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장성과 로마의 가도(3)
수직방향의 장성
by going solo May 10. 2023
2) 진국 이후의 장성
(1) 농경 중국의 딜레마-북방유목민
서기 4~6세기에 막강하던 유목민 출신 황제들 특히 탁발부의 북위가 권력을 쥐게 되는데 그로부터 중국 역사에서 되풀이되는 현상 이른바 통치자로 입성한 야만족이 예외 없이 겪게 되는 전형적인 딜레마에 직면하게 된다. 거친 유목 전사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군사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중국에서 정착문화가 주는 안락함에 안주할 것인가. 후자를 택할 경우 중원이라는 전리품을 차지하게 해 준 남성적 초원의 전통이 취약해질 것은 당연히 감수해야 할 반대급부였다. 그들은 두 종류의 땅, 들판과 초원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중원제국의 지배자로서 정착을 전제로해야 하는 농경중국, 땅에 대한 장기적이며 본능적인 집착을 드러내는 중국인과 목초지를 찾아 정기적인 이동을 해야 하고 필요를 약탈로 해결하려 하는 유목민을 동시에 통치해야 하는 난제를 안게 되는 것이다.
중원제국의 지배자는 북방에 여전히 존재하는 또 다른 호전적 유목민에 대한 영토방위라는 방어적 입장에 처하게 된다. 승자입장임에도 불구하고 패자의 기존체제 및 생활방식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통치권을 획득한 유목민 출신의 정복자들에게 중국은 포기할 수 없는 매력이었으며 결국 유목민의 중국화라는 방식으로 패자에 흡수된다.
탁발부는 더 넓은 영토를 차지할수록 정착적이며 관료적인 중국식 생활방식이 절실해졌다. 법률을 제정하고 부족민들을 국가병영 소속으로 재조직하여 땅을 분배하였으며 결정적으로 유목을 금지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탁발부가 중국식의 영속성을 지향한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가장 상징적인 정책은 건설사업이었다. 일차적으로 궁궐에 도로와 사원을 모두 갖춘 수도를 건설하고 다음에는 변방 성벽을 건설하여 북쪽에 있는 탐욕스러운 유목민들로부터 영토를 방어하려는 것이다.
곡식을 먹고 읍내에 있는 주택에 살면서 비단옷을 입고 문인처럼 걷는 사람들로 하여금 거친 외양을 하고 털옷을 입고 피를 마시고 새나 짐승들과 함께 사는 사람들과 구별하는 최상의 방법은 성벽을 이용한 방어입니다....(중략) 우리는 동쪽과 서쪽 사이의 오래된 요새들을 연결하여 성벽과 방어선을 이어 성벽과 방어선을 건설하고 말썽이 생기지 않도록 병사들을 배치하여야 합니다....(중략) 그렇게 하면 우리의 권위는 커지고 군대들은 힘이 왕성해질 것입니다.... (중략) 공격해 오는 무리는 감히 성벽이나 요새를 공격하지 못할 것이고 성벽 남쪽을 뚫고 들어오지도 못할 것이니 북방에 문제가 없어질 것입니다.***
이와 같이 왕조가 바뀌고 통치자들의 등락을 거듭하는 중국 역사에 있어서 영토방위를 완수하기 위해 장성의 건축 및 보수 정책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중국 북쪽에 야만족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농경과 유목이라는 극명하게 다른 생활방식의 차이에서 오는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충돌 때문이었다.
*** 장성, 중국사를 말하다. 151쪽, 줄리아 로렐 지음. 웅진 지식하우스