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슬럼프

by 곰돌

엄마수술도 끝났고 대장내시경도 마쳤다. 결과는 낙방이지만 3일간 3개 기관 면접도 마쳤다. 여러가지로 심신은 지쳤다. 교대근무 하는 남편도 힘들고 나도 넉다운이 되었다.


마침 따스한 문장 오프라인 모임이 있었다. 평일에 기차를 타러가는 여유, 출근길이 아닌 기차타러가는 여유가 힐링이다. 그렇게 타기 힘들었던 만원 지하철도 가뿐하게 서울역에 내려 용산역으로 이동했다.

전남 여수엑스포행 타러가는 기차는 반가웠다. 예전에 구남친 만나러 용산역에 자주가고 만나러 갔는데

이제는 이럴수가, 아직도 생각나네, 라는 어처구니없는 웃음이 제일 처음 떠올랐다.

남편은 야간근무라 일찍 김치찌개랑 반찬거리를 준비해주고 갔다. 혼자서도 잘 먹지만 신경이 쓰인다. 집에서 놀고있는 백수 아내. 할 도리는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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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여름 유일하게 시원한 지하철 안 냉기속에 내 몸을 맡겼다. 역시나 머리속엔 "혹시 내일 면접보러오라는 문자를 받으면?""갑자기 일찍 병원에서 연락와 긴급히 비상인 용종이라고 말하면?" 어쩌지..

계속 걱정이 되었지만 이런 생각이 병을 만들어 내고 있기에 파국적인 사고들을 멈추었다. 이제 집중력이 떨어지는 생각으로 바뀌니 조심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한테 가끔 스페인이라는 나라에 대해 궁금해진다고 한다. 스페인에서 멀리 온 분과 오랜만에 만난 모임원분들, 처음보지만 익숙한 듯 즐거운 어무이 모임원 분들 등등 반가운 얼굴들을 만나뵈었다.

익숙한 힐링을 즐기지만 긴 휴가를 보내는 느낌처럼 또 다른 휴식을 느낀다. 덕분에 걱정스런 연락은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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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집중하면서 읽어본적이 사실 없다. 잡념이 강해 읽고난 뒤 여러번 대목을 반복해야지만 겨우 의미를 파악하다보니 난독증인가. 한때 그런 생각을 했었다. 여기에 와서 집중적으로 낭독하면서 읽으니 새로운 집중력을 느꼈다.


새로운 집중력과 휴식이 부정적인 마음을 닦아내릴 수 있었다. 맑은 하늘과 진한 노을을 볼수 있음에 다시한번 감사한 하루였다. 이렇게 맑고 청하한 자연들을 만나니 검진 결과는 최고 좋은 결과이고 회사합격통지서도

조만간 만날 수 있겠지? 나름 합리화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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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힐링은 금방 사라지는 것도 알고 있다. 가끔 휴식은 너무 흔해서 크게 와닿지 않고 오래가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순간 만나는 사람들과 휴식 들을 좋아하고 기뻐한다. 금방 사라질까봐 기억하는 방식을 오랫동안 두고 싶다. 갑자기 알림이 울린 모임 단체 메신저에서 전달해준 미션질문이 이 글의 마무리를 대신해주었다.


여름을 통과하며 열매에게 자연은 때론 친교적 선의를 가지고 손을 내밀지만

때론 환경적 조건의 반응 외에는 어떤 기제도 없는. 생명과는 무관한 존재들처럼도 느껴졌다.

- 첫 여름. 완주. [김금희]


무형한 타자, 시에스타(휴식)를 느끼게 해준 공백기, 어쩌면 백수라고 말하기 보단 시에스타를 다른 사람보다

잘 가질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은 공백기있는 나를 부러워 한다. 자의 의든, 타의이든

직장생활과 시에스타를 거며쥐고 있다는게 크나큰 복이자 여유, 쉬고 있는게 눈치보일 일 이지만, 잘 활용하면 자연과 함께 생명수 같은 존재이다.


엄마가 대장암 수술을 마치고 나도 대장내시경을 하면서 암으로 자랄 수 있는 용종들을 다 띄어냈다. 만약 쉬지 못하고 그대로 용종을 두고 계약종료하고 연이어 일을 했었으면 수술대에 오를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졌다. 내시경 약을 먹을때엔 괴로웠지만 역시 하길 잘했어 라는 생명수의 마음가짐 또한 느꼈다.


남편과 엄마가 생명의 은인이라고 생각한다. 따스한 사람들도 만나고 시에스타 같은 자연물도 만난 시간,

따스한 슬럼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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