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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인드저널 May 31. 2022

나이 오십인 이 언니가 말해줄게

나만의 해방일기 30일 차


내 나이 앞자리가 바뀌었다.

나이는 숫자라지만,

새 정부는 만 나이 통일법을 추진하겠다지만,

나이에서 오는 중압감은

무시할 수 없다.


운을 볼 때 아홉 9수를 조심하라는 이유는

심경의 변화가 요동칠 때이기 때문이다.

10년의 한 텀을 어떻게 살았나 되짚어 보기도 한다.

갱년기가 오려나보다.

거부하고 싶다.


마음은 이렇게 새파란 20대 청춘인데...

이런 말을 하는 걸 보니

진짜 나이 들었나 보다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만의 해방일지> 마지막화를 너무나 아끼며 보고 있었다.

천천히 음미하듯 보고 있었다.

첫째 딸 기정이는

나이 오십이면 생각 없이 멍하니

소여물 먹듯 우물우물 음식을 씹는다고 표현했다.



헛! 이 드라마 나를 위로하며 곱씹어보는 중인데

이렇게 치명타로 내 급소를 때려주나?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난 나이 오십이 된 여자다.

갱년기에 몸과 맘이 예전 같지 않지만

내 안에서 할 말이 격하게 생겼다.


그래 좋아. 나이 오십인 이 언니가

50이 되면 어떤지 말해줄게.




오십인 이 언니가 말해줄게


드라마에서 본 기쎈듯해 보이는

언니들 말이 맞는 말이야.



똑같아.

나는 똑같은데

시간이 가고 나이만 먹은 거지.

그래. 팔십도 구십도 같을 거야.


다만 20대와 30대와 다른 게 있지.

머리카락은 염색을 안하면 안 될 정도로

흰머리들이 겁잡을 수없이 퍼져버려.

머리숱은 말할 것도 없고

머리 형질도 완전 바뀌어 지더라.


난 완전 칠흑 같은 생머리에

숱이 징하게 많았어.

머리카락도 굵고 완전 직모라

파마해도 그때뿐 바로 쭉쭉 뻗는 머리였지.

바람결에 흩날리는 웨이브는 동경 그 자체였지.


웬만한 고무줄로는 묶이지 않던 내 머리가

이젠 배냇머리 아기 고무줄로도 묶이더라.

머리숱이 하도 많아서 머리 감고 나면

수체구멍을 막는 머리카락이 그리도 반가웠더랬는데.

아이 하나 출산하고 둘 출산하니

뱃살은 늘어지고 머리숱 비는 것은

정말 거짓말처럼 동시에 오더라.


정말 얼마 먹지도 않았는데

그냥 막 살이 쪄.

팔뚝살이고 허벅살이고 턱살이고

이 지방들은 나이살이랑 어찌나 절친이던지

그렇게 붙어 다니더라.

가장 심각한 지방이는 뱃살!

내장지방에 숨어서 절대로 나오지 않고

꾸역꾸역 자리를 넓혀가고 있지.


그런데도 먹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시간 돼서 당 떨어지면

온 힘이 다 빠지고 손이 떨려.

후덜덜 다리 힘도 풀리고.

먹어야 다음 체력을 살릴 힘이 생기더라고.

그래서 꼬박꼬박 챙겨 먹지.

스트레스는 반찬이자 간식이자 야참인거지.

먹어도 먹어도 허기지게 만들거든.


너무 비참하지?

그래도 그 모든 걸 뒤집는 좋은 게 있어.


나이 오십엔 말이야


혈기왕성한 젊 시절 이리 박고 저리 박고

좌충우돌하며 사람들 관계에 부딪히고

서툰 일솜씨에 스스로 좌절하고

다른 사람 눈치 보느라 소심해지는 부분은

좀 없어지더라.


남에게 신경 쓸 여유가 없거든.

이제 나 자신으로 살아갈 이유가 생겼거든.

내 행복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는 선물이란 걸 알았거든.


질투? 시기?

이런 건 졸업한 지 오래지.

내 거 아닌 거는 노력해서 가져도 불편한 걸 아는 거지.

나를 편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가게 돼.

그만큼 포용력도 이해력도 커지는 거지.



그렇다고 다 산 사람처럼 득도한 것은 아니야.



나이 오십이 인생의 절정인 이유


나이 오십은 논어에 지천명이라고 해

하늘의 뜻을 아는 나이가 된 거지.

철학을 알만한 나이야.



배우는 즐거움을 아는 나이가 돼.

그렇게 지겹고 치열하게 살아왔는데

지금도 난 공부가 제일 재미있어.

책 읽기는 정말 흥미진진해.

이론으로만 봤던 세상을 경험했고

다시 정리한 듯

인간의 본질이나

삶과 죽음이나

현실적인 고민이 문제집이 되고

해결해 주는 해답지가 철학이 되거든.



그리고 무릎을 탁 치며

그래 이거였구나!

하고 이해하게 돼.



얼마나 재미있는데.

아는 인생의 공식이

딱딱 맞아떨어져 갈 때

희열감에 행복한 도파민이 마구 흘러~~



다시 치열하고 애매모호한

햇병아리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지금이 내게 딱 좋거든.


오늘이 내 인생의 전성기야



중요한 것은 나를 표현하는 것이야.

살아가는 데 자신만의 가치를 발견하는 건

황무지에서 값진 보석을 캐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거든.



매일매일이 새롭지.

또 어떤 인생의 경험들을 하게 될지

기대하게 하거든.

소중한 것을 사랑하는 방법도 알게 돼.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과도

현명하게 거리를 두는 방법도 알게 되지.



사랑하는 이들과 자연스러운 이별도

하나둘씩 받아들이게 돼.

그리고 진정 이 삶을

재미있게 잘 놀다 간다고

내 인생 소풍 잘 끝났다고

천상병 시인의 시를

가만히 읊을 줄도 알아.



그러니...

나이 오십

별거 아니야.



잘 놀다 왔습니다.

하고 말하는 멋진 나이지.

한 번 더 놀다 오겠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나이고.

난 지금 나 자신으로 온전하게 선택할 수 있는

시간과 자유와 지혜가 있어.

어때 부럽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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