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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인드저널 Feb 08. 2023

신이란 것을 알았다면 당신은 무엇을 하고 싶은가?

마인드저널


삶과 죽음의 중간지점,
이 경계선을 무엇이라 부를까?



티베트 불교에서는 이승과 저승의 중간단계를 바르도라고 부른다. 죽은 영혼이 바르도에 잠시 머물러 이승의 삶을  뒤돌아보며 정리하는 시간이다.

그러나 바르도는 죽음 이후의 중간단계이므로 살아있는 생명의 끈을 잡고 되돌아올 수 있는 중간 상태와는 다르다. 살아있는 삶과 죽음의 중간 지점을 난 조심스레 임상상태라고 말해본다.


임상이란 환자들의 병환 상태를 진단하고 치료와 재활을 목적으로 하는 의학 분야를 말한다.

임상상담사들은 심리적 질병을 치료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심리적 건강을 치유하기 위해 마음이 아픈 이들의 심리검사, 치료와 재활을 돕는 것이다.

임상체험이란 이런 물리적이나 심리적 질병상태를 체험하는 것이다. 


임상상태에 놓여 고통의 단계가 극한에 이르면 생명은 끊기지 않았으나 죽음에 맞닿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 차리리 죽음이 더 편안해질 것 같은 생각에 생명을 놓아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 수도 있다.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던 이들은 물리적 고통과 심리적 고통이 참을 수 없는 억압과 숨이 막히는 환경에 혼자 놓여있다고 느낀다. 탈출하려는 본인의 강한 의지가 스스로 돌아올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만들 수도 있다.



세상에 모든 일들이 그렇듯이 양면의 칼날이 있다.

죽고 싶은 강한 의지에는 그 이면에 평온하게 살고 싶은 강한 욕구가 있다. 하나의 사건은 동일하지만 다른 행동을 선택하는 이유는 보고 있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죽음에 가까운 임상 상태에 있다가 삶을 놓지 않는 이유는 죽음이 두렵기보다 살아있는 동안 정말 하고픈 일이 남아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삶의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면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라지며 행동하게 되는 이유이다.


그래서 건강한 사람이 죽음 체험을 하기도 한다. 관속에 가만히 들어가 눈을 감고 자신의 죽음을 진지하게 마음속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죽음을 바라보며 미리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유언을 남기기도 한다. 

메멘토모리라 말한다.

지난 삶을 되짚으며 후회와 반성도 있지만 자신이 진심으로 원하는 방향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실제로 교통사고나 긴박한 사건 앞에서 깨어있더라도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자신의 삶이 보였단 말을 종종 듣는다.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에 긴 시간들의 경험들이 순식간 펼쳐지며 스쳐가는 것이다.


삶을 되짚는 순간 당신이 진짜 이 세상에 온 이유는 무엇일까?

따분한 일상에 지쳐 지루하거나 아무 생각 없이 감정들을 차단한 채 일상을 보내고 있지는 않는가? 

환경과 자신의 신세를 탓하며 무기력하게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지는 않는가?

반대로 너무나 바쁜 일상에 조급하며 불안함에 쌓여 살고 있지는 않는가?

당장 빚에 쪼들리고 암울한 미래를 걱정하고 있지는 않는가?



어떤 삶을 어떤 마음으로 살고 싶은가?


이전의 난 정말 피땀을 흘리며 열심히 살아왔다.

나보다 능력이 부족한 듯한 사람들이 운이 좋게 성공과 일확천금을 벌더라도 언젠가 내게도 꽃길이 주어질 거라, 그 탄탄대로를 신나게 걸을 거라 믿으며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미라클 모닝, 성공한 사람들의 노하우, 자기 계발서를 탐독하고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착실히 한 발 한 발 계단을 올라갔다. 긍정적 에너지와 목표가 확실하다고 믿었던 내게 새로운 벽이 눈앞에 막고 섰다.


지난해 7월.

난 그 죽음 앞에 선 자신을 발견했다. 

뇌 수술을 하고 두 달여 시간 동안 

삶과 죽음의 경계선인 임상을 체험했다. 

묘한 시간이었다. 

깨어있는 시간보다 잠을 자고 꿈꾸는 시간이 많다. 

꿈은 과거의 어린 나일 수도 있고 

형태 없는 미지의 공간을 떠다니는 나일 수도 있고

고통에 괴로워하며 침대에서 머리 싸안고 있는 내가 보이기도 한다.

내가 아픈 나를 가만히 토닥거리며 

그래 참 힘들지. 많이 아프겠다. 잘 견디고 있네.

하며 위로해 주고 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가슴이 펑 화끈한 기운이 올라가며

환한 빛으로 차올랐다.

마음이 하늘로 둥실 가볍게 떠올라간 느낌이 들었다.

황홀감에 빠지듯 오랫동안 그 상태에 머물렀다.

오로지 세상이 꽉 찬 기분이 들었다.


신이 된 기분이다.



그런 상태로 두 달이 넘어가며 침대에서 한발 한발 꾸부정하게 걸어 나왔다.

석 달쯤에 겨우 눈에 초점이 맞춰져 가며 글을 읽을 수 있었다.

머릿속에서 하고 싶은 단어도 찾지 못해 어눌하고 천천히 했던 목소리도 넉 달이 지나니 차츰차츰 돌아왔다.

지금은 겉모습으로 예전의 평범했던 나와 별다를 게 없다.

다만 아직 얼굴반쪽 면이 마취 상태에 머물러 있고 약을 하루 두 번 꼬박꼬박 먹어야 하는 환자일 뿐이다.

지난 7개월 동안 돈 한 푼 벌지 못하는 백수 상태가 되었다.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 부담감에 순간순간 예전 습관인 미래 불안과 걱정의 감정이 올라올 때도 있다.

그러나 곧 다시 알아차린다.

나의 내면에 빛으로 가득 찬 신이 있다는 것을.


삶은 누구에게나 기회를 준다.

기회는 깨달음을 알아차리는 찬스인 것 같다.

그동안의 나는 내게 부족하고 결핍된 부분만 바라보며 살아왔다. 

이미 가지고 풍요로운 나 자신을 인정하지 못했다.

생명을 가지고 살아온 모든 순간이 풍요를 가진 자기 자신이다.

삶은 감각과 감정을 느끼는 경험이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삶을 창조하고
경험할 수 있는 신이다.


내가 신이란 것을 알아차렸다면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생생한 삶을 경험하는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이다.

내게 주어진 풍요에 감사하며 그대로 느끼는 것이다.

밝은 기운으로 하고 싶었던 경험을 직접 해보는 것이다.

더 이상 환경과 시선과 판단을 제한하지 말고

그대로 온전히 누리면 된다.

환경과 조건을 놓아버림,

원하는 일들을 창조적으로 상상함, 

일상의 설렘과 기쁨,

그리고 감사한 마음과 에너지를 나눔.


난 그렇게 살기로 했다.


마음을 기록하고 나누는 일.

마인드저널에 나의 일상을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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