리 정도 느낌이라고나 할까. 루벤스와 얀 브뤼헐은 같은 작품을 나눠서 그리는 동업자이기도 했다. 보통 루벤스는 인물을 그리고, 얀 브뤼헐은 배경과 정물을 그렸다. 인물 묘사에 특화된 루벤스는 모처럼 절친 가족을 위해 시간을 할애했나 보다.
엄마는 오른손으로는 딸의 손을 잡고 있고 왼손으로는 아들의 어깨를 감싸고 있다. '너희들은 누가 뭐래도 내 새끼들이다'라고 하는 것 같은 표정이다. 아들은 자기 손을 엄마 손위에 올려 놓고 딸은 엄마를 바라보고 있다. 둘 다 전적으로 엄마를 신뢰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엄마가 정중앙에 위치해 있는 것이 특이하다. 실제 집안 내 권력관계를 표현한 것인지, 루벤스가 친구 아내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그렇게 그렸는지는 모르겠다. 엄마와 아이들이 삼각형의 세 꼭지점을 이루는 듯이 안정된 구도를 보이고 마치 아빠는 ‘꼽사리’를 낀 느낌이다.
미술사적으로는 Frans Hals의 민병대 집단초상화와 Rembrandt의 해부학 실습 집단초상화가 훨씬 의미있고 가치있는 작품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미술사책에 거의 언급되지 않는 무명화가 Michiel van der Dussen의 작품이 훨씬 따뜻하고 정겹다. 왜? 가족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